몇 주 전부터 계속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한두 달 정도 역류성 후두염(같은 증상)을 겪은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종종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정확한 시기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인지하기 시작한 건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자고 일어났을 때나 식사를 하고 소화를 시킬 때, 아침 공복에도 시시때때로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느낌이었다. 스톱워치를 켜놓고 분당 심박수를 재봐도 확실히 맥박이 빨랐다. 성인 평균 맥박이 분당 60-80회일 때 안정적인 수준으로 보는데, 심장이 두근거릴 때 맥박을 재보면 나는 80-90회 이상의 맥박이 나왔다. 때로는 100회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60-100회까지 정상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아슬아슬하고 내가 느끼기에도 뭔가 이상했다. 남편 맥박을 재보면 항상 안정적인 수준에 맞게 나왔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뭐지? 뭐 때문이지?'
원인을 알아야 고칠 것 아닌가! 먹는 영양제 때문인가 싶어 비타민B, C, 마그네슘 등 복용하던 것들을 차례대로 중단해 보았다. 그런데도 같은 증상이 반복됐다.
증상에 대해 열심히 검색을 해보니 각종 병명이 난무했다. 심장과 관련된 각종 질병과 심장 박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갑상선에 대한 내용들까지 빼곡히 화면을 채웠다. 아휴, 무서워라. 안 찾아볼 수도 없고. 몇 개 증상이 맞아떨어질 때마다 '헐, 이건가? 저건가?' 하며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불안해지니 몸이 긴장되고, 긴장하니 더 두근두근두근, 악순환의 반복.
불안해질 때마다 명상을 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내 안에서 널뛰는 '불안이'를 지켜보았다. 영화 인사이드아웃2에서 '불안이'가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온갖 시나리오를 다 짜놓는 것처럼, 내 마음속 불안이도 그러했다. 며칠 동안 그 마음을 껴안고, 불안하고, 껴안고, 불안하고를 반복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면 될 일을, 9월 초에 남편 회사 찬스로 종합건강검진을 받기로 되어 있어서 그때까지 기다려보자는 마음으로 안 갔다. 사실 병원에 가기 싫었다. 그냥 괜찮겠지, 하고 넘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대신 오피스텔 지하 헬스장에 내려갈 때마다 혈압계에서 혈압과 맥박을 재고 수치를 기록했다. 혈압은 정상이었고 맥박은 여전히 빠른 편.
그러다 어제, 또다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낀 나는, 마음을 고쳐 먹고 바로 병원에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원래 실체가 없는 것에 더 두려움을 느끼는 법. 계속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신경 쓸 바에야 그냥 깔끔하게 진찰받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병원에 가는 내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모든 건 선물이다. 나에게 오는 모든 건 선물이다.'
맞다. 나에게 오는 모든 건 선물. 나에게 오는 모든 일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일어난다는 믿음이 있다. 이번 일을 통해서도 내가 뭔가 배워야 하는 것이 있겠지 싶었다. 어디 안 좋은 부분이 있다고 하면 관리하면 그만이다. 겁내지 말고 즐기자고 다짐, 또 다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숨 막히는 더위를 뚫고 15분을 씩씩하게 (양산 쓰고) 걸어갔다.
1시간 시차를 쓰고 퇴근한 남편과 만나서 내과로 들어갔다. 대기자에 이름이 뜨는 걸 확인하고 대기실에 있는 혈압계로 혈압과 맥박을 측정했다. 그런데... 더울 때 힘들게 걷고 검사 때문에 긴장한 상태여서였을까, 맥박이 120회였다. 남편은 70대 나왔는데. 와, 울고 싶었다. 남편도 이전까지 '당연히 별 거 아니지'라고 하다가 여기서 살짝 '엥?' 했던 듯.
자리에 앉아서 다시 마음을 잘 가다듬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아주 긴급할 때마다 나오는 만능 기도도 잊지 않았다. '이번 일만 잘 지나가게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지하철에서 화장실 급할 때마다 써먹었는데 효과가 있더라.)
의사 선생님은 중년의 남자분이었는데, 정말 따뜻하고 좋은 분이었다. 내 말을 귀 기울여 잘 들어주시고, 과잉 진료 없이 여러 가능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의사 선생님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안심이 됐다.
소화는 잘 되는지, 잠은 몇 시간 자는지, 스트레스는 없는지 세세한 부분까지 얘기를 나눈 후, 몇 가지 검사를 하기로 했다. 맥박이 빠른 게 갑상선 문제일 수도 있어서, 심전도 검사와 갑상선 초음파 검사, 그리고 혈액검사까지 받기로 했다.
