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미티 / 인투더 와일드
2019년, 서점의 취미 섹션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학원에 갈 여유는 없는 직장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림 독학하기 책'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한곳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나는 '그림 공부 책'을 찾으러 들어간 취미 섹션에서 다양한 분야의 다른 도서들에 이끌렸고, 어느새 서점을 찾은 목적을 잊은 채 하이킹 코스를 소개하는 책을 펼쳐 들고 있었다. 그곳에서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 돌로미티 알타비아 1 코스
5월에 돌로미티를 알게 된 후, 나는 8월 로마행 비행기를 끊었다. 비행기를 끊고 얼마지 않아 나는 회사의 간부 워크숍을 준비하는 담당자로서 한라산을 등반하는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홀로 돌로미티 트레킹을 할 거라는 나의 포부를 들은 총장님께서 본인도 관심이 있다며 나의 여정에 대해 물으셨다. 그 후, 자신의 친구 3명이 돌로미티 트레킹을 준비하고 있는데, 자신도 그곳에 합류하게 되었다며 7월 중순 먼저 알타비아 1을 다녀오셨다. 나에게 자신의 여행 사진을 보여주시며 가서 주의해야 할 것들과 챙겨야 할 준비물들을 일러주셨다. 60대도 할 수 있으니 나도 잘 할거라 생각했다. 지난달 문득 생각이나 오랜만에 연락드린 총장님은 2023년, 알타비아 2도 다녀오셨다고 하니 그 체력에 탄복할 다름이다. 꽃할배 4명이서 산을 휩쓸고 다녔을 생각을 하니 손으로 입을 막는 작은 웃음이 터졌다. 나도 저렇게 멋지게 나이들어야지.
돌로미티는 이탈리아 북부의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산으로, 지질 기반을 이루는 돌들 중 돌로마이트가 많아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처음엔 홀로 떠날 작정이었지만 6박 7일간 혼자 산을 타다 길을 잃거나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동행이 필요했다. 꽤나 긴 휴가를 내야 하는 일정 상,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함께 할 수 없었기에 나는 이미 구남친이 되어버린 클로드에게 함께 가지 않겠냐 제안했다. 스위스에서 일하는 그 애에게 돌로미티는 기차로도 올 수 있는 곳이었고 휴가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동행을 구한 나는 하이킹 코스를 짰고, 산 꼭대기에 있는 산장 6군데에 각각 예약 메일을 넣어 잘 곳을 확보했다. 총 9박 10일의 여정 중, 산에서 6박을 지내기 위해 짐은 최소한으로 쌌고 그 결과 8kg의 배낭이 꾸려졌다.
볼차노에서 클로드와 재회한 후,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냠냠 먹으며 일정에 대해 다시 논의했다. 물통에 물을 채워 넣고 당이 떨어졌을 때를 대비한 비상식량을 배낭에다 꾹꾹 눌러 담은 뒤 우리는 바로 산으로 다이빙했다.
브라이스 호수로부터 시작된 트레킹은 첫 코스부터 쉽지 않았다. 이 길이 맞아? 할 정도로 자갈이 굴러가는 산비탈이었다. 길잡이인 클로드가 없었다면 첫날부터 엉뚱한 곳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평소 등산 할 때는 없었던 무거운 배낭이 등에 떡하고 붙어 있으니 가는 걸음이 더뎠다. 발을 앞으로 옮기는 일만 반복하며 나아가길 몇 시간째, 드디어 첫 숙소가 저 아래 눈앞에 보였다. 레퓨지오 비엘라. 비엘라 산장은 샤워 시설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데다 화장실도 남녀 공용이었지만 첫날의 피로를 녹이기엔 불편함이 없었다. 산장 식당에서 비프 브리기뇽을 먹고 난 후, 금세 어두워지는 산에서의 시간을 오롯이 몸으로 느낀 채 얇은 실크 침낭 속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잘 차려진 밥을 먹고 나서 또 길을 나섰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걸으며 높은 높은 고도의 작은 바위틈에서도 꽃을 피우는 야생화들의 빼꼼 내민 얼굴들을 바라보며 예쁘고 연약한 생명들의 강인함을 느꼈다. 걷다 보니 풍경도 계속 바뀌었다. 돌산만 보여주던 돌로미티가, 어느새 계곡과 푸른 숲을 내보였다. 파네스 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50대 한국인 아줌마를 만났는데, 애들도 남편도 다 두고 홀로 오셨단다. 자연을 오롯이 마주한 경험을 파타고니아에서 한 후, 그 감격을 또 한 번 느끼고 싶어 이번 일정을 강행하셨다고. 하지만 그녀는 산행이 너무 힘들어 포기할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짐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수건 대신 빨아 쓰는 종이 행주까지 준비했음에도 나이가 드니 가방이 너무 무겁고 체력이 달린다고 했다. 일정 최고의 깔딱 고개 마레비를 지나고 난 후, 평온한 호수가 쉼터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 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삼일째 되는 날부터는 미국인 한 무리와 함께 걸었다. 신혼여행으로 산을 탄다는 커플과, 전 세계의 농장 등에서 일을 도와주며 여행을 하고 있는 커플과 함께 이틀 연속으로 벙커 배드 방을 함께 썼다. 산에 와서도 결혼식이 어땠는지 두고 온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과 함께 오래 있을 수 없어 나는 홀로 밖에 나와 깜깜한 밤하늘을 봤다. 그리고 내가 집을 떠나와 산을 걷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 영화 '인투 더 와일드'가 떠올랐다.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의 결점이 유난시래 눈에 많이 보일 때, 나는 떠나고 싶었다. 자유를 찾아 자연으로, 그곳에서 내면을 치유하며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 역시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찾아 알래스카 야생으로 떠났다. 완전한 야생에 몰입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 그도 나처럼 물질만능주의적인 사회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용기와 함께 비극적인 무모함이 공존한다. 