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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Sep 27. 2020

담배 끊은 놈은 상종도 하지 마라

분명 독종이다

담배를 끊은 사람은 비인간적이니까 함께 할 사람이 못될 것이라는 진심이든, 그 힘들다는 금연을 성공해 낸 사람에 대한 츤데레식 존경의 표현이든 아무튼 담배 끊은 놈은 독한 놈이라는 얘기다.


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주위에 담배 피우는 친구들 꽤 있었지만 나는 화장실이나 뒷골목에 숨고 싶지도 않았고, 소지품 검사를 피해 소화전이나 신발 깔창 밑에 담배를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갑자기  교무실에서 담배 한 갑을 한꺼번에 입에 물고 침을 질질 흘리며 손들고 있던 아이가 생각난다.


 

인간의 두뇌는 위대하다

그러다 21살 겨울 담배를 피기로 결정하고 바로 나가 말보로 레드를 샀다. 백곰같이 하얀 파카를 입고 집 앞 공원에서 익숙해질 때까지 몇 대를 연달아 피웠고, 집에 와서 책상 위에 담뱃갑을 올려두었다. 어머니께 차마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아들이 담배 핀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흡연은 세상 고뇌를 다 짊어진 사람마냥 늘고 늘어 많게는 하루에 3-4갑을 피워대던 시절도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 내 방에서도 하루 종일 피워댔다. 지금 와서 부모가 되어보니 그때 내 부모님은 얼마나 속이 타셨을까 싶다.


나는 담배를 그렇게 애정 했다. 새로 산 담뱃갑을 열었을 때 빽빽하게 들어있는 뽀송뽀송한 20까치 담배들, 불을 붙이기 전 마른 담뱃잎에서 나는 냄새, 무언가 일을 끝내고 맛있게 담배를 피는 내 모습, 친구들과 함께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피는 담배...


나는 단 한 번도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미디어에서 담배가 나쁘다고 난리를 치고 정부도 온갖 정책으로 흡연자를 쓰레기로 만드는 통에 더 끊고 싶지 않았던 것도 크다. 심지어 카페나 식당을 선택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흡연이 가능한지였고 누구 앞이든 담배를 못 필 이유도 없었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만...


내 아내는 담배를 엄청 싫어한다. 연기나 냄새만 싫어하는 게 아니고 존재자체를 싫어한다. 아내와 친구로 지내던 시절부터 눈 앞에서 담배를 핀적이 거의 없다. 몇 번 중요한 순간에 허락을 받고 피기는 했다. 당연히 결혼 전에 담배를 끊기로 약속을 했다.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많이 아쉬웠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그토록 싫어하는 일을 굳이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날부터 곧바로 멋있게 금연!!

을 못했다.


나는 내가 담배를 끊을 마음이 없을 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담배를 피는 것이 자유인 줄 알았는데 사실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는, 그냥 남들처럼 중독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몇 번의 금연의 실패를 통해 깨달았다.   


첫째 딸을 낳고 한참 성공한 적도 있었지만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핑계로 다시 헤비 스모커로 거듭났다. 이 때는 너무 힘들었던 터라 아내조차도 나의 흡연을 이해해줬을 정도의 힘든 시기였다.


그러다가 2018년 6월 14일, 내 생일. 어김없이 벙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잠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다가 문득 생일인데 뭐 의미 있는 일이라도 하나 있어야 할 것 같다 생각했다.

'이 담배를 마지막으로 이제 그만 펴야지'


전혀 대단한 각오나 이런 것도 아니었고 그냥 가볍게 선물하나 하자 싶었다. 안되면 말고였다. 그렇게 남은 담배는 다른 사람들 줘버렸고 그 이후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다. 담배는 평생 참는 거라는데 그것도 구라다. 단지 경치 좋은 곳에 가면 '맛있는 커피 한잔에 담배 한 개비 하면 죽이겠네~!'라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피는 담배 맛이 썩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럼 내 금연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냥 다 운이다


내가 독한 사람이었으면 옛날에 했어야지. 3년 전에 갑자기 독해질 리도 없고. 무엇보다 나는 금연을 유지하기 위해 나와의 처절한 싸움을 한 적도 없다. 그런 노력은 오히려 금연을 실패할 때마다 내 의지박약에 눈물이 날 정도로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무언가 이루어내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수록 실패의 확률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아침 기상 4:30분을 목표로 하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아침마다 일어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싸움을 치열하게 한다. 온갖 핑계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하지만 목표니까 의지로 일어난다. 해냈다!

또 다른 한 명은 그냥 일어난다. 목표를 정할 때까지 여러 생각들을 했지만 목표가 이미 정해진 지금 알람이 울리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일어난다. 생각 따위는 안 하고 말이다. 둘 중에 아침 기상에 실패할 확률이 현저히 높은 쪽은 전자다. 아침 기상뿐 아니라 우리가 소위 인생에서 이루어 내는 거의 모든 종류의 것들은 그냥 하는 것이 대단히 높은 확률로 유리하다.

그럼 그것을 어떻게 '그냥'할 수 있을까?   
그게 운이다


어디서 들은 말로 성공하는 사람은 성공의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내리막을 거침없이 내려간다고 한다. 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 느낌이 뭔지 좀 알 것 같다.


나는 모두에게 자신만의 때가 있고 그때에 맞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 남들이 하는 일과 남들이 이뤄내는 것은 그들의 것으로 박수쳐주고 나는 내 것만 하면 된다. 그들은 그들의 내리막을 타고 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 내리막을 밑에서 올려다보면 쫄것도 없고 부러워할 것도 없다. 그냥 나도 나의 운의 수레바퀴에 몸을 맡기고 쭉쭉 미끄러져 내려가면 되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일은 그냥 해보는 것뿐이다. 나는 단지 하기로 한 것을 하는 거고.


어차피 결과는 '운'이다. 그냥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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