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모든 소리가 죽어버린 듯이, 여행 중 처음으로 꺼낸 것
제주 2주 여행의 네번째 게스트하우스는
협재 해변에서 가까운 1미리 게스트하우스였다.
1미리 라는 것은 인테리어를 전공한 사장님이
업계에서 1미리의 오차까지 다룬다는 의미로 정한 것.
한옥을 깔끔하게 개조한 이 곳 숙소에서
2주 제주 여행 중 가장 많은 사람들과
매일 저녁에서 새벽까지 다양한 추억을 만들었다.
협재 해변에서 바라보는 비양도는 언제나 정겨웠다.
그런 비양도를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수우동으로 갔다.
수우동은 방송매체에 노출되어 인기가 많은 가게였다.
원래는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적어두어야 하는데
내가 도착한 시간대에 한 팀이 늦게 온다고 해서
운 좋게 바로 입장 할 수 있었다.
가장 유명한 자작냉우동은 11,000원이었다.
기본적으로 자루붓카케우동에
치쿠(어묵튀김)과 반숙튀김이 올라간 형태였다.
쫄깃한 면과 적당히 짭짤한 맛의 국물이 좋았다.
우동만 먹기엔 조금 아쉬워서 모듬튀김을 주문했다.
가격은 6,000원.
의외로 굉장히 맛있었다!
튀김옷이 얇아서 재료의 맛을 잘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꽈리고추와 브로콜리, 깻잎이 아주 좋았다.
식사 후 버스를 타고 금능 쪽으로 갔다.
갑자기 모든 소리가 죽어버린 듯이 조용했다.
말 없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카페 닐스.
낡은 제주집의 외관을 그대로 사용했다.
내부에는 나처럼 그런 취향을 조용히 즐기러 온 듯한
젊은 여행자들이 자신만의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카운터에 서서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했다.
산미가 강한 부룬디 야기카와 드립커피는 6,000원,
브라우니 1/2은 3,000원이었다.
외관과 안 어울리는 이케아 테이블에 앉아
역시 이케아 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느린 템포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맥북을 꺼내 여행글을 조금 썼다.
과테말라 안티구아 커피를 리필해서 마셨다.
창 밖으로 내가 딱 좋아하는 흐린 하늘이 보였다.
흐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가져온 무채색 우산을 여행중 처음으로 꺼냈다.
금능에서 협재까지 해변가를 걸었다.
작년과 같은 곳에 도착했지만
두개의 동상이 없어져 같은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일년이란 시간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형광색의 우산을 든 학생들이
나와 반대 방향으로 해변을 걷고 있었다.
전 날 많았던 협재의 사람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모래 주머니들의 숫자가 더 많아 보였다.
버스를 타기 전 우산을 접고 뒤를 확인하니
얆은 백팩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읽고 있던 소설책이 많이 젖어버렸다.
버스에서 내릴 곳을 지나쳐 애월에서 내렸다.
반대 방향으로 건너가 버스를 기다릴까 했지만
곽지 해변은 다음 날 맑을 때 가보기로 하고 포기했다.
샹들리에가 없어진 몽상드애월 옆에
새로 생긴 베이커리 카페가 눈길을 끌었다.
비가 잠시 그쳤다.
길냥이가 지키고 있는 서촌제에 도착했다.
서촌제는 서울 촌놈 in 제주라는 뜻이다.
이 곳의 대표메뉴인
두부 품은 흑돼지 돈까스(12,000원)을 주문하니
경양식 레스토랑처럼 스프와 샐러드가 먼저 나왔다.
두부를 돈까스 위에 올린다는 발상과
양이 푸짐하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특징이 없는 평범한 맛이어서 아쉬웠다.
살짝 그쳤던 비가 거친 바람과 함께 더 세차게 내렸다.
한림 앤트러사이트는
굳은 날씨임에도 굉장히 손님이 많았고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날 것의 공간이었다.
하우스 블렌드 브루잉 커피(5,000원) 중
가장 아래의 윌리엄 브레이크로 선택했다.
한참 뒤 커피가 나왔다.
테이블이 낮고 의자가 쇠덩이 같아
다리위에 맥북을 올리고
다음주 촬영할 스튜디오 공간을 찾아보았다.
리필한 나쓰메 소세키가 산미가 강해
내 입맛이 더 맞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원두가 생긴다면
어떤 맛일지 궁금해졌다.
비가 그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길에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스낵집.
명랑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짜장떡볶이가 유명했지만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아서
일반 떡볶이(4,000원)을 골랐다.
조금 매우면서 많이 달달한 맛의 떡볶이.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먹었던 그 맛이 생각났다.
비벼 먹으니 별미 요리가 되었다.
조금 떨어진 빵집을 찾아 걸었다.
하교 시간대의 동명리는 몸을 움추린 아기 고양이처럼
작고 아기자기한 동네 같았다.
목적지인 이익새 양과점에 도착.
간판의 일본어처럼 케이크를 판매하는 곳이다.
말차와 치즈 파운드 케익을 각 4,000원에 구입했다.
아쉽게도 밀크티는 품절 되었다.
역시 아쉽게도 숙소에서 먹어본 케익은
생각했던 밀도보다 높아 퍽퍽하다고 느껴졌다.
대신 근처의 아트숍 키리코과
일본 가정식 요리집인 다람쥐 식탁에서
이익새의 귀여운 일러스트를 더 즐길 수 있었다.
다음날
조식을 먹고 이익새양과점의 말차 케익을 먹었다.
치즈보다는 말차가 더 괜찮았다.
작년 1년간 매달 일요일에 한 번씩 제주에 내려와
제주도 해변을 시계 방향으로 걸으며
<SUNDAYS>라는 연작 사진을 촬영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작업들이 아직 남아있는 채
지난 10월 말, 다시 한 번 제주를 찾았다.
이번에는 2주(실제로는 15박 16일)라는 긴 호흡으로.
다시 제주 한 바퀴를 돌며 2주 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은
작년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곳,
작년 날씨가 아쉬워서 다시 촬영하고 싶은 곳,
해안선 위주의 동선이라 갈 수 없었던 중간 산 지역,
그 사이의 식당과 카페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