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말
너의 제시어가 돌은 아니길. 바랐는데 역시 돌이었어. 평생 탐구 대상으로 돌을 정한 순간, 기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부담스러웠어. 걸림돌.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 말이야. 그래서 부담 없이 이전에 써두었던 돌을 가져다 쓰기로 했어. (이럴 때는 머리가 잘 돌돌돌아.) 돌만큼 마법과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솔라의 돌
“물이 좋아요.”
돌은 수줍게 말했다. 물에서 건진 돌 하나를 조심스럽게 물속에 내려놓는 솔라. 마치 살아있는 송사리 한 마리를 놓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뒤늦게 조금 어리둥절했다.
돌이 말했다. 정말이다. 솔라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도 돌을 의심하지도 않았다. 착각도 아니었고 잘 못 들은 것도 아니었다.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솔라는 쪼그리고 앉아 물속을 보다가 검푸른 빛깔의 돌 하나를 건졌다.
'우리 집에 가자.'
"물이 좋아요."
돌은 물이 좋다고 대답했다. 솔라는 돌의 고백을 들은 듯했다. 물속에서 사는 게 좋아요. 여기에 좋아하는 돌이 있어요. 그 돌과 함께 있고 싶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주시면 소원 하나 들어드릴게요.)
이런 상황에서 돌을 주머니에 넣을 수는 없었다. 솔라는 돌을 가질 수 없어서 아쉽기보다, 오히려 마법 같은 일이 자신에게 생긴 것이 얼떨떨했다. 돌이 말을 하다니. 아무도 믿지 않을 일이다. 누군가에게 말했다가는 비웃음만 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솔라는 그런 비웃음을 수차례 겪었다.
아이였을 때는 누구나 즐겨하고 통하던 이야기가 이제는 옛날이야기나 시시한 이야기, 지어낸 이야기 취급을 당했다. 솔라 주변의 어느 누구도 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심지어 돌이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었다고 하면, 돌은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 빤하다.
솔라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면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을 본다. 그림책 속에는 여전히 솔라가 좋아하는 세상이 있고, 그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오늘은 돌에 대한 그림책을 찾아보았다.
물음표 하나 동동.
사실, 모든 돌은 말할 수 있지만 침묵하고 있는 게 아닐까? 돌은 원래 말을 해왔고, 몇몇 특정 인간들만 돌과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 사건을 발설한다면 돌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는 게 아닐까? 풋. 스스로 생각해도 질문이 점점 유치하다는 생각에 솔라는 웃고 만다.
집에 돌아오니 돌이 보고 싶어졌다. 그동안 모은 돌을 책상 위에 꺼내 놓았다. 솔라는 걷다가도 돌이 보이면 멈추고, 돌을 보다가 주웠다. 돌 줍기는 어느 날부터 지금까지 해온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 놀이다. 솔라의 돌은 그림책 돌처럼 맨들맨들하고 둥글지 않다. 둥글기보다는 삐뚤빼뚤한 돌들이 많다.
솔라가 돌을 줍는 이유? 수석이나 희귀한 돌 등 돈이 되는 돌을 수집한다거나 무늬가 특이하고 예쁜 돌을 수집해 전시를 한다거나 하는 등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어디에 있든 돌이 있는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몸을 숙이고 웅크려서 돌을 주웠다. 돌 개수도 정해 놓지 않고, 무거워지지 않을 만큼만 주웠다. 조약돌이라 불리는 작은 돌들이었다.
아무 돌이나 눈에 띄는 대로 막 줍는 게 아니었다. 많은 돌 중 유독 솔라를 빤히 보는 느낌. 돌과 눈이 마주치는 느낌. 그런 돌을 주워왔다. 돌과의 눈 맞춤은 설명하기 힘들지만,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자꾸 시선이 머무는 것과 비슷하다.
응시.
바라보기는 돌과는 가능한데, 사람에게는 쉽지 않았다. 먼저 다가가서 있는 그대로를 가만히 보는 일. 그러기 전에 마음이 앞서 마음이 조급해지고, 말과 행동이 헛나갔다.
“물이 좋아.”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는 돌. 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에 대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보고 싶어졌다. 책상 위에 펼쳐 놓은 돌들이 솔라의 마음을 알아챈 것 같았다. 돌과 대화하는 법은 간단했다. 침묵을 들으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