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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Jun 09. 2024

꿈을 좇을 것인가? 사랑을 좇을 것인가?

로스앤젤레스 / 라라랜드


뮤지컬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하던 민석이는 개봉 한지 일주일도 안된 시점에서 벌써 2번이나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봤다고 했다. 꼭 봐야만 한다고 영화 제작에 투자한 사람처럼 그가 그렇게 강력하게 추천했던 이유릉 어렵지 않게 첫 장면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었다. LA의 꽉 막힌 고속도로 위, 각자의 차에서 다양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배우가 시작하는 오프닝 곡 “Another day of sun”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원테이크(컷을 끊지 않고 이어지게 촬영하는 기법)로 원색 옷을 입고 춤추며 노래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끊김 없이 촬영해 내가 마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생동감을 더했다. 꿈을 좇아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픈 젊은 이들의 바람이 노래 속 가사에 녹아 있음을 확인한 것은 영화를 3번째 보았을 때였다. 라라랜드, 너는 첫 장면부터 다 계획이 있었구나.


내가 LA에 여행을 떠난 건, 나의 두 동생과 그들의 남자 친구들이 함께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온 작년 5월이었다. 총 6명인 우리 그룹은 차를 렌트해 짧은 일정동안 캘리포니아의 멋진 모습을 눈에 담으려 로드트립을 시작했다. 이미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샌프란시스코에서 휴스턴 까지 차로 일주일간 달리는 여행을 한 적이 있었기에 LA를 방문한 건 두 번 째였다. 첫 번째 마주한 LA는 여타 미국의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더러움이 널려있었다. 한인타운을 지났을 때는 한국에서 80년대 사용하던 서체로 만들어진 간판의 낡은 디자인 때문인지, 거리에 굴러다니는 쓰레기 때문인지 황폐하고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물론 도시 곳곳을 돌아보지 못했기에 속단할 수는 없었지만 LA가 나에게 준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라라랜드에서 본 LA를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은 엄청난 교통체증뿐. 꿈과 희망을 노래하기에 도시는 많이 낙후되어 있었고, 너른 땅 위에 넓게 퍼져만 있었다. 이렇게 LA에 대한 환상은 무너지고 말 것인가.


더러운 한인타운 거리와 노숙인
심각한 교통체증의 LA


[라라랜드]는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LALA LAND 제목 속, LA는 로스앤젤레스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모르는 가사의 노래를 흥얼거릴 때 쓰는 ‘랄라라’처럼 현실에서 벗어나 꿈을 꾸는 상태의 세상을 표현하기도 한다. 라라랜드는 예술적 꿈을 좇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종종 환상 속에 사는 듯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제목이 가지는 이중성은 꽤나 문학적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살며 배우로서 성장하고 싶은 미아와, 재즈 뮤지션으로 살고 싶은 세바스찬의 만남과 성장을 담아낸 이 뮤지컬 영화는 주인공들의 꿈과 고뇌, 사랑과 야망 사이 미묘한 균형을 음악과 춤에 담아 시적으로 표현했다. 영화에는 예술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배어 있는데, 생동감 넘치는 촬영 기법과 주인공들의 화려한 춤들이 캐릭터들의 꿈을 상징하는 몽환적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역사가 짧고 문화적인 깊이가 없다고 생각해 여행지로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미국에 어쩌다 보니 살게 되어버린 아이러니 속, 미국 내 여러 도시들 중 LA 역시 나에게는 ‘여행하고 싶은 도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라는 부사를 적용할 수 있을 만한 미국의 도시가 있다면, 뉴욕, 시카고, 시애틀, LA,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가 있지 않을까. 여행지에 대해 아무런 선호를 가지지 않은 동생들은 ‘디즈니랜드’만 간다면 나머지는 내가 데리고 가는 곳 어디라도 좋다는 의견을 내었고, 나는 내 취향대로 목적지를 골랐다. LA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1997년 문을 열어 일반대중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는 게티센터에서 유럽 회화와 조각 작품들을 감상했고, 현대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더 브로드를 방문했다. 계속되는 박물관 투어에 지친 동생들의 입이 조금씩 튀어나오기 시작할 때 즈음, 나는 그들을 그리피스 공원으로 이끌었다. LA에서 라라랜드를 떠올릴 만한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영화 포스터로 가장 많이 알려진 미아와 세바스찬이 탭댄스를 춘 그리피스 공원 전망대다. 영화 속 주황색에서 보라색으로 넘어가는 황홀한 선셋아래 미아와 세바스찬의 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떠오르는 명장면이다. 동생들도 모두 라라랜드를 시청한 터라, 이곳에서 본 LA의 도시 전경에 흠뻑 빠졌다. 라라랜드를 보지 않은 동행인 남자 셋도 그곳에선 영화의 포스터를 떠올릴 수 있었는지 꽤나 좋아하는 눈치였다. 뒤 이어 두 주인공들이 밤에 몰래 무단 침입 한 그리피스 천문대에도 방문했다. 아무도 없는 천문대에서 다양한 장비를 거침없이 만지며 서로에 대한 설레는 마음을 확인하던 두 사람은 두둥실 떠올라 구름 위에서 춤추다 의자에 내려와 걸터앉으며 첫 키스를 한다. 모든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모든 게 납득되는 연출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동생들이 좋아한 디즈니랜드


