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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 2주째에 접어들었을 무렵, 소규모 스루하이커 일행을 만났다. 우리는 편하게 2주가량 함께 여행했다. 버지니아에 도착하면서 내가 속도를 내는 바람에 그들 일행과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여러 주 또는 여러 달 후 내가 속도를 늦추거나 그들이 속도를 낼 때마다 마치 기적 같은 우연처럼 이 친구들과 다시 맞닥뜨렸다. 그 기적이란 물론 트레일의 기적이었다. 트레일이 우리를 마치 한 고리에 엮인 구슬들처럼 한 공간에 묶어주었던 것이다. (중략) 우리 일행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차를 얻어 타고 도시로 가서 싸구려 모텔(가끔은 여섯 명 내지 여덟 명이 한 방에 들어가기도 했다)을 찾아, 몸을 씻고 더러운 옷을 빨고 맥주를 마시고 말도 안 될 만큼 많은 양의 기름진 음식을 먹고 형편없는 TV프로그램을 보았다. 미개인들처럼 문명의 저속한 쾌락에 자신을 한껏 내맡겼다.”
- 《온 트레일스》, 로버트 무어
까미노 21일 차. 한낮의 단잠 같았던 레온에서의 휴가가 끝이 났다. 첫 연박이었던 나헤라에서의 휴식 이후 11일 만의 연박이었다. 레온에서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던 이유는 레온 대성당이 예뻐서도, 레온이 스페인 서북부의 큰 도시여서도, 고대 레온 왕국의 수도여서도 아니었다. 길 위에서 만난 다섯 명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미 꽤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온 박영민, 류성민, 김선화 그리고 카스트로헤리츠에서부터 연을 맺게 된 유중호와 김민서까지. 여섯 명이 함께 보낸 시간이 벌써 일주일을 넘어갔다. 비빔밥, 라면, 소주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던 카스트로헤리츠, 작은 운하와 혹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늘어서 있던 프로미스타, 드넓은 대지를 감상하며 맥주를 마시던 칼자디야 데 라 쿠에자, 프랑스길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사하군, 마을의 붉은빛이 밤하늘을 감싸던 렐리에고스, 그리고 레온까지. 우리는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함께 했고 서로의 술잔을 부딪히며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들이 생겼다. 순례 초반 단절을 원했었던 나는 그 바람이 민망하게 느껴질 만큼 그들과의 끈끈해진 연결이 좋았다. 그 사이 미국이나 영국,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또 다른 외국 순례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더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한국인들의 품은 불가항력처럼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하는 며칠간 불편함이나 불쾌함 같은 것들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서로의 길을 간섭하지 않는 일종의 전통이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이면 다 같이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했지만 길 위에서는 따로 걷다가 만나기도 하고 함께 걷다가 혼자가 되기도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마티아스의 말에 고무된 나는 여전히 천천히 걸었고 매번 꼴찌로 도착하기 일쑤였지만.
그즈음부터였을까. 나는 매일 꼭 돌아갈 집이 있는 기분으로 걸었다. 그건 크나큰 안정감이었다. 매일 주어지는 길의 끝에 따뜻한 얼굴들이 있었다. 로버트 무어의 표현대로 그들과 한 길에 묶여 있다는 든든함 때문인지 역설적으로 더 마음 편히 그리고 더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반복되던 매일의 함께하는 시간이 서로에게 스며든 탓일까. 대도시 레온에서의 연박은 자연스러운 결정일지도 몰랐다.
레온에서는 알베르게를 벗어나 에어비앤비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알베르게에서는 그곳의 운영 수칙을 따라야 하고 많은 순례자들이 함께 머무르기에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하는 공간이었다. 일탈을 꿈꾼 사람들과는 어울리는 공간이 아니었으므로 여섯 명의 순례자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아예 아파트먼트를 한 채 빌려버렸다. 우리는 마치 잠시 동안의 휴가를 떠나 온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깔깔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재료들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제육볶음과 달걀찜을 만들어 먹었다. 밤이 깊어지면 와인과 맥주를 동이 날 때까지 마셨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놓은 멜론, 에멘탈 치즈와 고다 치즈를 섞어 만든 소스와 크래커, 검붉은 색의 단단한 초리조는 안주로 더없이 제격이었다. 거기에 고국의 추억이 담긴 노래까지 더해지면서 우리는 각자의 길과 이야기를 한 움큼씩 꺼내놓고 길고 긴 밤을 보냈다.