일단 심전도 검사부터 시작했다. 누운 상태로 선이 연결된 뽁뽁이(?)를 가슴 부근에 몇 개 붙이고, 손목과 발목에 차가운 집게처럼 생긴 기구를 연결한 뒤 몇 분간 누워 있었다. 신기하게 이때부터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꼈다. 빨리 원인을 알아내는 게 훨씬 편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후, 자리를 옮겨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시작했다.
목에 젤을 바르고 원장님이 직접 검사를 해주셨는데, 중간에 초음파 화면을 계속 딸깍딸깍 캡처를 하시는 게 아닌가. 무섭게스리. 속으로 '저렇게 캡처할 게 많은가?' 하며 쫄아있었는데, 검사를 마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깨끗하네요."
"오, 진짜요? 감사합니다!!!"
갑상선 때문에 생기는 증상과 겹치는 증상들이 몇 개 있어서 걱정했는데 일단 초음파상으로는 깨끗하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물론 피검사 결과가 나와야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초음파실을 나와 마지막으로 채혈까지 완료했다. 휴, 속 시원해!
진료실에 들어가 원장님과 화면에 띄워진 결과지를 보며 얘기를 나눴다.
"여기 심전도 검사한 거 보면 이런 신호들이 나오는데... (중략) 이상한 거 없고, 정상이에요. 맥박은 60-100회면 정상이라고 봐도 돼요." (심전도에 찍힌 맥박은 아까보다 내려간 수치인 100 정도였다.)
'정상'이란 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었던가.
"와, 다행이다. 감사합니다ㅜ_ㅜ"
부정맥 같은 심장 질환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감사한지. 의사 선생님이 계속해서 갑상선 초음파 사진을 보며 말씀하셨다.
"갑상선도 여기 보시면... (중략) 깨끗해요. 뭐가 있으면 이 부분이 지저분하거든요. 근데 깨끗하네요. 옆에 경동맥까지 같이 봤는데, 문제가 있으면 좁아져있거나 그래야 하는데 이것도 깨끗합니다."
"오오, 진짜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내가 보기에도 화면에 있는 갑상선과 경동맥이 깨끗했다. 마음이 한결 편해지며 감동이 밀려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음식을 너무 배부를 때까지 먹지 말고(뜨끔), 가려 먹고, 잠을 좀 더 자라고 조언해 주셨다. 몸이 너무 힘들어하는 상태인 것 같다고. 난 상당히 편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생각할 게 많아서였는지 몸이 조금 긴장상태였나 보다. 내 몸을 더 아껴줘야겠다고,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식도 잘 조절해서 먹고.
그리고 오늘 전화로 혈액검사 결과를 들었는데, 다행히 다, 다, 다 정상이었다. 염증 수치도 정상, 갑상선 수치도 정상, 심장 관련된 부분들도 정상,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좋은 콜레스테롤이 많다고 하셨다), 그 외 단백질이나 마그네슘 등도 정상. 딱 한 가지 수치가 좀 적은 편인데 별로 문제 될 건 아니라고, 한 달 후에 다시 피검사해보고 변동 있는지 보면 된다고 하셨다. 거의 모든 수치가 다 정상 범위에 들어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 몸한테 고마운 마음 한가득.
"혈액 검사 결과, 아주 깨끗한데요?"
"아흑, 감동이에요. 너무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후, 나는 훨씬 홀가분해졌다. 갑자기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랄까!!! 상황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내 마음속에서 혼자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심장도 멀쩡하고 갑상선도 깨끗하고 거의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니, 이렇게 건강하다니. 양팔로 열심히 나를 토닥토닥 거리며 중얼거렸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 내가 더 잘 돌봐줄게. 너무너무 고마워.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역시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고 축복임을. 오늘부로 나는 좀 더 매사에 감사하며 살게 됐다. 심장이 잘 뛰어주는 게 어디인가. 심장아, 고마워 정말로.
여전히 맥박은 조금 빠른 편인데 아마도 위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선생님과도 얘기한 부분이지만, 요즘 소화가 잘 안 될 때가 많은 걸 보면 위장이 좀 약해져 있는 상태인 것 같다. 일단 식습관을 조절하면서 상태를 지켜봐야겠다. 한의원에 가서 위장에 좋은 침을 맞아볼까도 생각 중이다. 어쨌든 별문제 없이 몸은 건강하니 그것만으로도 만족, 대만족이다.
앞으로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웃기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내 마음이 바뀌니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야겠다고, 더 재밌게, 더 적극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오늘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분들이 건강하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