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전의 그 맛처럼, 하늘에서 바다로, 잔잔한 먹먹함
제주 2주 여행의 12번째인가 13번째였던 날.
전날 끈질기게 내리던 비는 완전히 그쳤다.
숙소에서 보이는 두 그루의 야자수와
협재에서 보이는 하나의 비양도가
선명하게 보이는 그런 맑은 날이었다.
작년 11월의 애월항 ~ 하귀2리 코스 중
가장 좋았던 곳은 촬영 장소가 아닌 카페와 식당이었다.
먼저 제레미 애월부터.
제레미 커피(6,000원)는
도렐의 너티 클라우드처럼 이 카페의 인기메뉴이다.
일년 전의 그 맛처럼 여전히 입에 들어맞는 맛이었다.
일본 여행 2번째 포스팅을 마무리 하면서
더블샷 스트레이트 데미타세(4,000원)를 추가로 마셨다.
다음은 제레미 애월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만지식당.
작년 우연히 점심을 먹으러 들린 곳인데
돈카츠가 굉장히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바베큐 야끼소바로 선택했다.
가격은 돈카츠 정식보다 2,000원 비싼 15,000원.
소세지와 피망이 보기 좋게 올려져 있었다.
마요네즈 때문에 맛이 살짝 느끼해 질때 즈음
사장님께서 미소시루를 내어 주셨다.
오키나와 풍 밝은 음악을 들으며 늦은 점심을 즐겼다.
작년 10월의 신창항 ~ 애월항 코스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애월도 협재도 금능도 아닌 곽지였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곽지 해변에서 하차했다.
하늘.
전날 하루종일 비가 오다가
맑은 하늘을 보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늘에서 바다로.
가까이에서 본 곽지의 바다는 잔잔한 모습은 아니었다.
쉴틈없이 파도가 해변으로 몰아쳤다.
바다에서 해변으로.
해변은 넓고 인적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는 여기를 가장 좋아하는 바다로
손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해변.
파도가 해안선에 부딛혀 거품이 되고
그 거품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의 과정을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았다.
편의점에서 따뜻한 유자차를 하나 사서
벤치에 앉아 읽던 책을 마저 다 읽었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노을을 조금 더 가깝게 바라보고 싶어 협재로 갔다.
곽지에서 오래 있었는지
협재에서의 노을 타임에 조금 늦어버렸다.
도착과 동시에 해넘이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언덕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노을 감상 준비를 했다.
이어폰을 꺼내어 쇼난 비치 FM 라디오를 들었다.
해는 사라져버렸지만
정말 멋진 것은 지금부터다.
음악을 들으며 하늘 색의 변화를 천천히 감상했다.
달이 뜨고 빛과 사람들이 사라져갔다.
사진에는 노이즈 마저 잔뜩 끼었지만
히 남아있는 것처럼 잔잔한 먹먹함이 느껴졌다.
밤이 되고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다.
남원의 루프탑정원에서는 와인과 감바스가 있었고
협재의 1미리 게하에는 계절에 맞는 방어회와
다양한 안주 그리고 소주(한라산)가 나왔다.
닭껍질과 닭날개가 맛있는 포차에서 술을 더 마셨다.
제주 여행의 종점이 다가올수록
처음보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익숙해졌고
말투 또한 한결 편해져갔다.
여행 마지막 날이었던 어느 평일 저녁.
가장 즐겁고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서울에서 다시 보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우리는 연말이 되어 합정 근처에서 만났다.
작년 1년간 매달 일요일에 한 번씩 제주에 내려와
제주도 해변을 시계 방향으로 걸으며
<SUNDAYS>라는 연작 사진을 촬영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작업들이 아직 남아있는 채
지난 10월 말, 다시 한 번 제주를 찾았다.
이번에는 2주(실제로는 15박 16일)라는 긴 호흡으로.
다시 제주 한 바퀴를 돌며 2주 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은
작년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곳,
작년 날씨가 아쉬워서 다시 촬영하고 싶은 곳,
해안선 위주의 동선이라 갈 수 없었던 중간 산 지역,
그 사이의 식당과 카페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