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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Oct 27. 2020

'조바심'에서 '믿음'으로

가치 있는 시간을 만드는 방법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정원을 가꾸거나 매일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그게 무엇이든 매일 평생에 걸쳐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가다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늘 염두해야 하는 말이 있다.


조바심 내지 마!


무엇을 한들, 그것이 내 평생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인정받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그 일로 돈도 벌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한창 욕심이 날 때는 그런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소위 그 분야의 잘 나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하는 시기도 있다.  '아... 나는 언제 이 사람처럼 이 일만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딴 일 안 하고...'




'조바심'은 마음 심(心)을 써서 조바(?)의 마음이 뜻하는 것이 아니고, '조' + '바심'의 합성어다. '바심'은 타작의 순 우리말인데, 말 그대로 조의 이삭을 털어서 좁쌀을 만드는 일을 뜻한다. 조의 이삭은 질겨서 타작하기가 어렵고 또한 너무 과하면 좁쌀들이 다 흩어져 날아가기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조바심'을 내다'는 '자칫 뜻대로 일이 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다.'라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 참을성 없이 급한 마음을 뜻하는 '조급함'과는 살짝 결이 다르게, 단지 급한 마음이 아니라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가깝다. 


달리기와 조바심


처음 '오래 달리기'를 하면 지나치게 빠르게 달려서 '짧게 달리기'가 되기 일수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첫째로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달리기'라는 것이 금방 숨이 차오르는 정도의 속도로 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더 큰 이유 중 하나가 있다.


나는 너처럼 한가하게 달릴 시간이 없어!


달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이렇게 천천히 달려서 언제 땀이 나고 숨이 차고 운동이 될까 싶어서 내달리는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생각한다. "운동을 하기는 해야 할 것 같아 한다만 원하는 결과를 최단시간 내에 이루고 더 중요한 일을 하자." 그렇게 그들은 오래 달리기의 '참맛'을 느끼지 못하고, 아무 수확도 없이, 결국 쫓기는 생활로 다시 돌아간다.


내가 매일 달리기를 하며 깨달은 매우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평소 걸음보다 아주 조금만 빨리 걸어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땀이 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주 조금만 더 움직여서 '이렇게 뛰어서 무슨 운동이 될까...'싶은 속도로 뛰는 시늉이라도 하면 15분 내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생활 속에서 15분 내내 뛰는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틀릴 확률은 드물다. 




절대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사실은 평소 걸음보다 심지어 더 천천히 걷는다 해도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10분보다 짧아도 전혀 상관이 없다. 단지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뿐이다. 


'조바심'내지 않는 것


30분도 좋고 10분도 좋다. 여유 있게 산책을 해도 좋고 다리가 후들거리게 뛰어도 좋다. 오늘의 달리기에게 꼭 당장의 무엇을 바라지 않는 것이 내가 달리기를 대하는 방식이다. 더 빨리 뛰고, 더 많이 뛰고, 더 땀을 흘리고 더 거친 숨을 내쉬는 날도 같고, 슬슬 걸으며 생각에 잠기고 중간중간 멈춰 서서 한가로이 사진이나 찍는 날도 역시 같다. 1시간 넘게 쉼 없이 달리는 날도, 시간이 없어 10분 남짓 집 앞을 거니는 것이 전부인 날도 같다. 나에게 그 시간은 온전히 '조바심' 내지 않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바심' 대신 '믿음'


노력한 만큼 빨리 열매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사는 멋진 사람들에게 너무 당연하게 스미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바심'이 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우리는 과정에 몰입하는 순간 결과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러닉컬하게도 결국 더 좋은 열매는 그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나에게 매일 조금씩이라도 온전히 평온한 시간을 주자. 


그렇게 '조바심'내지 않는 법이 익숙해지면 언젠가 그것은 내 삶에도 스며들어 있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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