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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이야기

by 커피탄 리

해가 질 무렵에, 들의 사람들 모두가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갈 때,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이들은 피투성이 석양에 물든 구름을 바라보며 유리창에 얼굴 비칠 때, 한 남자가 쓸쓸히 들에서 걸어 들어왔지. 그날도 세상이란 들에서, 남자의 몸은 온통 진흙투성이, 무얼 했는지, 남자는 축 처진 어깨로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왔지. 그의 몸엔 나무 냄새가 배어 있었는데, 그날만 해도 마흔 그루의 묘목들을 혼자 옮겨 심었어. 황무지에, 모래와 모래 먼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들에, 그는 그렇게 했지. 또한 날마다 그렇게 하고 있었지.
바로 그때, 도시는 핏빛으로 물들었고 사람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이는 하나도 없었지. 도시들은 사실 잿빛 어둠으로 물든 것이었고 전신주 위에는 까마귀도 비둘기도 없었지. 막 켜지기 시작한 가로등 불빛 아래로 땀에 바랜 옷을 입은 아이들이 땅 밟기를 하면서 놀고 있었어. 남자들은, 남자들은 아까 말했다시피 정장에, 단정한 사복 차림으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렸고. 여자들은, 여자들도 아까 말했다시피 정장에, 단정한 사복 차림으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렸지.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그들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지 몰라, 누구도 몰랐지. 곧 황무지가 될 도시의 운명을 볼 때 그랬어.
수년째, 도시의 나무들이 줄어들었고, 근교에도 나무들이 줄어들었지. 아무도 돌아볼 생각을 못 했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느라 숨 가빠서. 저녁에, 타코 가게에서는 타코를 기다리며 기둥에 비스듬히 매달린 티브이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지. 티브이에서는 스포츠 중계가 흘러나오거나, 살인 사건이 ‘생생정보통’처럼 울려 퍼졌지. 그들은 생각하지 못했지. 버스 정류소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생각하지 못했지. 나무의 본질적인 이미지에 갇혀서, 머릿속의 그 나무가 병들고 시들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말이야. 그들은 ‘나무’ 하면 무성한 삼림을 떠올렸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을 떠올리지는 않았지. 수천 년째, 온대 기후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말이야.
아까 말한 그 남자 말이야, 그 남자. 그 남자의 이름은 순이야. 순만 죽으라고 옷에 흙을 묻혀가며 나무를 심었고, 황폐화된 토지를 가꿨지. 그는 7000그루의 나무를 심은 적이 있는 남자인데, 7만, 7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을 작정을 하고 있었지. 그는 자신 혼자 힘으로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 모금도 하고 인력도 구해 보았지만, 가끔 비영리 단체에서 없는 돈을 보내주는 경우는 있었어도, 사람들은 싸늘했지. 어른들은 그런 일에 무관심했어. 어른들은 1분 1초도 그런 일에 허비하길 아까워했지. 1분 1초라도 자신의 윤택한 삶을 유지해 나가는데 힘을 쓰길 원했어. 이를테면 ‘워라벨’이라든가, 이를테면 ‘돈’이라든가. 해서 순은 다른 방법을 택했지. 죽어가는 땅과 삼림을 살리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몇몇 선택했어. 그 아이들은 가출과, 부모로부터 매서운 매도 감수해야 했지만 기꺼이 순을 따랐어.
순은 흙투성이가 된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으며, 거친 나뭇결의 테이블에 앉았어. 그의 아내는 그에게 물을 가져다주며, 오늘 일은 어땠느냐고 물었어. 순은, “오늘은, 역시 좋았어, 사람들이 더 올 거야, 그럼 내가 하려는 일을 더 빨리 이룰 수 있겠지.”라고 말했어. 그의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씁쓸했어. 속으로는, ‘이 지겨운 일, 대체 언제까지 하려는 거야. 저이는 10년 전에도 이 일을 하느라 날 몰라라 하고 나무만 심었지.’라고 중얼거렸어. 순은 아내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선을 아래로 두고 차가운 물만 마셨어. 순은 물을 다 마시고 나서, 밥을 먹거나 아내와 말을 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흔들의자에 앉아 눈을 붙였지. 그의 생각으로는 잠시 뒤에 그렇게 할 작정이었어. 아내는, ‘이제는 못 참겠다’며 방으로 가서 종이 한 장을 꺼냈지. 