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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Sep 22. 2024

식물 그리는 목요일_240919

09_튤립나무(목백합나무)

  "튤립나무는 햇빛을 받으려고 스스로 가지치기를 해요."


  보태니컬 수업 초반, 숲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나서 울컥했다. 튤립나무의 패인 옹이가 아물지 않은 상처로 보여서. 수업 막바지에 다시 만난 튤립나무의 옹이들은 하늘 가까이로 성큼성큼 나아간 발자국처럼 보인다.


  식물을 관찰하고 그림과 글로 기록하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식물을 그려서 뭐 해. 또 쓸데없이 시간만 버리고 있어.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던 납작한 마음이 물러나고 어떤 식물을 만나게 될까. 어떻게 그려질까. 무엇을 쓰게 될까. 설레고 부푼 마음이 자리 잡았다.  

  

  수업을 받기 전에는 식물을 찍기만 했다. 관심만 두었지 표현할 줄 몰랐달까. 지금은 사진을 찍기 전에 식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다. 꽃과 잎, 줄기와 열매도 관찰한다. 잎맥과 내 마음까지도.

  

  엄마의 튼 배가 연상되는 수피는 어쩐지 친근했다. 햇빛을 받은 연노랑 잎사귀는 별처럼 반짝였다. 우산살처럼 길게 쭉쭉 뻗어나간 가지는 거대한 파라솔 같다. 부엉이 얼굴을 닮은 잎 모양. 서로 맞닿은 잎들이 겹쳐서 만들어 내는 짙은 색감이 아름답다.

  

  식물 이름과 유래가 가장 중요했다. 그러다 문득, 식물의 이름은 결국 인간이 임의로 붙인 것이고 그렇다면 이름이 식물의 본질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에 대한 지식보다 식물 자체와 그리는 손과 마음에 집중했다. 식물이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는지. 그 식물을 바라보고 그리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어떤 질문이 생기는지.

  

  다른 이가 그린 식물을 보는 것도 좋았다. 무심코 보아 왔던 은행나무, 벚나무, 소나무도 정성스레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혀 놓으니 실제와는 또 다른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린이의 애정 어린 마음이 담겨서겠지.   

  

  스케치가 대상과의 만남. 시작을 그려내는 것이라면 채색과 글쓰기는 만남을 지속하는 일에 가깝다. 매번 스케치 단계에서 멈추고 싶었다. 괜히 채색을 했다가 잘 된 스케치까지 망치게 될까 봐 겁이 나고 긴장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떨리는 손으로 채색에 들어갔다. 그렇게 식물 그림 여덟 장이 완성되었다.

 

  오늘 그린 튤립나무는 스케치부터 영 글렀다. 색을 칠해봐도 음. 별로다. 스케치를 다시 하려다 연필을 내려놓는다. 쌈지숲에 다시 가서 튤립나무 곁을 서성이면서 좀 더 올려 보아야겠다.


  앗.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튤립나무가 보여주는 장면을 조용히 맞이할 뿐. 이 중요한 사실을 수업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깨닫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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