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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Jul 20. 2024

왜 인간은 높은 곳을 향하나

요세미티 / 프리 솔로

내 영어 선생님이자, 친구인 에디(Eddy)는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우리는 회사에서 교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수업에서 만나 그 친분을 이어갔다. 그는 지방의 한 전문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한국의 자연을 보고 직접 체험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을 대한민국 구석구석 안내하는 일인 기업가이자 탐험가다. 그는 서핑, 암벽등반, 산악자전거 같은 자연과 함께 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한 번은 그가 주최하는 암벽 등반 모임에 따라나섰다가 한국에 이런 데도 있나 하는 경상남도의 어느 습지 근처 암벽까지 가기도 했다. 그는 한국이 클라이밍 하기 좋은 지형을 많이 가졌으며, 세계 정상급 훌륭한 클라이머가 많다고 늘 강조해서 이야기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그가 모임을 모집할 때마다 나는 기꺼이 참여해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즐겼다.


하루는 그가 함께 볼 영화가 있다며 자신들의 지인을 모두 모아 피자를 먹는 상영회에 초대했다. 나와 친구 다돌은 그의 초대에 응했고, 그곳에서 영화 프리 솔로를 보게 되었다. '프리 솔로'는 클라이밍에서 안전장치 없이 맨몸으로 등반하는 것을 말한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감독 지미 친이 주인공 알렉스 호놀드를 찾아가 요세미티의 거대한 바위 엘 케피탄(El Capitan)을 오르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알렉스는 이미 빼어난 등반가였지만 엘 케피탄을 맨몸으로 오르는 것은 사실상 죽음을 각오하는 도전이었다. 엘 케피탄의 직선 높이는 약 900미터다. 에디는 자신이라면 안전장치를 착용하고 올라도 4일이라는 시간이 걸릴 거라 했다.


영화 '프리 솔로'는 알렉스 호놀드의 어린 시절과 그의 등반 경력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어릴 적부터 암벽등반에 매료된 알렉스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점점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는 유별 시리 겁이 없었는데 그의 뇌를 촬영해 보니 두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덜 활성화되어 있었다. 이런 그의 선천적 뇌구조 때문일까. 25명 이상이 오르다 죽은 엘 케피탄을 그는 맨손으로 오르기 위해 광적인 집착을 보이며 가야 할 길을 연습하고 연습했다. 한 손, 한 발이 생사를 결정짓는 무서운 도전이 영화 내내 계속되고 모두가 숨죽여 영화에 집중했다. 온몸이 찌릿찌릿해서 나와 다돌이는 서로의 손을 부여잡았다. 영화로 보는 우리도 이런데, 실제 이 모든 순간을 촬영하는 감독도 어지간히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했을 거다. 나 같은 쫄보였다면 혹여나 떨어지는 등반가의 몸을 카메라 앵글로 따라가며 비출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결국 알렉스는 884미터의 프리라이더라는 루트를 오른 그는 약 4시간 만에 등반에 성공했고, 지금은 세계 이곳저곳에서 등반의 묘미와 나눔의 미덕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를 본 그 해에 처음으로 요세미티를 직접 마주했다. 요세미티 벨리에 들어서자마자 우뚝 서있는 엘 케피탄을 보며 나는 탄복했다. 웅장하고 거대한 산. 화강암 병풍. 자연이 얼마나 큰 위압감을 주는지 그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고 연약한 지를 알려주는 위용이었다. 그 앞에서 영화를 떠올리니 알렉스라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 만 같았다. 수직으로 뻗은 1킬로미터의 벽을 맨몸으로 오르는 것.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이 한 사람에게, 그리고 그가 속한 인류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그는 큰 생각 없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로 보이고, 맹목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위해 계속 연습하는 인물로 비쳤다. 그가 어떤 인생철학을 가지고 산을 오르려 하는지 내면을 찬찬히 살필 수는 없었지만 하나 만은 분명했다. 그 처럼 위험을 무릅쓰는 각 분야의 개척자(Pioneer)들이 있었기에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높은 곳에 오른다는 것은 물리적인 높이를 넘어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과 해방감은 도전을 하는 알렉스 개인뿐만 아니라 함께 보는 이들에게 까지도 전달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남편과 처음 요세미티에 도착했을 때까지 내가 아는 요세미티는 엘 케피탄과 터널 뷰, 하프돔 전망대, 요세미티 폭포가 전부였지만 몇 차례 방문하다 보니 이 공원은 곳곳에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몇 번의 요세미티 방문에서 내가 느낀 점이 있다면, 산을 올라 멀리 까지 볼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서면 발아래 있는 것이 모두 내 것인 것 마냥 묘한 정복감과 성취감이 들고, 울창한 숲 한가운데서 키 큰 나무들에 둘러싸여 그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산내음을 맡으며 산을 우러러볼 때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시선의 방향성에 따라 같은 장소도 다른 공간으로 읽히는 얄팍한 심리가 내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동생들과 함께 요세미티를 방문했을 때가 요세미티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6월. 강수량이 많아 요세미티 곳곳은 풍부한 물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마치 바다에 떠다니는 거대한 바위처럼 넘처나는 유량으로 절벽을 따라 흐르는 모든 폭포가 풍요의 상징처럼 보였다. 우리 일행 6명은 미스트 트레일을 따라 버너 폴(Vernal fall)로 향했고 그곳에서 수직낙하하는 폭포가 뿜어내는 안개비를 맞으며 무지개와 조우했다. 거대하고 풍요로운 자연을 마주하면서 정복할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야 할 자연을 느끼며 산행을 마쳤다. 하늘을 뚫을 듯 솟아오른 세콰이어 나무들과 끝이 없는 것처럼 흘러내리는 계곡 물. 태양을 반사하며 반짝거리는 거대한 엘 케피탄. 그 모든 것은 경외의 대상이자, 친구였고, 나와 같은 자연이었다.


