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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단 Sep 02. 2023

발 : 순례길의 첫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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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발을 들어 올려 숨을 들이쉽니다. 그리고 발을 앞으로 내어 놓습니다. 먼저 발꿈치가 땅에 닿고, 그다음에 발가락이 닿습니다. 숨을 내쉽니다. 발이 단단한 땅에 닿았음을 느껴봅니다. 나는 이미 도착했습니다.”

 - 《How to walk 걷기 명상》, 틱낫한



프랑스길의 시작 지점 마을인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했다. 비로소 일반인도, 여행자도 아닌 순례자가 될 시간이었다. 3개월 동안 스페인을 통과해 포르투갈까지 1400킬로미터를 걷는 장거리 도보 여행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첫 걸음마를 뗀 이후 걷는다는 행위가 이토록 내 삶에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 적이 또 있었을까. 물끄러미 내 두 발을 바라보았다.


바욘에서 열차를 타고 오는 동안 보이는 창 밖 풍경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다음 날 넘어야 할 피레네 산맥의 봉우리들이 보이고 붉은 지붕을 가진 크고 작은 집들이 나타났다. 다만 평온한 창 밖에 비해 열차 내부의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좌석 사이로 긴장감이 감돌았던 이유는 대부분의 탑승객이 세계 각국의 순례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가지각색의 커다란 배낭을 자신의 다리 사이에 끼워놓고 앉아 자신의 소지품을 만지작 거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반쯤 멍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 다들 어떤 이유로 이 길 위로 오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눈빛, 움직이는 입술에서 엷은 떨림이 보였다.



@생장피에드포르 St-Jean-Pied-de-Port



생장피에드포르의 순례자 사무소 직원들은 순례자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모두 약간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앞에는 회색 머리에 콧수염을 잔뜩 기르고 뿔테 안경을 쓴 늙수그레한 직원이 앉아 있었다. 그는 짧은 시간 동안 몇 단계의 작업을 끝낸 후 프랑스길의 루트와 알베르게 정보가 가득 적혀 있는 종이 한 장, 생장피에드포르의 도장이 찍힌 크리덴시알(순례자 여권)을 내게 건네주었다. 앞으로 이 종이 위에 수많은 마을의 도장들이 찍힐 것이다.


종교적 목적으로 이 길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순례라는 단어 자체에 종교적 의미가 많이 실려 있다 보니 ‘순례자’라는 칭호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각자 자신이 진정으로 보고 싶은 것을 보러 왔다고 생각하면, 믿음이 꼭 신에게만 국한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 내가 순례자가 되지 못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순례자의 징표인 가리비 조개를 배낭에 매달고 나서야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끝내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끝까지 잘 걸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 하나뿐이었다. 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은 두 발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순례길에서의 첫 아침이 시작되었다. 어스름이 깔린 여섯 시 무렵 숙소에서 나오자 자기 몸 만한 배낭을 등에 걸치고 출발하는 사람들, 아니 순례자들이 보였다. 조금씩 깨어나는 작은 시골 마을을 둘러보며 드디어 길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무색무취의 구름이 깔린 날씨 속에서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했다. 백색의 도화지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전 세계 순례자들의 표정을 보면서 그들이 왜 많은 걸 내던지고 순례길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궁금증은 돌고 돌아 나 자신에게 찾아왔다.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행복’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다. 내가 원하는 행복이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사회가, 문화가, 분위기가 만들어놓은 고정된 행복의 형틀에 맞추기 위해 애써왔다는 생각이 들자 죄책감이 엄습해 왔다. 스스로에게 지은 죄는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순간 흐릿하게나마 깨달았던 것 같다. 퇴사 후 ‘길’ 위에서 ‘길’을 헤매다 머나먼 산티아고 순례길에까지 오게 된 건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앞으로의 삶에서 나의 온전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랫동안 두 발로 걷는 것뿐이라는 것을. 에릭 와이너는《행복의 지도》에서 “행복의 안내자 역할을 빼면 종교에 무엇이 남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석해도 될 것 같았다. “행복의 안내자 역할을 빼면 순례에 무엇이 남겠는가?”





그때 발밑으로 가리비 모양이 새겨진 금색 판이 보였다. 반짝이는 세모 모양의 판 중앙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인 가리비가 그려져 있었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그 모양을 바라보았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스물여덟 해 동안 몸속에 쌓여 있던 무언가가 꿈틀대며 터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죄책감은 이내 거대한 해방감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 나는 이미 산티아고에 있구나.

마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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