여섯 명의 조합이 꽤나 흥미로웠다. 서른아홉 동갑내기 두 명, 스물둘 동갑내기 두 명, 스물여덟 동갑내기 두 명. 박영민과 유중호는 둘 다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었고, 류성민과 김선화는 둘 다 앳된 휴학생이었으며, 나와 김민서는 둘 다 회사를 그만둔 백수였다. 동갑이 뭐 대단한 일이겠냐마는 여행지에서는 그런 작은 우연들이 재미있거나 신기한 일처럼 치부되곤 했다. 첫 날 만났던 외국인 순례자들과도 ‘Team Superslow’라는 이름이 지어졌듯 여지없이 새로운 이름이 탄생했다. ‘222839’, ‘레오니즘’, ‘그 해 가을’, ‘같이갈레온’ 등 웃기지도 않은 이름들이 후보랍시고 튀어나왔지만 결국 류성민이 제안한 ‘여섯갈래길’이라는 꽤 멀끔한 이름으로 정해졌다. 곱씹을수록 까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멋진 이름이라 생각했다.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여섯 명이 모였으니까.
‘왜 까미노에 왔는지’에 대한 질문은 다른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통과의례처럼 묻게 되는 질문이었다. 여섯갈래길 역시 그 본질적인 질문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모두가 이 길에 온 사연 역시 제각각 달랐다. 몇 년 전부터 생각해 온 버킷리스트로, 가까운 누군가의 추천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치열했던 삶을 잠시 내려놓기 위해 같은 이유들.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블루스가 있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이 나올 때마다 끊임없는 대화가 오갔다. 다만 ‘사랑’이 등장했을 때 모두는 잠시 동안 말없이 맥주잔을 부딪혔다.
“오랜 시간 만나왔던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김민서의 첫 대답이었다. 남자친구와 까미노를 함께 오고 싶었지만 이제는 다 지난 이야기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녀는 사랑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냐며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사랑이라 말했다. 사하군에 도착했던 날 저녁이 떠올랐다.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여유를 즐기기 위해 네모나게 꾸며진 작은 정원에 나가려다 멈춰 서야 했다. 그녀가 홀로 푸른 잔디밭의 새하얀 의자에 앉아 이어폰을 꽂은 채 이유 모를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장막이 쳐져 있는 느낌이 들어 발길을 돌렸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오랜 연인과의 이별을 겪은 실연의 아픔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 정원에서 아픈 추억의 심연 속으로 가 있었을 것이다.
김민서의 이야기가 끝난 후 박영민은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틀어놓고는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을 시퍼런 감정의 늪에 빠뜨리겠다는 듯 계속해서 슬픈 사랑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다.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이 재생되었을 때 우리 모두는 잠시 길을 잊고 자신만의 기억을 걸었다.
레온에서의 휴가는 달콤했다. 배낭도 싸지 않았고 등산화에 발을 욱여넣지 않았다. 다 같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한낮의 여유를 즐겼다. 노란 화살표를 찾을 필요 없이 골목 사이를 아무렇게나 돌아다녔다. 대성당 앞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커다란 쇼핑센터의 중식당 뷔페에서 배가 터질 듯 밥도 먹고, 여섯갈래길의 증표라며 구입한 ‘BUEN CAMINO’가 새겨진 기념품 팔찌도 사고, 멀리 떨어진 각자의 가족에게 보낼 엽서도 쓰는 시간이었다. 걷는 것도 좋지만 쉬는 것은 더 좋았던, 그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