버나폴 폭포
버나폴 가는길


남편과 단둘이 어퍼 폴(Upper fall) 트레일을 걸어 폭포가 떨어지는 산 정상에 올랐을 때는 꽤나 자신만만해져 있었다. 사실 계룡산을 오르는 것 보다도 쉬운 코스였음에도 오랜만에 오른 산이었기에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는 산을 오르며 힘들어하던 나 스스로를 이겼다는 생각과 함께 산을 이겼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왜인지 정상 보다 산 아래에서 산을 볼 때가 훨씬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았을 때는 멀리 볼 수 있지만 산 아래 있을 때 보다 자세히는 보지 못했다. 숲에 쌓여 높이 있는 산을 올려다볼 때,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자애로운 미소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곳저곳에서 산을 마주하며 알렉스와 같은 체력과, 용기가 있었다면 나 역시도 엘 케피탄을 맨몸으로 올랐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결국 그곳을 오른다는 건 그곳을 정복한다는 뜻 보다, 그곳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남편과 함께한 세번째 요세미티


영화 속 알렉스는 엘 케피탄을 오르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차례 연구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요세미티가 주는 행복은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 다른 모양이다. 누군가에게는 휴식을, 누군가에게는 모험을, 누군가에게는 적당한 움직임을 선사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게 생기고 다르게 생각하듯, 요세미티는 마주한 그 모두에게 가장 잘 맞는 형태의 감동을 안겨준다. 요세미티뿐만 아니라 ‘자연’이라는 존재가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경험으로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같은 곳에서도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고, 다른 생각을 한다. 영화 속 알렉스에게는 엘 케피탄이 도전의 장벽이었고, 성공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지 않고 엘 케피탄을 마주한 이 역시 또 다른 영감을 받을 것이다. 누군가는 아무런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자연은 언제나 그곳에 있고 그 아름다움 속 신비함을 통해 인간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마음만 열면 언제든지 있으니 아무래도 괜찮다. 에디 역시 자연속에서 자유를 찾았다. 나에게 클라이밍을 알려주고 자연 속에서 즐기는 스포츠를 늘 제안하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산과 들, 바다의 아름다움을 외국인 방문자들에게 소개하며 자연에 흠뻑 빠질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선사한다.


요세미티는 크고 높고 풍요롭고 아름답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곳을 올랐고, 나 역시 또 그곳을 찾는다.

올 여름도 요세미티에서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또다른 매력을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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