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체국 적금이 만료되어서 찾아가지고 농협에 넣었는데 그걸 이 농협 놈 들이 나한테 안 돌려준단 말이야. 우리 손녀가 똑똑하니깐 이걸 찾아 줘야 해. 그리고 네 엄마가 내 돈을 계속 가져가려고 하고 있어. 빚이 많다면서 맨날 돈 없다 돈 없다 앓는 소리를 한다니깐. 내가 너는 딱 믿으니깐. 이걸 보여주는 거야. 이 통장을 딱 여기 감춰서 쥐고 있어야 해.”
치매 증상으로 주변인을 의심하고 돈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는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우리 할머니라니. 머리가 띵 했다. 할머니의 왜곡된 기억과 허상은 꽤나 구체적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은 할머니를 돌보러 자주 오는 엄마에 대한 오해와 망상이었다. 엄마가 칼을 간다든가 독약을 푼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면 이 이야기를 들을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미어질지 상상해 본다. 말로만 듣던 할머니의 상태를 직면하고, 엄마에 대한 오해나, 돈에 관련된 부분에는 아무리 잘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본인의 말씀만 하시는 할머니를 보니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답답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가장 답답한 사람은 할머니 본인 일테다. 믿고 사랑하는 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두려운가?
그 후 할머니는 계속해서 엄마와 요양보호사가 돈을 가져간다고 의심하고 자신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혼란스럽고 답답했지만 그렇게 할머니의 정신이 온전치 않음을 확인한 후부터 할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할머니의 판단력이 흐려져 더 이상 일상의 생활을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할머니가 뭔가를 잘못 생각하고 판단해서 몸이라도 다치지 않을까, 가스 불 끄는 것을 깜빡하고 불이라도 나지 않을까, 헛것이 보여 침대에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무서운 꿈에 소리 지르다 사례라도 걸리지 않을까, 사소한 일들이 부상과 죽음의 가능성이 될까 두려웠다.
어느 겨울은 할머니의 목욕을 위해 수빤이와 할머니의 옷을 훌렁훌렁 벗겼다. 할머니가 추워서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 빠른 속도로 씻기는 게 관건이었다. 할머니의 웃옷을 벗기고 속옷을 내리려 하는데, 할머니가 안 된다며 저항 아닌 저항을 하셨다. 할머니의 팬티에는 자그마한 앞주머니와 옷핀이 꽂혀 있었는데, 본인이 가지고 있는 현금을 거기에 넣어두셨던 것이다. 돈에 대한 할머니의 집착이 커져가고 있던 시점이라 잘 들리게 할머니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할머니 돈 안 가져가요. 여기 새 팬티에 딱 넣어둘게요.”
“안 된다. 안 돼.”
나는 억지로 할머니의 팬티를 내리려 하며 돈을 안 가져갈 거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당부에도 할머니는 몸을 돌려 팬티 벗기를 거부하셨다. 할머니가 울먹이면서 하는 말은 우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무리 손녀딸이라도 강제로 팬티를 벗기는 이런 일이 어디 있노? 아무리 늙은이라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법이다. 이건 안 된다.”
아차 싶었다.
예전에 치매노인의 옷을 공개적으로 갈아입혀 성추행 판결을 받은 요양보호사의 뉴스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이 떠오른 것이다. 치매 노인도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을 할머니의 발언을 통해 확인한 것임과 동시에, 치매라는 것이 인간성과 존엄성을 앗아가는 것은 아님에도 이를 무시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사실 치매가 이렇게 까지 전개되기 전엔 할머니의 허리 수술 이후 움직임이 편하지 않아 팬티를 벗겨드리기도 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할머니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채 속옷을 벗기려 했던 적은 없었던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너무 부끄러웠고 너무 죄송했다.
나는 할머니를 한 사람으로 한 여성으로 대하지 않는 못난 손녀였던 것이다. 수빤이도 할머니의 울먹임을 보고 나에게 그만하자고 했다. 우린 할머니께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할머니 정말 잘못했어요. 진짜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죄송해요.”
할머니에게 사과를 하고, 할머니를 안심시킨 후 속옷을 벗겨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다. 할머니의 허락이 겨우 떨어지고 우리는 할머니를 목욕시킬 수 있었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내 마음속의 눈에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새롭게 변한 할머니를 알게 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할머니의 모습이었지만 그간 몰랐던 그녀의 숨겨진 면을 발견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그녀를 더 잘 알게 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할머니의 치매를 인식하는 나의 태도는 ‘할머니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에서 ‘할머니 그런 마음이시군요.’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가장 걱정하는 건 할머니의 마음이다.
텅 빈 마음.
홀로 지내는 외로운 할머니의 마음에 상실감과 허무함이 파도처럼 들이닥쳐 할머니를 잠식할까 두렵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텅 빈 시간과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 속에서 할머니는 열심히 헤엄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공허함 속에 파묻혀 있다. 이때 등장하는 머릿속 온 갓 상상은 할머니에게 현실이 되기에 충분했다.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더 많이 보이는 허상들이 할머니를 가득 메웠고, 그곳에서 스스로를 잃어 가고 있는 그녀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했다. 슬펐다.
미국에 오기 전, 주중 오전 나절에는 요양 보호사 선생님이 와서 할머니를 돌보고, 주말은 엄마와 막내 외삼촌이 번갈아 가며 외갓집에서 지냈다. 나는 기껏해야 한 두 달에 한번 할머니를 보러 갔다. 삼촌집이든 우리 집이든 할머니가 오셔서 살았으면 했지만 할머니는 말했다.
“아파트는 답답해서 못 있어. 그리고 너희 집에 가면 안사돈이 계시는데 불편해서 어떻게 있노. 하루라도 이렇게 자유롭게 지내는 게 좋다. 손녀가 이렇게 오면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얼마나 좋노?”
늙었다고 자유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대로 행동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 아프다고 해서 그게 덜 중요해지는 게 아니란 걸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할머니의 자유를 존중하기에 어디에 가서 같이 살아라고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그게 아무리 엄마와 삼촌, 나를 불안하게 해도 말이다.
할머니가 농협에 가서 돈을 안 준다고 소란을 피운 적도 있고, 혼자서 넘어져 고꾸라져있는걸 뒷집 아줌마가 발견해 세운적도 있고, 엄마가 찾아갔을 때 밥을 안 해 먹어 밥솥에 곰팡이가 뽀얗게 피어있었던 적도 있단다. 그런 할머니를 두고 엄마와 삼촌들 사이에 요양원 이야기가 계속 오고 갔다.
사실 할머니가 요양원에 간다는 건 잘 그려지지 않는 미래라 생각했다. 할머니가 보고 싶으면 지난 30년간 들락날락했던 자그마한 외갓집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한단 말인가? 양로원에선 같이 이불 펴놓고 잘 수도 없고, 마당에 불을 지펴 고기를 구워 먹을 수도 없는데 말이다. 할머니를 시설에 보내는 건 우리가 할머니와 함께 한 모든 생활이 더 이상 현실이 아닌 추억에서만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할머니를 외갓집에서 만나고 싶다. 지금 요양원에 잠시 들어갔지만 곧 회복해 일상을 되찾은 할머니를 외갓집에서 만나, 맛있는 것도 해드리고, 이불을 펴놓고 함께 자고 싶다. 할머니 사랑을 느끼면서. 늙어도 자유가 중요하다는 할머니 곁에서 옛날이야기도 하고 요즘 이야기도 하며, 내가 얼마나 할머니를 사랑하는지 손잡고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