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는 외손녀와 한국에 있는 외할머니

by 한양희

남편과 살기 위해, 미국에 오기 일주일 전, 외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했다.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얘기했다.

“할머니, 다시 한국에 오려면 일 년이 걸려요. 일 년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그래, 알겠다. 그런데 니가 올 때까지 내가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연히 있지, 무슨 소리 하노? 얼른 갔다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할머니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도 따라 울었다.


파킨슨병과 동반한 치매는 할머니를 계속해서 괴롭힌다.

헛것이 보이고, 헛소리가 들린다.

전쟁이 났다고 밤 새 전화 하는 통에 엄마는 새벽에 잠을 자지 못한다.

요즘은 증상이 더 심해지셔서 요양원 입소 전까지 엄마는 주말마다 가는 외갓집 방문을 수요일에도 추가해서 일주일에 두 번으로 늘렸다. 엄마는 체력도 약한 데다 마음도 여려서 할머니를 보고 올 때마다 운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외갓집에 갔다 오는 차에서 항상 눈물을 흘렸다. 그때의 울음과 지금의 울음은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달라져 있다.


할머니는 본인이 이 세상에 가지고 온 장작을 다 태워 가고 있다. 활활 타올라 여기저기 온기를 나누어 주던 할머니의 그 마음이 이제는 몇 개비 남지 않은 장작개비의 희미한 불꽃처럼 찬 겨울바람에 아스라이 지펴지고 있다.


미국에 오고 나서는 할머니 생각이 더욱 많이 났다. 현재의 나는 영주권이 나오기 전까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못 간다고 생각하니 더 서러워진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한두 달에 한 번씩 할머니를 찾아갔다. 혼자서 외롭게 지낼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이곳, 저곳 모시고 다니며 바람도 쐬고 싶어서, 무엇보다도 할머니의 사랑스럽고 호탕한 웃음을 보기 위해서다. 할머니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리고 금방 눈물이 흐른다. 한국에 있을 때는 손녀의 마음으로 할머니가 보고 싶고 걱정이 되었는데, 결혼한 후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은 왠지 모르게 할머니의 마음이 되어 할머니를 이해하고 연민하게 되었다. 여자로서 한 사람으로서의 할머니가 이제야 보이는 걸까?


갑자기 쓰러져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외할아버지를 대신해 삼십 대 초반부터 사 남매를 키우며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할머니. 무거운 꾸러미를 일평생 이고 지느라 몸이 성할 틈 없었지만 할머니는 고된 고추장사일 덕에 아이들을 키우고 시집장가보낼 수 있었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그녀가 감사했던 젊은 날의 노동은 파킨슨병과 허리 디스크, 류머티즘 관절염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사랑 할머니는 아픈 몸과 치매로 자신을 잃고 있다. 나에게 할머니는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드라마다.


내가 할머니의 치매를 처음 맞닥뜨린 건 2020년 어느 날이었다. 큰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난 후 할머니는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졌었다. 외할아버지를 보냈을 때 보다 자식을 앞서 보낸 마음이 더 아렸나 보다. 홀로 텅 빈 가슴을 안고 식사도 거르며 건강이 날로 악화된 할머니에게서 기억력 감퇴의 증상이 보인다고 엄마는 말했다. 헛소리를 하거나, 헛것을 보는 것 같다고도 했다. 나는 항상 또렷하고 명랑한 할머니를 봐 온터라 엄마가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건망증은 나에게도 있고 깜빡깜빡하는 것은 우리 집의 유전 아니겠냐며 기억 못 하는 게 큰일은 아니라고 엄마를 안심시켰다.


처음으로 혼자 할머니를 찾아간 나는 큰소리로 ‘할머니 손녀 왔어요.’를 외치며 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가운데 방에서 구부러진 허리로 느릿느릿 걸어 나오면서 ‘우리 손녀 왔는가.’하셨다. 집안을 들어서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할머니가 혼자 앉는 작은 식탁 위, 아무런 고명 없이 물에 불린 국수 면이었다.

“할머니 이거 못 먹겠는데 버릴까요?”

“이거 아까 니 삼촌이 와서 내가 끓인 거야.”

“누구 삼촌이 왔었는데요?”

“큰애가 왔지. 국수 먹고 싶다고 해서 끓여놨더니.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다가 그냥 가더라고.”

나는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국수면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귀신이라도 왔단 말인가? 일 년 전 돌아가신 큰 외삼촌을 위한 국수가 무서웠다. 할머니는 어디에 살고 계시는 걸까? 꿈과 현실 그 경계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내가 있는 이 세계에 데려오고 싶었다. 삼촌은 죽었고, 할아버지도 돌아가셔서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그런 그들이 보였다면 그것은 허상이나 꿈이니 의심하지 말고 현실에 돌아왔을 때 슬퍼하고 명복을 빌면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삼촌을 더 이상 대회의 주제로 삼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식탁 위에 국수를 내버려 둔 채 할머니의 끼니를 챙겼다.


“할머니, 좋아하시는 호박죽 사 왔는데, 데워드릴까요?”

“그래, 좋네. 맛있게 먹어보자.”

호박죽을 만들지 못하는 나는 마트에서 파는 호박죽 팩을 여러 사다가 할머니 찬장에 넣으며 이건 그냥 끓는 물에 봉지 째 넣어 데워 드시면 된다고 할머니께 설명했다. 내 설명을 잘 이해하셨을지 걱정스러웠다. 호박죽을 먹고 난 후에는 지금까지 내가 알던 할머니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옛날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어렸을 적 얼마나 울었었는지, 엄마와 결혼하기 전 아빠가 얼마나 까맣고 말랐었는지, 당신이 어디서 어떻게 고추 장사를 했는지 오래될수록 더 상세하게 기억나는지 우리는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와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 내가 살았지만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옛날의 내 모습을 할머니를 통해 듣는 것이 좋았다. 내가 모르는 엄마의 어릴 적, 아빠와 연애하면서 할머니가 반대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까지. 할머니가 아니면 해 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둘이 앉아 얼굴을 맞대는 게 좋았다.


하지만 큰 외삼촌의 이야기로 소재가 흘러들어 갔을 때부터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불쌍해서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큰삼촌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바람을 피우고, 가정폭력도 일삼았던 그 사람이 아들이 되었을 때는 세상 모든 선악의 기준에서 벗어나 가장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이 되나 보다. 할머니도, 엄마도, 그의 아내였던 숙모도 삼촌의 살아생전 잘못 보다는 그가 겪었던 모진 세월과 때 이른 죽음 앞에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다음날, 할머니는 나를 불러 방문까지 걸어 잠그더니 본인의 통장을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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