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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Mar 05. 2019

피칸이 주는 교훈

피칸 초콜릿 청크 쿠키

 내 베이킹 첫 에피소드는 초콜릿 칩 쿠키였다. '뭘 만들면 실패의 상심을 경험하지 않고 첫 베이킹을 해낼 수 있을까?'라고 고민해서 고른 아이템. 개인적으로 재료, 도구 등을 공수할 땐 적어도 평균 이상의 품질과 전문성을 고려하여 고르려고 한다. 그래서 미국 베이킹을 하고 싶은 나에게 집 앞 대형 마트의 곰표 중력분은 믿음을 주지 못했다. 그래도 어찌 다른 방법이 없고, 기본적인 밀가루마저 너무 까다롭게 굴면 앞으로가 더 힘들 거라는 예상에 바로 그 마트에서 모든 재료를 구했다.


 당시 요리에 집중하던 나의 파트너는 리서치를 통해 찾아낸 레시피 소스를 나에게도 추천했다. Serious Eats라는 웹사이트는 음식에 대해 조금 더 치밀하고 과학적인 접근을 하는 정보 100%의 플랫폼이다.(지금은 광고성 포스팅도 자주 보이기는 한다.)  재료를 논하는 언어 자체에서 좀 더 구체적인 이유와 논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지만, 다른 레시피에 비해 적어도 두어 개 정도의 번거로운 스텝을 거치게 하는 레시피가 많다. (무언가를 쉽게 해서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 한 요리를 제대로 정말 잘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플랫폼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

 다른 온라인 리서치를 하며 느낀 것은 요즘 온라인 요리, 베이킹 커뮤니티(북미, 영국 기준)의 추세가 과학적인 접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배우는 이에게 비교적 구체적 정보를 주고, 경험이 더 해졌을 때 재료를 다르게 응용할 수 있는 능력과 문제 발생 시 솔루션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준다.  


 Serious Eats의 페이스트리 디렉터는 Stella Parks, 나의 베이킹 레퍼토리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유명 베이커이다. 이전에는 Brave Tart라는 블로그로 알려져 있었고 현재는 James Beard Award를 수상한 베이킹 쿡북 <Brave Tarts, Iconic American Desserts> (2017년 W.W.Norton &Company, Inc.) 저자이기도 하다.

Brave Tarts, Iconic American Desserts> (2017년 W.W.Norton &Company, Inc.) 중에서

스텔라 팍스는 CIA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출신답게 모든 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분자 단계까지 깊고도 다양하다. 왜 이 비율인지, 왜 이 시간만큼 반죽하는지, 왜 이 온도인지, 테크닉과 스킬에 대한 전달도 분명한다.  간편하고 쉽고 부담 없는 레시피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 더 좋은 맛을 위해 버터를 브라우닝(버터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데워서 갈색으로 만든 것, 말하자면 버터를 살짝 태우는 과정이다) 한다던지, 그냥 써도 될 설탕을 굽는다던지(오븐에 낮은 온도로 몇 시간을 천천히 구워 설탕의 풍미를 더 깊게 해주는 방법 ) 하는 등의 귀찮은 단계들이 그런 것들이다.   


  나의 오븐은 그때도 지금도, Sfornatutti 컨벡션 오븐이다. 20만 원대로 코스트코에서 구매했고 수많은 날들을 이 오븐을 사용했지만 열정적인 베이커에게는 솔직히 터무니없는 오븐이다. 가끔 베이킹 도구에 있어서 나는 꽤나 구두쇠인 경향이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사실은 아직 내가 좋은 도구를 사용할 자격이 안된다는 자격지심도 있다. 또는, 모래 해변에서 맨발로 축구하는 브라질 소년 같이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매일 거친 땅에서 그렇게 축구를 하던 소년이 좋은 축구화와 고급 잔디를 밟았을 때, 하늘을 나르는 모습이지 않을까? 바보 같은 소리라고 내 파트너는 지적한다.


