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의 저체온증

by 한양희

네모난 화면 속 엄마는 울고 있었다. 엄마는 눈물을 참아가며 간신히 이야기했다. 오늘 외할머니가 양로원으로 입소한다고. 지구 반 바퀴. 미국에 떨어진 나에게 까지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본인의 마음을 꾸욱 눌러봤지만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슬픔이 가득했다.


그동안 혼자 집에 계시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할머니는 몇 번이나 넘어져 크게 다쳤었다. 지난주에는 차가운 마당에서 쓰러져 있는 걸 노치원 선생님이 아침에 발견했다. 한 겨울 이었다. 할머니의 양로원 입소는 그 이후 이루어진 결정이다. 그날 할머니가 언제부터 마당에 꼬꾸라져 계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병원에 실려간 할머니는 저체온증이었고, 의사는 노인들이 저체온증을 겪을 경우 폐렴을 동반할 수 있으니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할머니 걱정에 한달음에 안동으로 달려간 엄마와는 달리, 같은 지역에 사는 삼촌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병원에 오지 않았다. 때마침 아빠는 치질 수술을 해서 동생들이 사는 대전의 어느 항외과에 입원 중이었고, 엄마 혼자서 동그랗고 무거운 할머니를 돌보는 사투를 이어갔던 거다. 이 모든 상황을 불타는 똥꼬를 부여잡고 아빠가 나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나는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입원실을 기다리고 있다며 엄마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걱정하지 마 진아. 할머니도 많이 진정됐어. 할머니가 그러더라. ‘아이고, 정말 죽을 뻔했다니깐?’ 죽는 게 안 무섭다더니, 정말 죽을 뻔했다고 하는 게 너무 웃기지? 하하하.”

엄마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엄마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지만, 엄마에게 연락하라는 말을 남긴채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할머니의 병실이 생겼다. 할머니는 저체온증이라는 ‘증상’으로 입원해야 했기에 일반병실에 가야 했지만 병원 측의 실수로 노인 병동에 옮겨졌다. 그곳 간호사는 노인병동에는 보호자가 같이 입실할 수 없다고 엄마를 거의 내쫓다시피 했다. 본인을 병원에 버리고 간다고 생각한 할머니가 진정하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며 난동을 피웠는데, 엄마는 할머니가 진정할 수 있게 조금만 있다가 간다고 사정했지만 간호사는 엄마를 매정하게 병실 밖으로 내보냈다.

“예외를 두면 다른 사람들도 다 편의를 봐줘야 해서 안 돼요.”


엄마는 울면서 병실을 나왔다. 내가 다시 전화 했을 때, 엄마는 꺽꺽 소리가 나도록 울고 있었다. 그런 엄마를 위로 할 틈도 없이 엄마는 병원측의 부름으로 황급하게 전화를 끝 맺었다.

병원이 본인들의 실수로 할머니를 노인 병동으로 배정한 것을 알고, 할머니를 일반병동으로 다시 옮겼지만 할머니의 상태는 더 안 좋아져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갑작스레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거다. 할머니는 새 병실에서도 소리를 질러댔고 엄마를 때리기도 하셨다.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견디는 게 힘들었고 주변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에 어쩔 줄 몰랐다.


어제 응급실에 도착해서 병실을 두 번 옮기는 동안, 엄마는 밥도 먹지 못하며 이틀 동안 적을 알 수 없는 전쟁에서 사투를 벌였다. 엄마가 싸우는 대상은 할머니도 아니었고, 할머니의 병도 아니었다. 60세, 엄마의 인생이 걸어온 대결이었다.


보이스 톡을 타고 진이 다 빠진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또 울었다.

“이럴 때는 삼촌들이 너무 밉다.”

혼자서 버거운 상황을 감당하는 엄마가 평소에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오빠와 동생을 원망하고 있었다.

“삼촌들은 어딧 는데?”

“바쁘단다. 나는 안 바쁜가? 자기들만 바쁘냐고. 정말 너무 밉다.”

엄마 옆에서 할머니를 같이 돌보고, 병원에 컴플레인을 걸고, 엄마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엄마의 언니가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빌어먹을 텍사스에 묶여있는 내 몸뚱이는 ‘엄마 괜찮아.’ 라는 말 밖에 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있는 막내 동생 진매(동생2호)를 통해 확인한 삼촌들의 사정은 막내삼촌의 경우,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시험 준비, 둘째 삼촌의 경우, “어차피 가 봤자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뭐.”였다. 사실을 무미건조하게 전달해서 상황을 가볍게 만드는 위트있는 둘째 삼촌의 화법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대답에서 만큼은 정말 화가 많이 났다.


동생들에게 엄마의 상태를 전하고, 걱정이 된다고 이야기하자, 마음 깊은 수빤이(동생1호)가 남친인 성창과 함께 안동으로 나섰다. 진매도 함께 하고 싶었지만 아빠와 같이 치질 수술을 받은 터라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아빠와 스스로의 간호를 하기로 하고 대전에 남았다.


수빤이가 남안동 톨게이트를 나와 엄마에게 전화했을 때, 엄마는 할머니와 퇴원을 했다며 외갓집으로 곧장 오라고 했다. 할머니가 병원에서 계속 고함을 치고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퇴원 조치가 내려졌단다. 수빤이가 외갓집에 도착했을 때, 두 삼촌들은 집에 와 있었고, 엄마는 5년은 늙어버린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집에 오니깐 마음이 편하다. 할머니도 긴장이 풀렸는지 주무셔.”


엄마는 쌀을 씻고 밥을 했다. 돈 버는 사회생활은 엄마도, 삼촌도, 아빠도 모두 똑같이 하는데, 집에서 밥하고 설거지하는 사람은 또 엄마다. 할머니를 데리고 병원에서 온갖 고생을 치르고 난 후에도 엄마가 밥을 했다. 그렇게 엄마가 지은 밥을 먹고 수빤이와 성창이가 대전으로 돌아왔고, 삼촌들도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엄마와 할머니는 그렇게 둘이 남아 하루를 더 보냈다.


다음날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을 때, 엄마는 화면 안에 할머니를 보여줬다.

“아이고 진아, 엄마가 할미 때문에 고생을 엄청 많이 했어.”

“할머니, 걱정 마세요. 할머니만 괜찮으면 다 괜찮아요.”

“밥은 먹었나?”

“네, 할머니는 식사하셨어요?”

“잘 안 들린다.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잘 지내.”

할머니와의 짧은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고, 정신이 맑은 모습에 안도감이 들었을 때, 화면에는 서울 사는 큰 외숙모와 막내 삼촌이 들어왔다.

“어? 삼촌안녕? 숙모도 왔네?”

“응, 우리 진이 잘 있지?”

엄마는 삼촌, 숙모와 함께 외할머니를 모시고 중국집에 왔다고 했다. 나중에 통화하자고 전화를 끊었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할머니에 대한 가족회의가 열리는 것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