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자리 수, 서쪽 바다, 벽에 적힌 이용 방법
어느덧 길었던 제주 여행도 2/3가 지나가고
제주에 있었던 날이 두자리 수를 넘어갔다.
이 날은 조금 흐렸지만 비는 끝내 오지 않은 날이었다.
어제처럼 조식을 먹고 세수를 하고
제주 2주 여행의 10번째 하루를 시작했다.
사계리의 평화로운 아침 풍경을 보며
고산 육거리로 가는 202번 버스를 기다렸다.
어제 군산 오름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한라산이 살짝 윤곽만 내보이고 있었다.
작년 9월의 모슬포항 ~ 신창항 코스 중
시간이 없어서 들리지 못한 수월봉에 올라가기로 했다.
작년에는 용머리 해안처럼 지질 단층을 볼 수 있는
엉알 해안 산책로 쪽으로 걷느라
수월봉에서 내려다보는 서쪽 바다를 보지 못했다.
수월봉까지 땀이 살짝 날 정도로 걸어 오른 뒤
높은 지대에서 보이는 바다의 작은 물결들을 바라봤다.
차귀도와 와도를 이전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한라산의 자태는
전체가 다 보이지 않아도 수묵화처럼 아름다웠다.
오후에는 월령리 선인장 군락지와 새별오름에서
개인 화보 촬영을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구름 많고 약간 어두운 날씨라서
제주에 사는 모델분과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 같다.
서울을 넘어 제주와 도쿄에서도
개인 화보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저녁 시간이 되어 이번에는 추천 받은
일식집을 갔지만 아쉽게 문이 닫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바로 옆에 있는 유명한 거멍국수를 갔다.
고기국수(가격 8,000원)의 고기가 큼직하고 맛있었다.
소금을 조금 넣어 다 한그릇을 다 비웠다.
어제 먹은 한라국수가 더 내 취향이었다.
거멍국수에서 가까운 산방산 탄산 온천을
이날의 마지막 일정으로 선택했다.
노천 온천까지는 필요 없어서
기본 입장료 12,000원을 내고 입장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벽에 적힌 이용방법처럼 미온탕과 원수탕을
반복해서 들어갔다 나오며 피로를 풀었다.
저번에 방문했을때보다 더 추운 날씨라서 그런지
29~32도의 원수탕은 조금 춥다고 느껴졌고,
보수 공사가 필요한 남원의 카페처럼
비가 새서 머리 위로 물방물이 떨어졌다.
그래도 목욕 후 바나나 우유 맛은 여전히 맛있었다.
택시를 잡고 숙소 근처에서 내렸다.
아침에 보았던 사계리 마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술집이 보여 들어가봤다.
가게 이름을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쿠쿠루쿠쿠.
쿠쿠루쿠쿠는 오래된 가구와 소품을 사용한
세련된 바 이자 요리주점이었다.
스텔라 아토이스(7,000원)를 주문하니
팝콘과 함께 전용잔에 담아 내주셨다.
읽고있던 하루키의 단편소설집을 꺼내 읽었다.
다섯번째 단편에 나오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조용한 바는 아니었지만
숙소와 가까워 하루를 마무리 하기 좋았다.
작년 1년간 매달 일요일에 한 번씩 제주에 내려와
제주도 해변을 시계 방향으로 걸으며
<SUNDAYS>라는 연작 사진을 촬영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작업들이 아직 남아있는 채
지난 10월 말, 다시 한 번 제주를 찾았다.
이번에는 2주(실제로는 15박 16일)라는 긴 호흡으로.
다시 제주 한 바퀴를 돌며 2주 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은
작년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곳,
작년 날씨가 아쉬워서 다시 촬영하고 싶은 곳,
해안선 위주의 동선이라 갈 수 없었던 중간 산 지역,
그 사이의 식당과 카페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