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다. 여름방학 30일, 겨울방학 30일. 꼬박 한 달을 채워가며, 수빤이와 나는 외갓집에서 방학을 보냈다. 어느덧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나와 동생이 외갓집에 보내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때 당시만 해도 엄마는 우리의 정서적 발달을 위해 시골에서 방학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외롭게 시골 생활을 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벗이 될 수 있는 자신의 아바타를 보낸 것이었다. 더불어 화장품 가게에 시어머니까지 모셔야 하는 팍팍한 일상에서 우리를 잠시 떼어놓아야 약간은 여유로워졌을지도 모른다.
방학이면 외갓집에 가는 게 당연했고, 너무 좋았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늘 넘치게 무언가를 주셨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주는 사랑이,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그 모습이 좋았다. 뚱뚱해도 못생겨도 무슨 잘못을 해도 그저 보듬어주셨다.
할머니는 우리가 방학 동안 외갓집에 가 있는 동안에도 고추를 팔러 장에 가셨다.
여름방학 중, 영양장에 할머니가 나가신 어느 날, 활짝 열어둔 거실의 대청문 앞, 파아랗게 돌돌 돌아가는 선풍기를 둘러싸고 4학년의 나와, 2학년인 수빤이, 할아버지는 점심으로 무얼 먹을지 고민했다.
“할아버지, 저 라면 잘 끓여요.”
“아이고, 우리 진아가 라면을 잘 끓이나? 그럼 한번 끓여봐라.”
할아버지는 말씀마다 ‘아이고’를 붙인다. 손녀가 하는 말에 진심을 불어넣기 위한 심호흡이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아이고를 좋아했다.
“몇 개 끓일까요?”
“할아버지는 면을 좋아해서 두 개를 먹는 단다.”
“저도 라면 많이 먹고 싶어요. 저는 한 개 반 먹을래요. 수빤이 몇 개 먹을래?
“나는 한 개.”
“그럼, 다섯 개 끓이자.”
나와 수빤이는 라면 다섯 개를 끓였다. 푹 퍼진 라면냄비와 스뎅 그릇 3개를 들고 화려한 꽃이 그려진 동그란 양은 상의 접힌 다리 세 개를 펼쳐 선풍기 앞에 앉았다.
“아이고, 우리 진아가 라면을 아주 잘 끓였네. 할아버지가 김치도 꺼내줄게.”
4학년의 나는 스스로 라면을 끓여 할아버지와 동생을 대접할 수 있어서 자아가 한껏 치솟아 있었다.
더운 여름 매미소리는 무성했고, 우리는 땀을 쫄쫄 흘려가며 라면을 먹었다. 평소에 엄마가 못 먹게 하는 라면을 한 개 반이나 먹을 수 있다니. 후루룩 넘어가는 라면 맛이 기가 막혔다. 하지만 초등학생 둘과 노인 하나가 라면 5개를 다 먹을 수는 없는 법. 아무리 라면을 좋아한다지만 나는, 아니 우리는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먹다 먹다 지쳐, 결국 라면을 남기고 우리는 마루에 널브러졌다.
“할아버지 더는 못 먹겠어요.”
“그래 괜찮다. 나도 다 먹었다.”
그렇게 뒹굴뒹굴 마루를 구르던 우리는 너무 배가 불러 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진아. 지야. 할미 왔다.”
“할머니~. 다녀오셨어요?”
할머니의 양손엔 또 무언가가 잔뜩 들려있었다. 얼른 손에 있는 검정 비닐들을 받아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꼬막과 할머니가 좋아하는 돼지 발목살이었다.
“아이고 우리 손녀들, 잘 있었는가? 할머니가 맛있게 요리해 줄게. 저녁 먹자. 점심은 뭐 먹었니?”
“라면 끓여 먹었어요. 우리 셋이서 다섯 개나 끓여 먹었어요.”
“그렇게나 많이? 잘도 해 먹었네.”