 본론으로 돌아가, 처음 오븐을 개시했던 날, 오븐 안 위치별 온도 차이나 내 오븐의 진짜 온도, 그런 것에 무지했던 나는 그냥 온도를 맞춰놓으면  그 온도가 되겠거니 했고, 레시피에 나온 대로 일단 구웠다. 당연히 내가 원하는 식감도 맛도 아니었다.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 아니고, 드라이하고 바삭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 레시피에서 시킨 것보다 오래 구웠을 것이다. '아니, 어떻게 15분 안에 쿠키가 구워져?' 하는 의구심 때문에.

분명히 기억난다. 그날 우리는 넷플릭스로 'Chef's Table' 정관 스님 에피소드를 보고 있었다.

 그 이후 수많은 초콜릿 칩 쿠키 시도 후 나는 이제 안정적인 레시피를 가지게 되었고 내가 원하는 베이킹 타임도 알고 있다. 무조건 생각보다 빨리 꺼내는 것이 key.  그래야 테두리는 바삭하고 중간은 chewy 하며 초콜릿이 녹아내리는 질감을 완성할 수 있다.  사실 이 식감의 쿠키를 만들어낸 것은 몇 달 되지 않았다. 짧은 굽기 시간에 대한 의심을 버리는 게 쉽지 않았다.

나의 visual cue (베이킹에서는 주어진 레시피의 시간이 아닌 자기 자신의 눈, 후각 등의 감각을 우선시하라고 한다. 모든 오븐과 모든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이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내 눈에 보이는 이 완성도를 Visual cue라고 한다)를 믿지도 않았다.

 내가 만드는 초콜릿 칩 쿠키가 다 구워진 때는, 테두리가 겨우 옅은 갈색이 되었고, 중간은 아직 부풀어 올라 스팀이 나는 것 같은, 덜 익은 것 같은 상태일 때이다. 내 오븐에서는 176℃/12분이다. 때로는 깜빡하고 오버 쿡 하지만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음 트레이를 오븐에 넣는다.

 



DeLonghi 사의 Sfornatuto Maxi 컨벡션 오븐. 이제 1년이 넘었다.

 작은 오븐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한 번에 구울 수 있는 쿠키의 개수는 작은 트레이 한 개 약 5개에서 6개 정도다. 일반적인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면 6-7번 트레이를 갈아 주어야 한다.

과도하게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그랗게 떼어 놓은 도우를 얹은 베이킹 트레이를 작은 냉장실과 냉동실에 조심스럽게 욱여넣고, 대기했다가 한판이 다 구워지면 바로 새 트레이를 넣어주고, 이전 트레이가 식으면 또 도우를 작게 떼어 올려놓고 상당히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면 식힘망에 쿠키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식어가는 쿠키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눌러보며 여전히 중간이 폭신한지 확인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엔 오븐에서 좀 더 빨리 쿠키를 꺼낸다.


  너트류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날따라 한 달에 2번 정도, 한 판씩 만드는 모닝 그라놀라 바에 사용하고 남은 피칸이 있었다. 적당히 잘라 쿠키 도우에 섞고, 오븐에 넣기 전에 통 피칸을 얹고 꾹 눌러 구워보았다. 굽는 냄새부터 다르다. 고소하고 기름진 피칸 냄새가 쿠키의 맛에 레이어를 더하고 섬세한 단맛과 짠맛을 증폭시켜준다. 물론 과도한 단맛을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쿠키 자체에 밀가루+설탕+버터 부분이 너무 많지 않도록 채워주기도 한다. 식감은 물론이고.

마치 비빔밥에 없던 참기름을 뿌려주는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이후로 나는, 꼭 피칸 너트를 넣어 이 쿠키를 만든다.

자기 오븐의 특성을 이해하면 겉 테두리는 바삭하고 안으로 갈수록  쫄깃하고 부드러운 쿠키 만들기가 가능하다.


