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부여
'몽마르뜨 유서', '만남이라는 모험', '세상에 없는 기억', 시몬베유 '노동일지' 등 요즘은 빌리는 책마다 ‘주의를 기울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처음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의식하지 못했다. 한 번 의식이 되니 놀랍도록 같은 문장이 계속 나온다. 역시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책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뿐이지 언급한 책 외에도 몇 권의 책이 더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책을 읽을 때, ‘주의를 기울이다’라는 문장이 있나. 없나. 염두하며 읽어갈 게 빤하다.
나는 어떤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상당히 짧고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다니다가 이내 산만해진다. 손빨래를 하다가 방에 들어와 책상 정리를 하고 그러다 다시 손빨래를 한다. 쓰다 만 글도 수두룩하다. 마무리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어떤 일을 할 때도 두서가 없다. 순서를 세우고 차근차근 하는 이들을 보면 대단하게 느껴진다.
걱정과 불안을 동시에 만들어내기. 선수급이다. 여기서 이걸 하면서도 생각은 다른데 가있기 일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상적인 것을 캐치하는 눈은 있으나 두루두루 살피는 데는 취약하다. 어떤 공간에 가면 꽂힌 사물만 보일 뿐 그 주변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과 만날 때도 나의 이야기 설파에만 빠져있어 타인의 표정, 감정, 이야기를 살피고 들어줄 겨를이 없다. 주로 만남이 끝나고 돌아오면 상대와 보낸 시간이 까마득해진다. 누군가 만났다는 느낌은 사라지고, 나만 남아있다. 잠들 기전, 만남의 장면을 떠올려 보면, 아주 오래전 일을 회상하는 기분이 든다.
'주의를 기울이다.' 이 문장이 주위를 살피다는 문장으로 환원해서 받아들여진다. 둘은 완전히 다른 문장인데... 그리고 두 문장을 하나의 결론으로 통합하면. 또 다른 문장이 나타난다. '귀 기울여라.'
시각적 정보에만 너무 빠져들지 말고 혼자 말하는 것에만 치우지지 말고 다른 이의 소리, 나에서 벗어나 주변에도 마음에도 귀 기울여라. 심지어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마음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라.”
신이 책을 통해 내게 내려주는 지령처럼 들린다.
'기울이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1 비스듬하게 한쪽을 낮추거나 비뚤게 하다. 2 정성이나 노력 따위를 한 곳으로 모으다.로 나와 있다. 두 번째 의미로 쓰였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첫 번째 의미와도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막연히 느낀다. 또 산만하게 생각이 가지를 뻗어나가려고 꿈틀댄다. 어떻게든 1번과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서 생각을 짜낸다.
늘, 나의 관심사는 만남이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도 그럴 것이다. 타인과 타인의 처음 만나는 순간, 서로 마음을 열게 되는 순간에 관심이 많다. 그게 궁금해서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는다. 모두 다른 사람이니 만남의 시작점이 다르다. 작가의 표현방식이나 감정, 상황에 따라서 달리 쓰이고, 읽히기 때문에 흥미가 생긴다.
사회적인 잣대, 조건에 맞는 만남이 아닌, 타자와 타자가 친구가 되어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전혀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는 사이가 되어가는 것에 호기심이 생긴다.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소한 데 너무 의미 부여하지 마. 아무 의미 없을 수도 있어." 타인의 말과 행동을 기억해 두었다가 이런 의미가 아닐까. 이래서 그런 게 아닐까.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닐까. 더 정확히는 의미부여라기보다 상대방의 의도를 알고 싶다. 질문은 하지만 결국은 내 방식대로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사실, 궁금하면 상대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그렇게는 못하고 혼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단정한다. 아주 못된 버릇이다. 내가 타인의 생각과 마음까지 알 수 있다는. 비단 사람과의 관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넋 놓고 가만히 있질 못한다. 강박처럼 문장으로 본 것을 글로 묘사를 해야 하고, 쓴 글이 마음에 들어야 바라보는 풍경까지 흡족해졌다. 표현한 문장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풍경을 본 것 자체도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느라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즐기지 못했다. 내가 부득부득 만들어낸 풍경 속에서 나 자신을 엉망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에게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이제 좋은 걸 보면, 가만히 보고만 있으려 한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허전하고, 할 일을 안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있기가 너무 힘들고, 늘 머릿속은 분주하다.
의미부여를 하며 사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져 있었다. 별 의미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의미가 생존과 직결되는 마냥,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했다. 삶이 나아지는, 괜찮게 느껴지는 방법이었다. 밖으로 나가서 어떤 사건을 만나지 않으면 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한 마디로 기억할만한 아무런 일 없이 하루가 무난히 흘러가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읽는 책에 주의를 기울여보니, 언젠가부터 여성작가의 책이 다수이고, 프랑스가 배경이거나, 프랑스 철학자, 작가의 책이 많다. 이 책들이 내게 지금 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생각해 보니, 혜혜언니와 프랑스어 단어도 공부하고 있다. 막연히 추측한다. 여성으로서 나의 목소리를 찾고, 내고 싶구나. 이국의 언어가 나를 부르는구나. 지금도 멈춤 없이 멋대로 의미부여 중이다. 뜻뜻뜻. (쯧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