볼펜으로 거기에 뭔가를 거칠게 휘갈기고는. 순이 자는 틈을 타 집 밖으로 유유히 사라져 버렸지. 그녀는 영영 떠난 것이었어. 그가 일어나서 보니, 집은 고요했고,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느낄 수 없었지. 순은 말했어. “여보, 여보. 방에 있어?”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어. 이상하다 생각한 그는 방으로 올라갔고, 아내가 남기고 간 편지를 보고 말았어. 편지를 다 읽고 나서 그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지. 그때는 이미 밤이 깊었고, 총총한 별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지. 밤하늘이란 벌판에.
아내는 집을 나갔지. 그럼에도 순은 그다음 날부터 묘목들을 심었어. 아이들과 함께 힘을 모아 트럭에 수십, 수백 그루의 묘목을 싣고, 도시 근교의 사막에 묘목들을 심었어. 고되고 고된 작업이었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손가락질했고, 귀신이 들린 것이 틀림없다고 욕까지 했어. 수십 일째, 잠도 자지 않고서 몸은 엉망이 된 채로, 나무만 심고 있었으니 말이야. 그들은 돈이나 모아서 황폐해진 땅을 버리고 해외로 도망갈 생각이나 했지.
순과 아이들은, 수십 일, 수백 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 일을 했어. 이제 비가 올 차례였지.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았어. 사막에서 광포하고 건조한 모래바람만 불어올 뿐이었지. 묘목 수백 그루가 모래바람에 쓰러져 버렸고, 도시의 외벽 또한 많이 손상되었지. 그럼에도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어. 그들이 철옹성을 쌓아 놓은 도심지까지 오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거든. 순은 하늘을 보며, ‘이제는 구름에게 부탁해야 하나’라고 생각했어. 구름을 보곤, 굵은 빗방울 속을 헤치며 아이들과 돌고래를 타고 수영을 하는 상상을 잠시 하기도 했지.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웃음소리가 그의 귓전에 들려왔어. 그건 상상일 뿐이었지. 그의 눈앞에 펼쳐졌던 것은 황무지. 광대한 사막이 될 전조의 땅이었지. 그때는 해 질 녘이었고, 핏빛 석양이 하늘을 열심히 물들이고 있었지. 그는 삽을 꼽고 삽 위에 걸터앉아 해가 지는 그 장엄한 풍경을 말없이 지켜봤어.
집에 돌아와 보니 집에 사람이 없다는 생경함에 그는 고독함을 느꼈어. 그러나 소리 없이 죽어가는 녹색 생명체들의 고독에 더 큰 고독을 느꼈지. 그의 친구는 양초와 촛불, 낡은 성경책, 그리고 커다란 벽시계가 전부였지. 그는 성경을 펼쳐 몇 장 읽었어. 그리고 비가 오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했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를 했는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였어. 그는 하루, 이틀, 사흘 동안 그렇게 했어. 또 7일째 되던 날까지 그렇게 했지. 7일째가 되던 날, 먼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어.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지. 순은 아이들과 빗속에서 공을 차며 뛰놀았어.
비를 많이 맞은 탓이었는지, 그간 먼지를 많이 들이마셔 지병이 깊어진 탓이었는지, 그다음 날 그는 쓰러지고 말았어. 원인은 폐결핵이었지. 모아둔 돈이 없어서 병원에도 갈 수 없었지. 순은 아이들의 품에서 그렇게 죽어갔어. 그가 죽을 때, 그의 집 화단에는 흰 꽃들이 활짝 폈고, 온 동리의 아이들이 그의 집 마당에까지 줄을 섰지. 침대에 누워서 그는 이렇게 말했대. “내가 죽는 것이 너희한테 이로운 것일 수도 있단다.” 이 말을 듣고, 훌쩍이던 아이들은 더 크게 울었지. 그는 죽어서, 그가 나무를 심던 자리에 묻혔는데, 그가 죽은 뒤에는 그 자리에서 새싹이 피어났어. 한두 개가 아니었어. 수만 개의 새싹이 피어났지.
벌써 오래전 이야기야. 순이 심은 나무들은 크게 자라났지. 그 나무들은 사막을 다시 녹림으로 바꿨고, 지금은 사람들이 그 나무 그늘 아래 쉬면서 순이 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노래하지. 순이 죽고 나서 순의 아내는 자신의 무심함을 저주하면서 죽어갔고, 순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 순이 하던 일을 받아들여서 나무를 심었지. 지금 그 아이들은 노인이 되었어. 노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순을 추억하고 순을 기리러 오는 사람들은 안내하곤 해. 하마터면 영영 사막이 되어버릴지도 몰랐을 황무지를 삼림으로 바꾼 순의 이야기, 들어본 적이 있니?


진한 표시: 인용구

_마가복음 3장 22절

_누가복음 22장 44절

_요한복음 16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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