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출신의 대기업 간부가 러브호텔로 둘러싸인 거리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조사 결과 피해자 와타나베 야스코는 도쿄전력의 간부급 직원이었지만 꽤 오래전부터 매춘을 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야스코는 퇴근 후 6시 반부터 시부야 마루야마초의 거리를 서성거리며 호객행위를 했고 하루 3-4명의 남자와 매춘행위를 한 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관계 전 언제나 캔맥주 3개를 마셨고 그 중 하나는 알콜도수가 높은 것으로 골랐다. 그녀의 단골손님은 그녀가 도쿄전력에 근무하고 있는 것을 모두 알았다. 맥주를 마시며 야스코는 언제나 도쿄전력을 찬양했고 일본의 이후 경제정책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았다. 그녀는 그녀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매춘을 하면서 받은 손님 앞에서조차 숨기지 않았던 그녀의 화려한 경력은 마루야마초라는, 가난하고 난잡한 거리에서 화대를 깎아가면서까지 필사적으로 했던 밤의 행각과 너무도 대조적이라 사건이 발생하고 와타나베 야스코의 이력이 밝혀지자 모두 충격에 빠졌다. 논픽션 저술가인 저자는 단박에 이 사건이 품은 어둠에 매료된다. 나 역시 그랬다. 열쇠가 걸리지 않은 임대아파트의 빈 방에서 마치 낮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발견된 야스코의 가는 발목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떠올랐다. 왠지 담담한 표정일 것만 같은 그녀의 하얀 얼굴도.
일본 검찰은 뚜렷한 증거도 없이 네팔인 불법체류자인 고빈다 프리사드 마이나리를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 한 번의 무죄판결은 있었지만 판결을 뒤집고 무기징역을 구형한다. 무기징역이 구형되는 순간, 고빈다는 "신이여,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울부짖었다. 매춘을 해서는 안된다는, 그가 믿고 있는 종교의 교리에는 어긋났지만 5000 엔, 돈이 없으면 2-3000 엔에도 몸을 내어주는 야스코는 고빈다에게 있어 '소소한 타락'이었다. 하지만 저자인 사노 신이치가 추적한 증거에 따르면 고빈다는 야스코를 살해하지 않았다.
한번 범인을 특정하면 절대 뒤집지 않는다는 일본 검경의 완고함은 이 사건 뿐 아니라 여타의 다른 사건들에서도 유명하다. 불법체류자인데다가 고국에 송금할 돈도 필요했던 고빈다는 좋은 먹이감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엄청난 이슈가 된 사건을 서둘러 덮기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범인은 꼭 필요했다.
이 두껍고 어지러운 책은 야스코 살인사건을 꼼꼼하게 짚어나간다. 고빈다의 무죄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저자는 이미 강제추방된 고빈다의 동료를 만나기 위해 네팔까지 가서 증언을 듣기도 한다. 일본의 외국인 차별과 검경의 증거 조작 등도 물론 그의 정의감을 자극했을테다. 하지만 저자가 솔직히 고백하듯이 이 긴 추적이 시작된 것은 와타나베 야스코, 그녀가 품고 떠난 미스테리다.
왜 그녀는 그런 이중생활을 해야만 했을까. 그것도 꽤나 오랫동안.
저자는 야스코가 아버지에 대해 품고 있었던 동경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좌절되면서 자기처벌로 이어졌다고도 해석하고, 동시에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반항이었다고도 본다. 또한 개인의 능력 보다는 성별이 우선시되었던 도쿄전력, 여성의 유리천정 문제도 야스코를 좌절시켰다고 생각한다. 고액연봉자였지만 호객을 하며 돌아다니던 길에서 야스코는 무엇이든 주어서 돈으로 바꿨다. 빈병을 주워 팔았고, 손님과 들어간 러브호텔의 서비스 비품을 가져와 사용했다. 방값이 없다면 빈 아파트나 주차장 그늘에서도 서슴없이 몸을 내어주었다. 야스코는 마치 무슨 의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늘 맥주 3캔을 마셨는데 영수증을 보관하고 있다가 손님에게 반드시 청구했다. 그런가 하면 하루에 반드시 4명 정도의 손님을 받아야 했고, 어떤 일이 있어도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강박증이라고 볼 수도 있을 정도의 성실함이었다. 하나 둘 정도의 쉬운 설명으로는 도저히 야스코를 이야기할 수 없다. 저자는 야스코의 미스테리에 매혹되었고 그녀의 거침없는 타락이 너무도 당당하여 '고고하다'고 까지 표현한다. 원조교제를 하는 여고생이나 약간의 비리를 저지르고 작은 것을 얻는 사람들에게 와타나베 야스코는 싱긋 웃으며 여기까지 내려와보라고 한다는 듯이.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녀는 그렇게 당당한 타락을 대범하게, 자기 의지로 이어간 것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세상엔 그럴 수 밖에 없는 일도 있다.
야스코가 이승의 마지막 숨을 내뱉었을 때, 그녀의 모든 비밀은 영원히 봉납되었다. 우리는 결코 서로의 심연을 모른다. 거기 심연이라는 것이 있다면.
다만 와타나베 야스코라고 하는 '대명사'는 당시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여성의 많은 문제들을 시사하고 있다. 더불어 범인으로 지목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어 겨우 풀려난 고빈다 마스나리를 보며, 외부인이면서 약자인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가혹할 수 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저자는 빠진 퍼즐은 그대로 놓아두고 사실을 사실 그대로 담아내면서 어디까지 이 수수께끼의 윤곽을 그릴 수 있는지 이끌렸다고 고백하지만 사카구치 안고를 인용하며 그녀의 타락을 인용한 지점은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그녀는 타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타락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발적으로? 비자발적으로?
아무도 모른다. 야스코 자신도 몰랐을 수도 있다.
유리천정을 의미하는 'OL'이야말로 야스코의 비틀린 발목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내려놓는듯한 저자의 마음이 읽혀서 나도 모르게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고나 할까. (나는 저자가 일부러 OL을 썼다고 본다. 풍자 혹은 비판의 의미로.)
너머에서 그녀가 아프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