엄마였으면 야단 날 일이지만 할머니는 많이 먹어도 잘 먹는다고 칭찬해 주셨다. 4학년에 42킬로. 경도비만인 나는 소아비만으로 엄마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어린이였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 때문에 역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어린이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나는 경도비만도, 통통해서 못생긴 여자애도 아니었다. 착하고 예쁜, 사랑스러운 외손녀였다.
할머니는 새벽 3시부터 장에 다녀와 피곤할 텐데도 옷만 훌러덩 갈아입고 와서는 바로 요리를 시작하셨다. 지금생각하면 장에 다녀온 할머니는 아마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드셨을 거다. 하지만 그때는 할머니의 끼니 여부를 묻지 않았다.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엔 아직 어렸었다. 어린 시절의 식욕은 얼마나 왕성했는지 라면을 배 터지게 먹고도 할머니가 해주신 요리를 옴팡지게 먹었다. 할머니가 해주는 밥과 반찬은 아직까지도 내가 먹어 본 음식 중 최고다. 할머니의 고향은 순천. 전라도 사람이라 그런지 엄청난 요리솜씨를 가지고 있다. 아빠도 외할머니 손맛 때문에 집에 자주 온다고 할 정도다. 할머니가 뚝딱뚝딱 차려낸 맛깔나는 삶은 돼지고기와 텃밭에서 따온 각종 쌈들을 한 입 싸 우물우물하면 우주를 다 씹는 기분이다. 행복하고 충만한 기분. 음식으로 사랑받는 기분. 할머니에겐 음식으로 전해주는, 마음으로 전해주는, 그런 사랑이 있었다.
“밥 더 먹어라.”
배가 터지려고 해도 할머니는 늘 더 먹으라고 하신다. 더 먹어야 힘도 나고 공부도 잘한다고. 하지만 이미 위장 속 한가득 할머니의 터질 듯 한 사랑이 차오른 나는 할머니의 권유를 사양한다.
“할머니 다 드시면, 예지랑 설거지할게요.”
외갓집에 오면 효능감이 솟구친다. 내가 요리도 할 수 있고, 설거지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조건 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걸 느끼며 내 여름과, 내 겨울은 외갓집에서 흘러갔다. 물론 개학 3일 전엔 눈물을 흘리며 수빤이와 밀린 일기와 탐구생활 숙제를 하는 레퍼토리를 계속 반복했지만 말이다. 그때, 그렇게 많이 사랑을 받았기에 지금도 할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가득인가 보다.
얼마 전 내가 외갓집에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생활하며 느낀 이런 생각과 감정들이 지금의 내가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알고,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기초를 제공했다는 일종의 과학적 근거를 발견했다.
스탠퍼드 대학의 신입생 학장이었던 Julie Lythcott-Haims는 성공적인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라는 강연에서 사람의 성장과 관련하여 실시된 가장 오래된 종단적 연구인 하버드 그랜트 연구를 들어 이야기했다. 일에서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 첫 번째 해야 할 것은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잡일들, 청소나 설거지 등을 하는 사람 중 ‘나’도 포함된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어렵고 궂은일에도 물러서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집안일을 실천하는 경험을 통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더 나아가 학교나 회사에서도 앞서 나갈 수 있다.
성공적이고 행복한 아이를 키우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은 행복한 삶의 핵심이라는 것은 당연하기 그지없고, 이는 하버드의 연구결과도 뒷받침해 준다. 어렸을 때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려면 나를 는 보호자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 사랑을 느끼게 되어야 스스로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효능감과 사랑이 연구결과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깜짝 놀랐다. 글을 마무리 한 뒤 한참이 지나 발견한 이 강의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괜찮은 사람일 수 있었던 건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사랑스런 눈길을 쏟아붓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덕분이 아닐까? 옛 한옥집을 관리하기 위해 청소도 하고 화단에서 자라나는 상추와 가지, 토마토에 물을 줬기 때문이 아닐까?
공부를 잘하면 예쁨을 받고, 예의를 지키고 바르게 행동해야만 사랑받는 환경에서 벗어나, 내가 나일 수 있는 곳에서 만끽하던 그 여름과 그 겨울이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