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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꿈-3

by 커피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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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술집, 술집에서 또 다른 술집으로. 사창가에 사창가를 거쳐 또 다른 귀여운 창녀가 기다리고 있는 사창가로. 나는 돈을 탕진해 가며 질 나쁜 무리와 어울렸다. 아니, 질 나쁜 무리라고 할 것도 없다. 내가 질 나쁜 인간이었으니까. 친구에 관한 것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어느 패거리와 어울리며 나쁜 짓을 하고 있으려나. 그 정도만 생각하고 말았다. 술에 취하고, 여자를 취하고, 붉은 눈과 붉은 마음이 되었을 때, 나는 역설적으로 무거움과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쾌락이란 도파민이 작용한 탓이었다. 즐거웠다. 즐거웠고, 모든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 즐기고 난 뒤에는 끝없이 허무했고 공허했다. 몸과 마음이 다른 의미로 가벼워져서 세상의 시간 뒤로 역행해버릴 것만 같았다. 날아서. 날개 없는 몸으로 날아서 말이다. 죄책감마저 느껴졌는데, 이것은 습관적인 두통과 같이 날 괴롭혔다. 괴로움이 느껴지면 난 또다시 술과 여자로 마음을 달랬다. 도무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졌다. 쾌락을 즐기는 것이 젊음의 본령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는가. 있다면, 흔쾌히 찾아가서 그가 포기할 때까지 뜯어말리고 싶다.



어느 날, 친구들이 내게 멀리 있는 성탑을 털러 가자고 했다. 나는 그 요구에 흔쾌히 응했다. 우리는 달밤에,-왜 사위가 환한 달밤에 갔는지 모르겠다-미루나무숲을 지나서 성탑으로 갔다. 성탑 아래에 이상한 게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시체들이었다. 풀 옆에, 꽃 옆에, 시체들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그림자가 하나 보였는데, 나는 본능적으로 그 그림자가 날 쫓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찜찜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성탑으로 올라갔다. 성탑 안에는 보물들이 많았다. 누군가 지키고 있는 흔적도 없어서 이상했다. 우리는 보물을 나누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해서 나는 나를 쫓고 있는 남자의 그림자를 잊을 수 있었다. 보물을 나눈 후, 우리는 귀신처럼 낄낄거리며 밀밭 사이에 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 길 위에 뱀이 한 마리 나타났다. 뱀을 본 무리는 혼비백산에서 사방팔방으로 달아났다. 오래전 자기 스승을 버렸던 11명의 제자들처럼. 나는 도망치지 못하고 자리에 쪼그려 앉아 벌벌 떨었다. 뱀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남자가 나타났다. 온통 새하얀 옷을 입은 남자는 뱀을 즉시 밟아 죽였다. 머리가 터진 뱀은 구정물 같은 피를 토하며 죽었다.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자의 하얀 손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데도 난 두려웠다. 두려움, 정죄감, 죄책감, 그리고 죄와 계율의 무거움이 내게 일시에 들이 닥쳐왔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온 세상을 방랑했다. 숲도, 대지도, 바다도 나를 멈출 수 없었다. 난 영원히 혼자일 곳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늘 내가 있던 곳에는 누군가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숲에서 불을 피워놓고 혼자 노숙을 할 때, 숲 속에 비치는 그림자가 있었으나 나는 애써 모른 척하려 했다. 대지를 지날 때, 뒤에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는 기척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바다를 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드넓은 대양에 나와 내 배 말고 누가 있을까 싶었지만, 누군가 그 자리에, 아니, 그 너머에 있었다. 단지 있는 것이 아니라 날 지켜보고 있었다. 몇 년 동안 바다와 섬을 방랑하다가 육지로 돌아왔다. 그 직후에 있었던 일이다. 한동안 꾸지 않던 꿈을 다시 꾸게 되었는데, 흰 비둘기 한 마리가 내 가슴 위에 앉는 꿈이었다. 그 순간, 날 짓누르던 모든 압박과 두려움들이 사라지고 평온이 얇은 흰 셔츠처럼 내려앉았다. 꿈에서 깨자마자 들판으로 달려 나갔다. 꽃이 핀 밤의 들판에 섰을 때, 꿈속의 하얀 비둘기가 내 품속으로 내려앉았다. 난 그 비둘기를 다시 날려 보냈다. 비둘기는 숲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새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비둘기를 품에 안고 숲에서 나왔다. 난 나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겼다. 그의 품에는 익투스 두 마리가 있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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