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엄마! 왜 나 안 깨웠어?!" 또 지각이다.
-"무슨 소리야 몇 번을 깨웠는데!"
나는 엄마가 나를 깨운 기억이 정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습이 선하다.
일단 바쁘게 도시락을 준비하며 쉴 새 없이 '아들~ 일어나! 학교 가야지~!' 외치는 엄마. 나는 그 소리에 다행히 의식이 들면 한참을 뒤척이다 몸을 일으켜 거북이처럼 엎드린다. 운이 좋으면 영장류 답게 무거운 머리를 들어 직립 보행으로 화장실로 가겠지만 그런 일은 자주 없다. 대부분은 다시 몸을 눕히고 의식을 잃는다. 피곤해하는 아들 5분이라도 더 자게 하려고 매몰차게 깨우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일어나서 한다는 소리가 '엄마! 왜 나 안 깨웠어?!'였다.
우리는 약속과 계획을 갖고 산다. 아침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학교나 직장에 가는 것 외에도 공으로 사로 많은 약속이 있다. 꼭 누군가와 만나거나 어딘가로 가야 하는 약속뿐 아니라 스스로 정한 많은 계획들도 최대한 해내려 노력한다. 근데 이게 왜 이리 힘드냐?! 응?!
아침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던 나도 알아서 벌떡벌떡 일어나는 날들이 종종 있었다. 소풍이나 운동회 날이다. 나무도마에 칼이 탁탁탁 부딪히는 영롱한 소리가 주방에서 들려오면 '아.. 엄마가 김밥 싸는구나...' 하며 기분 좋게 일어났다. 그 날 나를 깨운 것은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지각을 하거나 계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정말 많겠지만 가장 중요하고 흔한 이유는 '기다리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설렘'이나 '기대' 보다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이유는 그 마음의 길이와 태도가 다름에 있다. '설렘'은 순간에도 훅하고 느낄 수 있고 '기대'는 수동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하지만 '기다림'에는 뭔가 기쁜 간절함이 있다.
이번 주 나의 매일 달리기에 아니면 적어도 아침 달리기에 고비가 왔다. 전부터 안 좋은 발목 때문에 다리 여기저기에 작은 불편함들이 있어 틈만 나면 스트레칭도 하고 주무르기도 하며 매일 달리기 30일을 해낸 터였다. 그때까지는 아주 천천히 달리거나 걷는 것도 마냥 좋았는데 아니, 지금도 그 나름의 충분한 매력을 알고는 있지만 힘이 좀 빠진 것도 사실이다.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 내 나름의 계획으로 휴식을 갖는 것과 아침마다 침대에 누워 저린 다리를 만지작 거리며 고민하는 것은 다르니까.
그래서인지 이틀 동안은 새벽에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늘 딸 리나가 일어나기 전 새벽에 달리기를 마치고 들어왔는데 근 이틀은 학교를 보내고 나서야 가까스로 달리기를 이어나갔다.
몸이 안 따라주니 예전처럼 헉헉대며 뛰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또 걷기만 할 생각을 하다 보니 내일 아침이 예전만큼 기다려지지 않는 것이다. 발목이 언제쯤 좋아진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지금은 매일 사진 찍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매일 새벽을 걸으며 사진을 찍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솔직히 아직 달리기를 시작한 그때만큼 기다려지는 일은 아니지만 하다 보면 또 무언가 찾아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요즘 아침을 좀 더 일찍 시작할 수 있는 '기쁜 간절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하루하루를 기다려지는 일들로 채우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매일의 일상 속에 기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지는 일이 두 가지만 있을 수 있다면 매일이 어릴 적 소풍 같을 수 있을 거다. 야 눈 떠라! 소풍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