이렇게 시도해서 얻은 결과는 기쁨을 준다. 이 쿠키를 먹게 될 다른 사람들은 아주 당연하고 쉬운 생각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익숙한 것만 하려는 고집이란 것은 참 무섭고 질기다. 내가 익숙해진 레시피에서 벗어나 변화를 꾀하는 것은 두렵고 싫다. 안 해본 것, 어색한 것을 시도하는 마음은 항상 두려움이 앞서고 내가 잘해오던 것을 배신하는 기분이 든다. 정말 어리석은 자세다.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레시피에서 얼마나 어리석을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까?

기억하고 싶다. 일상의 변화가 두렵고, 잘 굴러가던 루틴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배신한 인생은 결국 슬퍼진다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나의 슬픔을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나 자신을 투정 부리는 사람 취급하고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피칸은 몰랐다면 나의 초콜릿 칩 쿠키는 내게 너무도 지겨운 레시피가 되었을 것이다.



피칸이 뭐라고 난 이렇게 까지 생각하는 걸까?


 

Pecan Chocolate Chunk Cookies  피칸 초콜릿 청크 쿠키

adapted from Stella Park's Chopped Chocolate Chip Cookies from Brave Tarts, Iconic American Desserts> (2017년 W.W.Norton &Company, Inc.) 

상기 책에서 발췌 후 수정된 레시피입니다.


Notes

* Chunks와 chips는 아주 다른 재료다. 개인적으로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칩은 그 waxy (겉이 기름치고 입에서 녹지 않는 느낌) 이 싫고, chunk로 바 초콜릿을 자를 때 생기는 가루와 작은 조각들이 반죽에 맛을 더해준다고 생각한다.  

*레시피는 미국 표준 컵 개량과 무게 개량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나 가능하다면 무게 개량할 것을 추천. 정확하고 일관적인 결과를 내기에 더 용이하며 재료의 밀도가 브랜드에 다르기 때문에.

또한 원본 레시피에 oz(온스)로 표기되어있는 것을 구글 변환기로 g 표기하였으나 자신이 가진 저울에서 정확히 다시 변환해볼 것!

*아이스크림 스쿱을 사용하면 시트에 반죽을 올려놓을 때 일정한 양을 올려 사이즈가 일관적인 사이즈의 쿠키가 나올 수 있도록 해준다.

*한 번에 반죽을 모두 구울 필요는 없다. 남은 반죽은 포션 하여 냉동할 수 있는데, 미리 쿠키 사이즈로 포션 하여 냉동용 지퍼락에서 3개월까지 보관 가능하고, 냉동된 반죽은 실온에서  20℃ 정도가 될 때까지 해동한 후 굽는다. 이렇게 하면 종종 디저트로 한 두 개만 구울 수 있다.


30~35개 지름 5cm 쿠키 또는 10cm 지름 27개 정도 (편차 있음)

굽는 시간 제외하고 약 30분 소요


재료

1. 2와 1/4 컵 (13oz 또는 370g)* 투박하게 자른 다크, 밀크 초콜릿 청크.*

(화이트 초콜릿 추가 가능, 시중에서 판매하는 작은 키세스 형태의 칩이 아님)

2. 2와 3/4컵 (12 1/2oz 또는 354g) 다목적 중력분.

3. 8oz 또는 227g 버터, 저온이지만 부드러운 상태. (18℃-19℃)

4. 1컵 (8oz 또는 227g) 꽉 채워 담은 갈색 설탕. (흑설탕 아님)

5. 백설탕 1컵 (7과 1/4 oz 또는 약 205g)

6. 2 tsp(티스푼) 소금. 일반 맛소금이 아닌 중간 굵기의 소금.

(요오드 성분이 없는 것 추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재료 관련 포스팅에서 자세히 설명 예정)

7. 1 tsp 베이킹 소다

8. 1/2 tsp 베이킹파우더

9. 1 Tbsp (테이블 스푼) 바닐라 익스트랙트

10. 1/8 tsp 갈은 넛맥 (없다면 생략 가능)

11. 1개 달걀 (무조건 가장 큰 달걀로 = 왕란)

12. 2컵 피칸 - 원하는 사이즈로 부순 것(큰 조각부터 잘게 부순 것 모두 믹스해도 좋음)

       + 쿠키 위에 토핑 할 통 피칸 여유분

13. Maldon Salt Flakes 장식용 소금


레시피

1. 176℃ 로 오븐을 예열한다.(홈베이킹 시, 특히 오븐 온도계 사용을 추천한다. 온도 측정이 상당히 느릴 수 있으므로  예열을 시작할 때부터 오븐에 넣어 두는 것이 좋다)

2. 초콜릿 한 줌을 따로 보관한다. (마지막 장식용) 나머지 초콜릿을 작은 볼에 담아 위에 밀가루를 체쳐서  손으로 섞어준다.

