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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수양버들이 스산하게 흔들리고, 갈대가 으스스하게 흔들리는 강을 낀 농촌이었다. 나는 강을 따라 걸어갔다. 밤은 그 넓고 아득하고 깊은 품을 유감없이 자랑하고 있었고 밤의 머리끝에 달려 있는 것은 찌그러진 달이었다. 강가엔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다. 그들은 –멀리서 봤을 때- 물에 잠겼다 일어서길 차례대로 하고 있었다. 난 무겁고 지친 몸을 이끌고 그리로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웬 낙타털 옷을 입은 사내가 그들의 머리를 잡고 물속으로 몸을 담갔다. 내가 물어보니 사내는 그것을 ‘세례’라고 했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표정을 짓는 그들을 속으로 시샘했다. 내가 무슨 정신으로 낙타털 옷을 입은 세례자에게 말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몹시 지쳐 있었고 몸이 무거워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몸을 물에 던졌다. 세례자는 깜짝 놀라 날 잡아 물 위로 이끌었다. 이 물에는 한 가지 특성이 있었는데, 물 안에서 정신을 잃은 사람은 끝없는 밑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깊이는 절망하고 있는 정도에 따라 깊어졌다. 해서 세례자가 날 건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내가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환상을 봤다. 물속에서 잠자고 있던 흰 비둘기들이 일시에 물 밖으로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다. 그 순간 내 몸은 숲으로 옮겨졌다. 해 질 녘이었고, 잿빛 어스름이 숲 주위로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내가 있는 숲보다 깊은 곳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노랫소리가 들썩이는 곳으로 이동하자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원을 그리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날 발견했고, 나는 그들의 춤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리는 불을 가운데 놓고 춤을 췄다. 깊은 밤까지 춤을 췄다. 또 다른 숲 속에서 다른 노랫소리가 들려왔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노랫소리라기보다는 애곡하는 소리에 가까웠다. 나는 까끌까끌한 기둥 하나를 붙잡고 그들이 애곡하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그 모습을 보니 다시 숨이 턱 막혀오기 시작했다. 몸이 무거워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까 춤을 출 때의 자유와는 다른 감정이 날 억누르고 지배했다. 난 얼른 애곡하는 사람들을 헤치고 지났다. 아, 나무 사이 그곳에는 금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곳에는 십자 모양 장대에 매달린 뱀이 있었다. 나는 얼른 그에게 입을 맞췄다.
대학에서 나는 글을 쓰는 학생이었다. 혼자 하는 일인 글을 쓰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엔 날 환영하던 사람들도 내 차가운 반응에 차차 등을 돌리고 멀어져 갔다. 외톨이 행동을 해서 외톨이가 된 나는, 더더욱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숲이 내 산책로 아닌 마당이 되었고, 학교 호수가 내 보금자리였으며, 호숫가에 있는 도서관이 내 둥우리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1년, 또 2년을 보내다가, 사람 하나를 알게 되었다. 도서관 3층, 볕이 드는 창가도 아닌 구석 자리에서 늘 남몰래 혼자 뭔가에 열중하던 청년이었다. 그와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가 무슨 작업을 하는지, 글을 쓰는지 나는 몰랐다. 그와 난 우연히 같은 서가에 있었고, 같은 위치에 있는 책에 손이 가닿았다. 그렇다고 전기가 통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양보하며 말했다. “인기 없는 책인데…….” 먼저 읽으라고 서로 권하며 우리는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고, 독서 취향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친해져 갔다. 우리는 차차 밥도 같이 먹고, 책도 같이 읽고, 캐치볼도 같이 하면서 우정을 쌓아갔다. 거대한 삼나무가 있는 숲으로 국경을 지나는 여행을 가서, 숲 속에서 원시인들과 춤도 같이 추고, 뾰족한 나무 사이로 피어오르는 별들을 보면서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다 마른 유화 물감처럼 굳어 있는 듯해 보였다. 그러나 잘 지내던 우리는 곧 엇갈리게 되었다. 꿈에서 은색 성배에 담긴 붉은 술을 보았는데, 그걸 마셔보고 싶다면서 친구는 홀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뜬금없는 소리에 그를 말렸지만, 그는 제멋대로였다. 그는 날 떠나 숲과 들판을 지나 머나먼 협곡으로 사라졌고, 나는 그를 찾아 숲과 들판을 지나 머나먼 협곡까지 그를 찾아갔다. 간신히 그를 추적해 들어온 곳은 시뻘건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어떤 동굴이었다. 초입부터 불길한 기분이 들어 들어가기를 주저했다. 그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에 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속은 어두컴컴했고, 종유석에서 물이 많이 떨어졌다. 그것들을 피하며, 또 맞기도 하며 앞으로 걸어가자 한 방이 있었는데, 사선으로 내리는 빛이 은제 잔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그가 말한 그 잔인가 보다 하며 잔 앞으로 다가갔다. 과연 붉은 술이 담겨 있었는데,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다. 잔은 반 정도만 차 있었다. 그가 먼저 와서 마신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리고 나가려는데, 계속 고개가 잔 쪽으로 당겨졌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나갔다. 잔을 잡아서 내동댕이치고 싶은데, 잔은 부유하는 물체처럼 내 입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뱉어야 하는데 그걸 삼킨 나, 나의 눈은 붉은 눈이 되어 있었다.
진한 표시_인용, 창세기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