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드보이'에는 영문도 모른 채 감금을 당하는 한 사내가 나온다. 이름 오대수. 그는 군만두만 먹으며 15년 동안 감금당한 후 또 영문도 모른 채 풀려난다. 그때 그가 하는 대사가 있다.
그때 그들이, '십오 년'이라고 말해 줬다면 조금이라도 견디기가 쉬워졌을까...? 아니었을까...?
나는 처음에 '당연히 기간을 아는 게 쉽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바뀌었다. 과연 나를 감금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한들 믿음이 갈까? 그래서 나는 약속이 100% 이행될 수 있다는 믿음 하에만 15년이라는 사실을 아는 편이 더 수월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아니면 차라리 모르는 게. 당신은 어떤가?
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에 100%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100%로 준비한 시험에도 떨어질 수 있고, 100%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도 당한다. 세상에 없는 사랑을 해도, 독실한 신앙을 가져도 내일은 모른다.
며칠 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10km를 안 쉬고 달려냈다. 집에 도착해서 앱을 종료하고 결과를 보고 문득 든 생각,
우리의 삶을 수치로 보여주는 앱이 있다면 어떨까?
그 수치가 100%가 되면 내가 원하는 결과가 이루어진다. 좋을까?
<10m 모자란 100km>
사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뛰었는지 별 관심이 없었지만 '99.99' / '4.99'라는 숫자가 보이는 순간 생각했다. '단 10m만 우연히 더 뛰었다면 아니 걸었다면 99.99가 아닌 100이었을 텐데', '4km 대가 아닌 5km의 평균 거리가 됐을 텐데'. 그건 아쉬움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단상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많은 수로 자신이 99.99%에 온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 멈춰 섰겠지...
꼭 드라마틱한 99.99%는 아니더래도 누군가는 98%에서 누군가는 95%에서 되돌아 갔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수치를 볼 수 없으니까. 근데 앱이라는 게 때로는 GPS가 튀기도 하고, 누군가는 키는걸 깜박하고 달리기도 한다. 앱 종류마다 크고 작은 차이 보이기도 하고 잘못해서 기록을 삭제해버리기도 한다. 나라는 사람만의 성향과 걸어온 길, 가정환경, 친구, 공부방법 등의 수많은 인생의 변수들은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더 가늠할 수 없게 한다.
나는 99.99km를 확인한 후부터 그 다음날 다시 달리러 나가는 아침까지 꽤나 설레었다. 나가서 99.99%가 100%으로 변하는 광경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앱을 켜고 10m를 걸어가서 '달리기 멈춤' 버튼을 눌렀는데 저장이 안 된다. 너무 적은 수치라 계속 기록을 지울 건지 물어보는 것이다. 지우던지 계속 달리던지 하라는 거다. 결국 나는 100이라는 숫자를 포기하고 또다시 달렸다.
내 수치가 몇% 일지 고민해봤자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어차피 딱 100%를 맞출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좋은 방법이 있다. 이왕 그런 거라면.
나는 오늘 99.99%에 와 있다고 생각하자. 안되면 내일도 지금이 딱 99.99%라고 생각하자
항상 설레어야지. '오늘 나가서 조금만 더 즐겁게 달리면 100%야!'하고 막상 나가면 나는 어느새 100%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달릴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 자체로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