3. 믹싱볼에 버터, 갈색설탕, 베이킹 소다, 베이킹파우더, 바닐라 그리고 넛맥을 담는다. 저속으로 믹스하여 건 재료에 수분을 더해준 뒤, 중속으로 올려 5분가량, 색이 옅어지고 촉감이 보송보송해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믹스한다.

(경험이 없을수록 이 과정을 빨리 끝내는 경우가 많다. 설탕과 버터를 믹스하는 과정을 'cream'해준다고 표현하는데, 이 크림 과정에서 설탕 결정이 버터를 긁어 공기층을 만들면서 색도 연해지고 부피도 커지며 촉감도 달라진다. 이렇게 하면 쿠키던 케익이던 안에 공기가 생기고, 이 공기에 열을 가하면 보송보송하게 부풀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게을리하지 말자.)

4. 믹서가 돌아가는 중에 달걀을 넣어주고 재료가 곱고 부드러울 정도로만 믹스한다.

5. 저속으로 믹서를 낮추고, 밀가루/초콜릿 믹스를 넣어 아주 된 상태의 반죽이 되게 믹스한다.

(불안하다해서 너무 오래 믹스하지 말고 건 재료가 가끔 가다 보이는 정도로만 믹스할 것.)


6. 베이킹 시트(판)에 종이 호일을 깔고, 반죽을 2 Tbsp 씩 떼어내거나,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떠서 올려놓는다. 사이즈는 자유롭게 하되 시트에 올릴 시 반죽 간 2-3인치가량 여유를 둔다. 과도하게 쿠키가 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또는 반죽이 물렁하거나 버터가 녹는 느낌이 든다면 포션 해 놓은 반죽을 15분 정도 냉장한다. (베이킹 시트 여유분이 있다면 미리 한 트레이에 포션 해놓고 냉장고에서 굳혔다가*, 구울 수 있는 만큼 굽는 것도 도움이 된다.)


7. 굽기 전에 Maldon Salt flake를 조금씩 얹듯이 뿌려주고 (5-6 조각이면 충분하다), 반죽에 통 피칸을 하나씩 올리고 떨어지지 않게 꾹 눌러준다. 윗면에 초콜릿이 보이게 하고 싶으면 따로 보관해 놓은 초콜릿 조각을 얹어 꾹 눌러주면 된다.  


8. 예열된 오븐 중간 랙에 반죽이 포션 된 베이킹 트레이를 넣고 13분 정도, 테두리에 옅은 브라운 컬러가 보이고 중간에 부풀어 오를 때까지 굽는다. 11분쯤 되었을 때 체크해 보아서 아직 전체적으로 색이 연하다면 조금 더 굽는다. 오븐에 따라 상당히 다르니 만드시 쿠키 한 개만 먼저 구워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 안까지 바삭한 쿠키를 원한다면 16분 까지도 가능하나 개인적으로 반댈세! )


8. 베이킹 시트를 꺼내어 식힘망에 올려놓고 2-3분간 식힌다. 오븐에서 바로 나온 쿠키는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무리하여 움직이려고 하면 찢어질 수가 있으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식힘망에 옮겨 더 식혀준다.

완성된 쿠키는 밀폐용기에 실온에서 2-3일간 보관 가능하며 냉장고에서는 일주일까지도 맛이 크게 변하지 않지만 가능하면 자기가 먹을 것을 제외하고는 주변인과 나누어서 빨리 섭취하도록 한다. 베이킹의 끝은 나누는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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