그가 사회의 인공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자연과 연결되려는 열망과 도전 정신은 초반에는 빛을 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먹을 음식이 떨어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친 가운데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모르는 열매를 따먹는 것)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허망하리만큼 안타까운 젊은이의 죽음을 떠올리며 내가 떠나온 여행은 자연에 스며들되 여전히 인류가 만들어놓은 사회적 안전망을 품은, 그래서 새파란 젊은이의 패기나 무모함은 없이 적절히 고되고 적당히 편안한 여행이라 생각했다. 안전한 여행을 위해 적절한 겁을 장착한 나의 나이와 경험에 안도 했고, 한편으로 '도전정신'처럼 놓치고 있는 어떤 것이 있는 완벽하지 않은 나를 위한 완벽한 여행이라 생각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 특히 미국인들과 대화를 섞어가며 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 무리를 나왔을 때, 클로드는 그런 나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그는 그가 만난 미국인들 중 가장 의식 있는 이들로 두 커플을 평가했지만 나는 팁 문화에 대한 비판과 80리터 가방에 보드카와 위스키를 가득 채워 왔다는 그 사람들과 크게 나눌 대화가 없었다. 클로드는 미국을 얕잡아 보는 유럽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 할 정도임에도 그들과의 대화는 즐겼고, 나는 그들에게서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영화 속 크리스토퍼는 완벽한 고립을 꿈꿨지만 야생으로 떠난 후,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만나며 짧지만 진정한 유대를 느꼈다. 비록 자존에 대한 꿈을 꿨지만 인간의 깊은 내면에는 '연결'이라는 욕구와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 만남들이었다. 클로드도 연결 욕구가 생겨난걸까?
산 위를 걷고, 걸으며 나는 아무 생각 없다가도 이따금씩 떠오르는 생각들에 귀를 기울였다. 돌로미티의 풍경은 사색을 위한 완벽한 배경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 울퉁불퉁한 바위와 푸른 계곡이 이어진 지평선을 바라보며, 지구와 깊은 연결을 느끼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역시 그런 자연과의 연결감을 되찾으려는 고귀한 의도를 가진 여정을 떠났지만 부족한 준비와 야생의 가혹한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그는 이상과 용기만을 가지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고, 이는 결국 그의 비극적 결말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에 반해 나의 여정은 표시된 길과 지도, 안전한 피난처가 조금은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가다 보면 존재한다는 안도감과 함께 했다. 휴대폰 신호가 없는 산에서 하루 종일 걷는 건, 일종의 해방감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미묘한 불안함을 함께 주었지만 말이다. 적절한 탐험과 안전의 조화 덕택에 나는 온전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퉁퉁 불어 오르는 무릎 외에는 나의 안위를 해치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에코이즘, 즉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철학이 이 여행동안 내 생각의 한가운데 있었다. 산장들은 단순하지만 편안한 모습으로 환경과의 공존을 보여주었다. 샤워시설이 없거나, 3분 만에 끝내야 하는 찬물 샤워장에서 나는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익여야만 했고, 그렇게도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산장들은 자연의 균형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기본적 편의시설 잘 제공했는데, 이는 크리스토퍼가 추구했지만 공생하지 못했던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몸소 실천하는 시스템이었다. 부족한 자원을 소중하게 다루며 머무르는 자리를 깨끗하게 만드는 것. 극단에 치닫지 않더라도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지구와의 관계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에코이즘은 야생을 정복하거나 사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등산을 하며, 한걸음 한걸음이 삶과 자연에 대한 명상이 되었다. 바람 부는 소리, 돌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 새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 모두가 영혼을 달래주는 심포니 같았다. 산들은 고요한 수호자처럼 그곳에 서있었고, 오랜 시간을 견뎌온 인내와 겸손의 교훈을 전해주었다. 그 고요한 순간들 속에서 나는 명료함과 평온함을 찾았다.
마지막 산장을 가는 일정을 남겨놓고, 나의 강하지만 연약한 무릎에는 물이 차올라 퉁퉁 붓기 시작했다. 나는 클로드에게 하산을 제안했다. 이미 6일 차 산에 있으니 자연도 어느 정도 지겨워졌다. 자칭 자연인이라는 소개글이 민망해질 정도로 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마을로 내려가고 싶었다. 뭘 사거나 먹고 싶다기 보단, 사람들이 함께 모여 커뮤니티를 이루고 사는 사회의 모습이 보고 싶었던 거다. 하산의 방법도 여러 가지였으나, 걷기보다는 케이블카를 택했다. 내가 케이블카로 달려가자 클로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자연, 자연을 외친 이의 최후가 케이블카 하산이라니. 조금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5박 6일로도 충분한 돌로미티였다.
결국 돌로미티에서의 시간은 야생과 문명 사이의 조화로운 춤이었다. 우리를 지탱해 주는 섬세한 균형, 자연과 사회, 문명에 대한 성찰이었다. 진정한 자유는 사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 사이의 연결을 모두 포용하는 것이 아닐까? 이 균형이야 말로 잘 사는 삶의 본질이며, 돌로미티와 인투 더 와일드가 나에게 전한 진정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