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을 좋아한다. 코로나가 젊은이들에게 등산 열풍을 일으켜 요즘엔 온 산에 젊은이들이 그득 하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홀로 산을 타고 다녔다. 한라산, 태백산, 소백산, 설악산, 속리산, 마이산, 덕유산, 대둔산 등. 지금은 이름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여러 산들을 타고, 집 근처 계룡산은 10번도 넘게 주요 코스를 정복했다. 19년 여름휴가 때는 이탈리아 돌로미티로 떠나 알타비아 1이라는 트레킹 코스를 7일 동안 타면서 산장에서 먹고 자며 산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각별한 산 사랑은 외할머니로부터 비롯되었다. 산나물을 뜯으러 앞산이나 용바웃재를 열심히 뛰어다닌 탓이다.
할머니는 본인이 아는 산에 대한 모든 것을 나에게 알려주셨다. 외갓집 옆 산이 품고 있는 맑은 공기는 얼음골에서 나왔고, 머위는 재 넘어 있는 음지에 밭처럼 퍼져있다는 것을. 고사리는 산불이 난 뒤 더 많이 올라오고, 취나물과 각종 산나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직접 데리고 다니며 보여주셨다. 가을에는 밤을 줍고, 겨울에는 쓰러진 나무를 주워 땔감을 모아뒀다. 산딸기도 따고 개살구도 땄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산에서 나온다고 했다.
외갓집에서 밥을 먹으면 항상 나물이 그득하게 한 상 차려졌다. 그중 갈색의 통통한 고사리는 우리 식구 모두가 제일 좋아하는 나물이었다. 각자의 밥그릇에 밥이 떠졌지만, 우리 식구들은 커다란 양푼이에 밥을 모아 담아 산에서 가져온 각종 나물들과 텃밭에서 딴 신선한 푸성귀들을 가득 얹어 비벼 먹었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들깨 기름과 고추장만 있으면 어느새 한 그릇 뚝딱이었다.
먹은 만큼 생산도 해내야 하는 법. 수빤이와 나는 밥을 먹고 난 후, 오늘은 어느 산에 가서 산나물을 뜯지 의논한 뒤 커다란 비닐봉지를 챙겨 집을 나선다.
“뒷 집 엄마가 그러는데, 용바웃재에 고사리가 많데.”
산나물 중 채취하는데 가장 재미있는 건 아마 고사리일 거다. 고사리는 산속에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든 가닥가닥 올라와있는 신기한 나물이다. 식탁에 오른 고사리는 갈색이나 고동색인데, 산에 있는 고사리는 초록색이다. 우리가 먹는 고사리는 산에서 난 걸 말려다가 다시 불리는 형태이기에 색이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고사리가 초록색이란 걸 안다고 해서 찾기 쉬운 건 아니다.
처음 고사리를 찾아 나선 날, 할머니가 내 뒤에서 척척 한 다발을 꺾을 때까지 나는 아직 하나도 찾지 못해서 속이 상했다.
“진아, 거기 앞에 있네.”
“어디요? 어디?”
“니 바로 앞에.”
정말 용하게도 내 눈엔 안 보인다.
할머니는 내가 있는 곳까지 올라오셔서 고사리를 짚어주셨다.
“요깄네.”
“어? 여기 있네?”
세상에. 감쪽같이 숨어 있던 고사리가 할머니 손끝에서 마법처럼 나타났다. 매직 아이인가? 30cm 정도 되는 길이로 통통한 고사리 대가 쏘옥 올라와 있었다. 잎을 동그랗게 말고 공손한 듯 고개를 숙여 웅크리고 있는 것이 너무 귀여웠다.
하나를 따자 갑자기 내 눈앞에 고사리 밭이 펼쳐졌다. 지천에 널려 있는 고사리들이 드디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와 할머니 진짜 많이 보여요 이제.”
고사리를 찾기 위한 제3의 눈이 떠지자 너무 신이 났다. 수빤이도 그제야 고사리가 보였는지 열심히 고사리 채집에 나섰다. 고사리는 보물 찾기를 하듯 눈을 뜨고 땅을 주시하면 갑자기 눈에 쏙 들어온다. 방방 뛰는 나와 달리 조용하고 얌전한 수빤이도 어느새 고사리를 한 손 가득 잡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손녀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사리를 한가득 뜯었네. 고사리 풍년이다.”
“할머니, 우리 손이 왜 고사리 손이에요?”
“요 고사리 모양을 봐라. 가느다란 팔목에 주먹을 진 것처럼 잎이 말려있으니 아기 손 같지? 그래서 어린이나 아기 손을 가지고 고사리 손이라고 하는 거야.”
