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요양원

by 한양희

서울에서 큰 숙모까지 내려왔으면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함이었으리라. 그 곳에 함께 계시는 할머니는 알까? 그만큼 가기를 미뤄왔던 양로원에 본인을 보내겠다는 결정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 진다는 것을.

할머니의 청력으로는 분명 함께 앉아 있긴 하지만 무성영화를 보는 듯 벌어지는 입들만이 존재할 뿐이었을거다. 본인에 대한, 본인을 위한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할머니의 의견은 전혀 반영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가 본인의 집에서 자유롭게 혼자 살 수 있다고 했지만, 이미 이번과 같은 사단이 여러 번 나지 않았던가. 할머니가 스스로의 안위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예전보단 줄어들었다는 것 또한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결론을 알고 있는 가족회의 결과에 대해 나는 엄마에게 추가로 묻지 않았다. 마지막 통화가 있고 3일 동안 엄마에게 전화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 백수인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더 자주, 더 오래 엄마와 통화했지만 이번엔 그저 모른 척하고 싶었다. 내 할머니이기 이전에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건 할머니의 선택이 아니었기에 결론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할머니와의 화상 전화를 한 지 3일 후, 엄마에게 전화한 그날. 엄마는 또 울고 있었다. 엄마는 울보다.

엄마 얼굴을 비치는 화면 뒤로 엄마가게 구석에 있는 작은 소파의 엉덩이 닿는 부분이 보였다. 앉아 있을 힘도 없었나 보다. 엄마는 낡은 그 소파에 누워있었다.

“응, 큰딸.” 하고 한마디 외친 뒤,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늘 할머니 양로원으로 입소했어.”

“아, 그랬구나.” 한 동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 마음이 안 좋겠네.”

“응, 잘 있지? 김서방도? 나중에 얘기하자.”

그렇게 또 한 동안 작은 휴대전화 스크린이 전해주는 엄마의 입자들을 바라보았다.

할 수 있는 위로가 없어서 “엄마, 안녕. 잘 있어.”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할머니가 잘 있을 수 있을지. 그곳에서 다치지는 않을지. 혹시라도 버려졌다는 마음의 상처를 받지는 않을지.


엄마와 전화를 끊고 기도했다. 신이나 초월적 존재가 우리를 보살펴 준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기에 기도를 한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위급한 상황이나 아쉬운 것이 생기면 할머니와, 엄마가 오랫동안 의지해온 부처를 찾는다.

‘우리 할머니가, 떨어진 곳에서도 우리의 사랑을 느끼게 도와주세요. 홀로 너무 무섭지 않게 씩씩하고 용감하게 오늘을 맞이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길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실 내가 알던 요양원은 너무 끔찍한 곳이다.

고등학교 시절 봉사활동을 위해 매달 찾아간 치매 요양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병원의 딱딱한 침대에 눕혀져 TV만 하염없이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한 달에 한번 우리가 찾아가 재롱을 피워봤자 그때뿐. 벌써 15년도 더 된 오래전이었으니 지금은 다르겠지 했지만 돌이켜 보면 3년 전 고모할머니를 뵈러 찾아간 요양원도 별반 차이 없이 노인들의 수용소 느낌이었다. 심지어 고모할머니께 드리려 가져간 요거트는 노인들이 똥을 많이 싸게 해서 관리하는데 어려우니 도로 가져가라고 관계자가 이야기 한 터라 이곳에서 노인의 지위는 돌봐야 하는 사람보다는 처리되어야 하는 물건 취급을 받는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입소 당시, 조금 있다 건강을 회복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고모할머니는 그곳에서 7년째 머물고 계시다. 처음에는 방문 온 가족들에게 언제 집에 가냐고 보채셨지만 체념한 지 오래인 무기력해진 98세의 노인은 자식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방문한 딸, 아들을 보아도 더 이상 크게 반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건강보험공단에 다니는 친구가 알려준 통계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이 죽기 전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평균 8년이라고 한다. 아마 고령화로 인해 요양원에 계신 분들이 많아져서 그런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노인이 된 후 집이 아닌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별로인지는 내 미래에 그걸 대조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나는 내 말년을 짐짝처럼 다루어지는 그런 곳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 그런 곳에 할머니가 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정말 할머니의 삶이 온전히 할머니의 삶이 될 수 있을까? 요양원이 어떤 모습인지 안다면 집을 떠나 시설에 들어간다는 것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과연 이루어질 수나 있을까? 생전 모르는 남들과 병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옷을 입고 여생을 누워 있는 삶. 하지만 각자의 삶이 있는 자식들이 자신의 일상과 부모의 안위를 살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가 요양원이리라. 그 슬프고 안타까운 선택지에서 우리 할머니도 예외일 수 없었다.


착한 나의 동생들은 주말이 되어 집을 찾았다고 한다. 치질 수술 후 퇴원한 아빠와 막내는 여전히 환자였기에 수빤의 남친 성창이 차를 몰고 모두 함께 집으로 가 할머니 걱정에 우울할 엄마를 살폈다. 동생들과의 카톡을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할머니는 요양원 입주 후 한 달간은 방문할 수 없다고 한다. 가까운 이들의 방문이 할머니의 적응에 방해가 되기에 한 달간은 전화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양원 입소 2일 차의 할머니는 식사도 잘하셨고, 괜찮게 있다고 했다. 괜찮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떻게 잘 있겠냐마는 할머니가 계신 곳은 내가 생각했던 요양원과는 다른 모양인가 보다. 노치원처럼 일과 중에는 인지능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도록 공작활동과 놀이 등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각자의 병상으로 돌아가는 구조인가 보다.


어쩌면 내가 기존에 방문한 요양원도 단체 활동 시간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말에만 방문했으니 주중 일과가 어떤지는 사실 잘 알지 못하지 않는가? 섣부른 판단에 모든 요양원을 매도해 버린 것은 아닌가 잠시 생각해 본다. 아니면 이미 할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셨으니, 내 마음 편하고자 이런저런 가설을 세워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할머니는 조금은 괜찮은 곳에 가 계시다고, 그래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고, 외롭지 않게 친구도 사귈 수 있는 공간에 있다고. 그렇게 믿는 것이 나와 할머니, 그리고 이 모든 결정을 함께한 엄마와 삼촌들의 정신건강에 좋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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