“이 천장벽화가, 라라랜드에서 미아랑 세바스찬이 들어와 처음 보게 되는 곳이야. 이 벽화는 ’ 휴고발린벽화’라고 하는데 우주의 광대함과 인간이 별에 대해 품어온 끊임없는 궁금증이 표현되어 있는 게 보이지? 그리고 이 아래 푸코 진자는 지구의 자전을 보여주는 설치물이야. 지구가 회전하면서 진자의 흔들리는 방향도 조금씩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영화에서 진자를 보여준 건 시간적 흐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어. 두 주인공의 삶과 꿈이 변화하는 시간들 말이지. 하지만 그들이 변하는 동안에도 기본적인 진리와 자연법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기도 해. 너무 멋지지 않니?”

신이 나서 떠드는 내 모습을 보고 동생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낭만 없는 녀석들과 여행하는 건 조금 힘 빠지는 일이다. 울림 없는 나의 감상이 허공에 메아리를 칠 때 나는 별을 관찰할 수 있는 자이스 천체망원경 돔으로 향했다. 긴 줄 끝에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별을 바라보고 나왔다. 우리가 모르는 차원에서는 그 멀리 있는 별도 우주를 꽉 채운 밀도 있는 구성체 중 하나겠지만 작은 지구에서 바라본 그 별은 너무나도 멀었고, 밤하늘은 너무 성기게 느껴졌다. 도시의 높은 언덕에 있는 천문대에서 바라본 LA의 전경은 끝없는 불빛으로 뒤덮여 반짝이고 있었고, 하늘 위로는 드문드문 별이 보였다. City of star라는 곡은 별을 박아놓은 듯한 도시를 노래하는 것이지, 하늘에 있는 별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별 보다 빛나는 인생들로 수 놓인 도시를 바라보며 다른 차원의 누군가가 된 것처럼 촘촘하게 채워진 도시의 불빛을 바라봤다.


영화 속 주인공이 탭댄스를 추던 파크


라라랜드 속 LA는 야망과 창의성, 꿈의 추구를 의미한다. 기회와 도전의 상징인 그곳은 미아가 계속해서 볼 수 있는 오디션의 기회가, 세바스찬이 꿈꾸었던 재즈바가 있는 곳이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살아야만 했고,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말이다. 거듭 되는 오디션에서의 낙방, 카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삶, 예술적 연주보다는 파티에서 반주를 하거나 원하지 않던 상업적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일 모두, 예술적 커리어를 쫓는 아름다움과 고난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이 함께 하지 못하는 장면은 꿈을 추구하는 삶의 달콤 씁쓸함을 보여준다. 사랑이 중요하긴 하지만, 때로는 개인의 야망과 목표가 사람들을 다른 길로 이끄는 법. 그때,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이 이루어낸 상상이 화면 속에서 펼쳐졌을 때, 이 세상 모든 이가 가졌을 후회와 아쉬움이 떠오르는 듯했다. 현실적이어서 아름다운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렸고, 영화보다 덜 아름다운 LA는 계속해서 눈앞에 펼쳐졌다.

LA가 아름답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깊은 삶을 보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할리우드사인과, 비버리 힐즈, 베니스 비치 같은 관광지를 돌아보며, 상업적이고 물질적인 미국의 문화와 접했을 때, 나는 진정한 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나는 무엇을 꿈꾸는 사람일까. 미국에 살게 되면서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심과 집착을 지닌 이 사회에 보다 더 깊은 거부감이 생겼고 간간히 여행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집과 공원에서 보내는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물질주의적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채 ‘소비자’로서만 생존하고 있다. 결국 미아와 세바스찬은, 배우와 음악가라는 직업을 통해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이들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도 창조하는 사람, 생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하게 해 본다. 그것이 물질이 아닌 무형의 가치였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꿈을 좇은 자들은 서로를 놓치고 반짝이는 별이 되었고, 사랑을 쫓은 나는 야망을 잃고 꿈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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