고사리보다는 조금 더 손의 형태와 기능을 가진 4학년과 2학년 어린이는 자신들의 손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둘은 고사리를 꺾는 데, 손 보다 눈이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고사리가 어느 정도 봉지에 차자 할머니는 추가 종목을 알려줬다.
“얘들아. 이리 와봐. 이게 바로 취나물이라는 거야. 취나물도 고사리처럼 이렇게 꺾으면 된단다.”
취나물은 나뭇잎 같이 생긴 초록 잎이 가지 없이 땅을 뚫고 연약하면서도 강인하게 솟아 있는 산나물이었다. 취나물은 서로 몰려 무리 지어 있는 모양이었다. 한 무리를 찾으면 그곳에 앉아 계속해서 봉지에 뜯어 넣으면 되었다. 처음 취나물 무리를 발견했을 때는 신이 나서 나물을 뜯어 담았다. 고사리 보다 쉽게 많이 주어 담을 수 있으니 많은 것을 얻은 것처럼 신이 났다. 하지만 계속되는 취나물 채취 작업은 어린이들의 산나물 채취 활동을 놀이보다는 노동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고사리 채집에는 하나를 찾으면서 얻는 성취감이 있지만 취나물 채집에는 그곳에 있는 것을 뜯어 봉지에 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할머니 이제 많이 뜯었으니깐 집에 가요.”
“안 돼, 아직 나물이 지천에 널렸는데, 온 김에 더 많이 따 가지고 가야지.”
“아이참. 집에 가고 싶은데.”
집에 가고 싶어도 할머니가 생각하는 할당량이 차지 않으면 우리는 산에서 내려갈 수 없었다. 중간에 힘이 든다고 그만두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할머니는 채취해야 할 항목을 추가로 알려주셨다. 하나의 줄기에 잎이 뾰족한 모양으로 여러 장 끝에 달려있는 참나물과 나무에 꼿꼿이 서있는 두릅, 민들레 나물, 하얀 즙이 나오는 토끼풀. 나와 수빤이는 갑작스러운 정보들을 처리하느라 서로에게 이게 맞는지를 확인해 가며 나물을 뜯었다. 산에 올라온지 두 시간이 넘자 어느새 우리의 봉지 봉지마다 한가득 향긋한 산나물이 가득 차 있었다.
“할머니 이제 봉지 다 찼어요.”
“우리 강아지들 고생했네. 이제 가자.”
몸통만큼 커다란 크기의 산나물 봉지를 한 아름 안고 집에 들어가자 할아버지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우리를 반겨주셨다.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많이 땄어?”
할아버지는 칭찬을 하실 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물고선 우리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며 안아주셨다.
“할아버지. 산나물이 진짜 많았어요. 종류도 많고 산에 엄청 많이 있어서 다 찾아왔어요.”
가만히 있는 수빤이를 옆에 두고 의기양양하게 산에서의 업적을 할아버지께 자랑했다. 평소 조용하던 수빤이도 한마디 거들었다.
“고사리는 찾기 힘든데도 계속 집중하다 보니깐 잘 보였어요. 그래서 많이 딸 수 있었어요.”
마당에서 할아버지에게 하는 손녀들의 자랑이 끝나자 할아버지는 산나물을 종류대로 정리하고 다듬으셨다. 산나물이 너무 많아 그 작업에도 나와 수빤이가 투입됐다. 할머니는 정리된 산나물을 조금 가져다가 금방 데쳐 소금과 간장,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맛을 낸 심심한 산나물 무침을 뚝딱 만들어 점심 준비를 하셨다.
“밥 먹자.”
나물 다듬는 것을 잠시 멈추고, 밥상 앞에 앉았을 때, 방금 까지만 해도 땅에 박혀 있던 나물들이 반찬이 되어 풀이 죽은 채 얌전히 그릇 위에 놓여있었다.
“우리 손녀들이 따온 나물이라 그런지 진짜 맛이 좋네.”
할아버지의 말씀은 빈말이 아니었다. 향긋한 나물의 향이 코끝에서 한 번 울리고, 쌉싸름한 맛이 혀뿌리 쪽에서 한 번 더 느껴졌다. 먹을거리가 어디서 왔는지 눈으로 보고, 직접 우리 자매는 편식 없이 나물을 잘 먹는 어린이가 되었다. 그리고 고기보다는 풀을 더 좋아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자연을 가까이에 하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내 스스로를 기특해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외갓집에서의 시간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