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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Mar 23. 2019

생일 축하해

케익을 만든다는 것의 의미는.

 

 초콜릿 케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어느샌가 내가 왜 케익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누군가를 위한 베이킹을 할 때 마음속의 느껴지는 사랑은 내가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이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할 때 느꼈던 불안과 짜증과는 확연히 다른 기분. 종종 '요리도 좋아하냐'라는 질문을 받는데 꼭 대답한다. "나는 요리가 정말 싫다, 특히 누군가를 위해 하는 요리." 변치 않는 몇 안 되는 나의 진심이다.


 오케이션(특정한 때나 이유)이라는 것은 나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이다. 케익은 여전히 나에게 특별한 날, 축복과 행복을 상징한다. 행복한 일, 행운을 빌어주는 일, 기운을 북돋워주기 위한 자리에 케익이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특히 케익을 만들 줄 알게 되면서 더 생겨났다. 생일을 위해, 즐거운 일을 위해 케익을 만들 때는 '그 사람이 정말로 좋아했으면 좋겠고,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면서 만들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생겨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믿는다.

 단순한 감정이지만 어느순간 부터 굉장히 가지기 힘든 감정이 되기도 했다. 요즘 처럼 세상이 다 적이고 이리저리 재고 정치하기 바쁜 때에는 더더욱. 이를 통해 이해관계등에서 이득이 되는 것이 없어도 되는 이유는 케이크를 받아보았을 때 생겨나는, 받는 이 조차 계획하고 있지 않았던 놀라움과 행복에 내가 일조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이 감정에서 얻는 것이 정말 많다. 그래서 케익이나 파이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너무 행복한 기회다. 순수하게 남을 위하는 마음.

 받는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고마워하면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다. 나 좋자고 하는 일에 내가 만들어낸 상대의 행복의 감정이란 것을 얻었고 그 이상의 삯을 받는 것은 참 불편하다.



 내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의 큰 조카 최지원이다. 지원이는 2012년 생이고 올해 만 7세가 되었으며 초등학생이 되었다. 나는 사람이 아동기에 겪는 일들과 트라우마, 좋은 기억들이 사람의 일생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많은데, 조카가 생기면서 나는 아이에게 기억에 남는 일들을 많이 만들어 주겠노라 다짐했다. 내가 한 다짐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데 이건 좀 다르다.

 어린 시절의 얻는 다채롭고 컬러풀한 기억들, 이미지, 소리, 냄새, 음식들이, 사람이 성장해서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시기가 되었을 때 분명 힘을 더한다고 믿는다. 어른이 되어 삭막하고 부정적인 사람이 될지, 여유롭고 느린 사람이 될지, 에너제틱하고 정신없는 사람이 될 것인지.

 어린 시절의 내 방의 색깔, 항상 어딘가에 있던 인형, 액자 안의 그림, 가게에 진열된 무서운 가발, 엄마가 다정했을 때, 화가 났을 때, 내가 모르고 발을 밟았던 강아지, 이런 작은 기억들이 나를 행복하거나 슬프게 한다. 즉, 나를 나이게 한다.  의지하게 되는 사람, 금전적 도움을 주는 사람, 다정한 사람, 호되게 야단치는 사람, 영감을 주는 사람, 몰래 나쁜 사탕을 주는 사람, 모두 아이에게 좋은 사람들이다. 아이에게 이 모든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케익을 만들어주는 이상하고 재밌는 이모가 되고 싶다.


그래서 물어봤다.

'지원아 무슨 색깔 케익이 갖고 싶어?'

'블루!'

'또?'

'그린'

역시나 핑크는 7세 남자아이에게 있을 수 없는 컬러다.

'그리고 초코!'

파란색의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어야 했다. 나는 아주 맛있는 데빌스푸드케이크(미국식 초콜릿 케이크) 레시피를 알고 있고 여러 번 만들어 보았다. 레시피에 있는 재료 중, '블랙커피'는 제외하고,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케이크를 만들었다. 확실하게 삼원색 하면 떠오르는 그 파란색일 수 있게 했다.

들어가는 설탕과 초콜릿의 양만 보면 생일 파티에 온 아이들이 먹어도 괜찮을지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생일이니까 하루 정도 흥분상태로 뛰어다녀도 괜찮겠지.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니 꿈에 나올 것 같은 케이크처럼 들린다.

파란색의 초콜릿 케이크.

한 번에 한 시트밖에 구울 수 없는 내 오븐 덕분에 밤늦은 시간까지 3개의 케익 레이어를 굽고 (사실 팬도 두 개뿐이라 하나가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3번째 케이크 반죽을 담는 과정도 있다), 실온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랩으로 꽁꽁 싼 후 냉장한다. 식히지 않으면 다 달아나지 못한 수분이 다시 흡수되어 케익이 과하게 무거워진다는 느낌이 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일주일 전 테스팅하고 골라 놓은 크림치즈 아이싱 레시피에 색소를 넣고 파란색을 만든 후,

(슈가파우더를 사용할 때, 한번 체 처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도 한번 이상 체를 통화한 슈가파우더를 사용해야 아이싱에서 설탕 씹히는 느낌이 덜하다. 재료 준비할 때 미리 해놓는 것이 편리하다. 전날 밤 미리 해서 밀폐 용기에 담아두면 아이싱을 만들 때가 되었을 때 어제의 나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조심스럽게 케익을 장식한다. 3일 전에 만들어 놓은 노란색 아크릴 장식 숫자도 얹어보고. 엉망진창이 된 피곤한 모습으로, 완성된 케익을 360도로 돌려가며 확인한다.

완성.


누가 뭐래도 케익은 생일 케익이 최고.



정말로 맛있는 초콜릿 케익 레시피는 추후 초콜릿 아이싱으로 완성한 후 올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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