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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Oct 19. 2020

하나도 멋없는 그들

그리고 그 뒷이야기 

'아니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러고 뛰냐...'



오래 달리기가 내 인생과 전혀 상관없던 시절, 길에서 또는 공원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꽤나 자주 머리를 스치던 생각이다.


실제 생활 속에서 우연히 내 눈 앞을 달려 지나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튜브나 나이키 광고에서 접하는 영상 속의 주인공들이 아니다. 그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상품을 휘두르고 모델 같은 폼으로 강력한 용수철마냥 내달리며 금세 멀리 사라져 버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대부분은 늘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발을 신고 있으며, 엉성하거나 때론 괴상하기까지 한 폼으로 달린다. 그리고 그 속도라는 것 역시 걷는지 달리는지 모를 애매한 수준이다.


사람들의 하나도 멋없는 이상한 달리기



그 의문은 내가 직접 40일쯤 매일 달려보니 풀리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을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들의 달리기를 매우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생각의 전환에 가장 큰 공을 내 안 좋은 발목과 타고나지 못한 평범한 심장에게 돌리고 싶다. 


오래 달리기를 시작한 처음 몇 주동안 나에게 맞는 페이스가 어느 정도인지 감도 없었고, 내 몸을 어떻게 느끼고 살피며 달려야 하는지도 생판 모른 채 매일 신나게 내달리기만 했다. 여러모로 달리기의 효험을 생활에서 체험하면서 살짝 흥분 모드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10km도 두 번이나 뛰어보고 참 좋았는데... 문제는 왼발에 족저근막염 증상이 시작된 것이다. 이른 아침 침대에서 내려와 발을 디딜 때마다 오는 통증은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병원에 가야 한다거나 알아 누울 정도야 아니지만, 달릴 생각만 해도 신이 나서 새벽 4시에도 눈이 번쩍번쩍 뜨이던 그 기분을 꺾기에는 충분했다.

 

그래도 일단 나가자!


고등학교 때 왼쪽 발목 때문에 두 번이나 목발을 짚고도 재활이라는 것은 하지 않았다. 뭐 내가 운동선수도 아니고 일상에 지장도 없는데 그런 걸 할리가 없잖아?! 그런 다리가 마냥 쉬거나 걷기만 며칠을 한들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통증이 있는 날은 일단 집을 뛰쳐나와 천천히 걸으며 스트레칭을 한다. 그렇게 살짝 몸이 풀리면 경보도 아닌 듯 달리기도 아닌 듯 아장아장 뛰어본다. 천천히 내 몸의 움직임과 감각에 집중하면서... 보폭은 최대한 줄이고 다리는 최대한 살포시 딛는다. 오! 느낌이 나쁘지 않다. 사뿐사뿐 이렇게 감각을 찾고 자세를 고치면 천천히 내 왼쪽 발목도 강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그런 무한 긍정의 생각을 하는 순간 뒤에서 쉭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내 옆을 천천히 앞질러 간다. 공원에서 자주 보던, 80줄은 돼 보이는 그 할아버지다. 근데 늘 보던 그의 달리는 폼이 지금 보니 영 달라 보인다. 예전에는 '할아버지니까 몸도 약하고 무릎은 오죽 힘드시겠나'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안에 담긴 긴 사연과 노력과 연륜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순간 달리는(?) 내 모습이 그와 너무나 닮아서였기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만의 달리기를 만들어 가는구나


밖에서 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모른다. 때로는 운동신경도 없이 흐느적거리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저렇게 뛰어서 운동이 되나'하며 비웃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나에게 그리고 내 상황에 맞는 최선을 찾아보려 움직이는 그 모습은 심지어 나 스스로도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으니 남이 그리 보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나는 숨이 차면 가슴을 새가슴처럼 내민다. 손목에 힘이 빠지면 어깨에도 힘이 빠지고 결국 달리는 하체도 부드럽게 움직이는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왜 손목을 흐느적거리는지도 알게 됐다. '어떻게 어느 정도 덜렁거리는 게 제일 좋은가', '이렇게 뛰면 속도는 나오는데 무릎에 무리가 가는구나', '발목이 안 좋을 때는 이런 자세가 좋더라' 


이렇게 다들 자신만의 노하우들을 만들어 가는구나. 그 안에는 아픈 일도 기쁜 일도 또 그런 몸도 마음도 함께 있어왔을 것이고, 그것들을 달래고 이겨내며 달려왔을 것이다. 문득 공원에서 보는 그 할아버지의 달리기 인생도 궁금해진다.


마치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처럼 스친다



문득 학창 시절 친구가 빌려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라는 책이 떠오른다. 그는 오케스트라 제3열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다. 지휘자나 바이올리니스트와 달리 존재감은 없는 악기를 연주하며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 중요성과 가치, 매력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누구나 자신의 자리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세상은 늘 도드라지는 것, 강렬한 것, 극단적인 것에만 관심을 준다. 


논쟁을 즐기는 사람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는 사람들, 정의를 위해 투쟁한다는 사람들 그리고 늘 어려운 이름과 용어로 치장하여 지식을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주목받고 인정받으며,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편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겁이 많고, 의롭지 못한 침묵으로 일관하며, 어리숙하고 무식하여 별 가치가 없는 인간으로 보이기 쉽다. 

겸허한 모습으로 끝까지 달리는 사람은 과연 누가 될까?


내 인생의 많은 시간 동안 세상이 주목하는 것에 함께 주목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언젠가 내가 되기를 욕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누가 봐도 멋있게 투쟁하면서 화려한 벼슬을 가진 100전 100승의 싸움닭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 덕인지 달리기 덕인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세상은 보잘것없는 폼으로 천천히 뛰는 사람들을 보며  '아니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러고 사냐...'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지언정 매일을 예민하게 느끼고 충만하게 사는 그들, 평범해 보이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더 현명하고 강력하며,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승리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매우 성실하게 나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살기로 결정했다.   




이미지 : https://www.instagram.com/cx3_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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