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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un 05. 2024

나의 땀

엠의 부고 

  엠의 부고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그의 얼굴을 타고 후둑후둑 떨어지던 땀이 먼저 보였다. 그는 배우이자 연출가였다. 엠은 무대 위에서 정말 많은 땀을 흘렸다. 비가 물체에 닿아 퉁기듯 그의 땀은 무대 바닥에 떨어져 자국을 남겼다. 조명이 켜지고 공연이 시작되면, 엠의 얼굴은 확 붉어지고 목에 핏대가 돋을 정도로 대사에 힘을 싣는다. 모든 대사와 움직임에 열성을 다한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땀이 증명한다.   


  유난히 다른 배우들 보다 애쓰면서 진땀을 흘리는 공연을 편안하게 보기 힘들었다. 조금 덜 웃어도 되는데, 덜 웃겨도 되는데, 덜 연기해도 되는데. 공연이 끝나면 그의 열정과 땀에 큰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공연이 끝났어도 얼마간 숨이 좀 가빴다. 

 

  며칠 째 엠이 왜 죽었을지 생각했다. 혼자 아무리 생각해 봐야 죽음의 원인은 알 수 없다. 섣불리 추측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어떤 단서를 모으듯 부고 알림 문자의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었다. 

 

  ‘갑작스럽게’, ‘준비 없이’, ‘먼 길’, ‘고인’, ‘기도해 주세요’

 

  고인과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가끔 마주치면 인사만 가볍게 나누는 정도. 일상적인 대화도 별로 나눠본 기억이 없다. 그는 무대 밖에서는 덩실덩실 가볍게 걸었다. 한 올 한 올 살아있어 춤추는 듯한 새카만 머리카락, 송아지처럼 크고 까만 눈. 우직함과 선량함이 온 몸에서 발산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공연을 보다가 그의 땀으로 공연장이 흥건해지는 상상을 한 적도 있다. 무대 위 그를 보면 사람이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느낌이 들었다. 작고 날랜 몸인데 실제 몸과는 달리 억눌려 보였다. 늘 무거워 보였다. 모든 짐을 그가 다 짊어지고 있는 듯했다. 그의 죽음이 짐, 땀, 무게, 중력과 무관한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좀 더 알았다면, 이런 글 따위는 쓰여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넌 땀, 하면 무엇부터 떠오르니?

  한 땀 한 땀, 나아가며 형태에 색이 입혀지면서 생명력이 생기는 네 작업. 

  잠시 네가 바느질로 작업한 이미지들을 떠올려본다. 으흠. 멋있어. 바느질 장인 

  난 땀 하면 내 인중이 제일 먼저 떠올라. 

  여름은 인중에 땀 차는 계절. 

  길고 깊은 인중에 송골송골 맺히다 졸졸 흘러. 

 

  그랬는데, 이제는 땀 = 엄마. 땀은 엄마. 엄마는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줄줄 쏟아져. 비 오듯 땀을 흘린다는 표현은 좀 상투적이지. 이 글을 마칠 때쯤에는 땀에 대한 다른 비유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원래 땀이 많은 체질은 아니었어. 아프고 난 후부터 땀을 많이 흘리기 시작했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줄 정도로 땀을 흘리셔. 


  조카 돌잔치에 입을 옷을 사러 갔는데, 엄마가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사이즈가 맞는지 입어 본 옷이 다 젖어버린 거야. 다른 옷은 차마 권할 수가 없었어. 딱 한 벌 입어보고 그 옷을 샀어. 톤 다운된 푸른색 칙칙한 느낌이 드는 셔츠였는데, 엄마는 그냥 그걸 사겠다고 했어. 


  나는 말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지. 조카의 돌잔치에서 엄마의 셔츠 색깔이 더 어두워 보였어. 나는 조카보다 자꾸 엄마가 보였어. 


  '저 옷 사는 걸 말렸어야지.' 책망의 소리가 내 안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왔어. 선선해지면, 화사한 가을 옷 사러 가얄까봐. 자꾸 마음에 걸려서 말이지. 엄마는 돌잔치 끝나고 집에 돌아와 그 셔츠를 벗으며 말했어. 


  “땀을 많이 흘리니, 깨떡 같은 옷을 사서....”


  내가 몇 번 옷이 칙칙하다 말했었는데, 아무튼 입이 방정이야. 이쁘다. 괜찮다. 할걸. 엄마가 땀을 조금만 덜 흘렸으면 좋겠어. 나는 땀을 좀 더 흘리며 살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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