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밤, 전날 앉았던 곳을 찾아, 최소한의 개보수
매콤한 떡만두국을 조식으로 먹고
전날과 비슷한 오전과 오후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밤이 찾아오려고 했다.
문앞을 지키고 있는 냥이를 건너 마실 것을 하나 사고
전날 앉았던 곳을 찾아 다시 앉았다.
이 날은 구름 하나 없는 해넘이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해가 지는 것은 생각보다 빨랐다.
해가 지고 빛이 아름답게 변하는 1시간동안
하루키의 장편소설책의 마지막 권을 읽었다.
해는 사라져버렸고
정말 멋진 것은 역시 지금부터다.
스쳐가는 비행운처럼 초승달을 관찰했다.
해가 질수록 그림자가 길어지듯이
어두워질수록 달은 더 빛나갔다.
어두워서 글자가 더이상 읽히지 않을 때까지
일몰 - 초승달과 하늘색과 비행운 - 을 감상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소주를 마셨다.
잠깐 밤하늘을 봤는데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소주를 많이 마셨어도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아침이면 금새 회복이 됐다.
아침이면 협재로 걸어나와 비양도를 보곤했다.
제주 2주 여행의 14번째날은 창문도 없이
비양도가 그대로 보이는 커핀 그루나루에서 시작했다.
요 며칠간의 일정을 정리하면서
해변의 색과 잘 어울리는 한라봉 에이드를 마셨다.
가격은 5,800원이었다.
어중간한 오전이 그렇게 끝나고
오후에는 한림공원과 협재에서 개인 화보 촬영을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구름 많고 약간 어두운 날씨라서
제주에 사는 모델분과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 같다.
서울을 넘어 제주와 도쿄에서도
개인 화보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제주에서 구입했던 라디오를
제주도 촬영 소품으로 사용한 것이 보람찼다.
촬영 후 한치 앞도 모를 바다라는 가까운 분식집에서
모델분과 함께 사치스러운 한치 즉석 떡볶이를 먹었다.
조금 늦은 출발이지만 제주시로 가보기로 했다.
구제주 시가지는 군산, 강릉 같은 소도시 느낌이 났다.
목적지는 아라리오 뮤지엄 시네마였다.
아라리오 뮤지엄 제주는 탑동 시네마와 함께
동문 모텔1, 동문 모텔2 3곳의 전시관이 있다.
영화관으로 쓰던 건물을 최소한의 개보수를 하여
독특한 공간으로 바꾸어냈다.
5층부터 지하층까지 내려가면서 전시를 관람했다.
내가 봤던 그 어떤 도시의 미술관 작품들보다도
엄청난 규모의 거대한 작품들도 많았다.
한 사람이 오랜기간 동안 수집한 개인 컬렉션을
투박한 공간에 배치하니 아주 특이한 미술관이 되었다.
앤디 워홀, 키스 해링 같은 아티스트의 작품도 보였다.
많은 소장품 중 특히 마음에 드는 것들이 있었다.
일상의 모습을 묘사한 하이퍼 리얼리즘 조각 작품.
실제와 흡사하게 제작한 식탁 테이블.
단지 테이블과 그릇, 컵 모든 것의 크기가 훨씬 크다.
욕조 안의 양과 그 위의 마이크.
해골이 된 양과 그 위의 확성기.
작년 1년간 매달 일요일에 한 번씩 제주에 내려와
제주도 해변을 시계 방향으로 걸으며
<SUNDAYS>라는 연작 사진을 촬영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작업들이 아직 남아있는 채
지난 10월 말, 다시 한 번 제주를 찾았다.
이번에는 2주(실제로는 15박 16일)라는 긴 호흡으로.
다시 제주 한 바퀴를 돌며 2주 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은
작년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곳,
작년 날씨가 아쉬워서 다시 촬영하고 싶은 곳,
해안선 위주의 동선이라 갈 수 없었던 중간 산 지역,
그 사이의 식당과 카페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