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선물
당신은 2024년에 잘 적응하고 있나요? 생일도 음력으로 챙기는 옛날 사람인 저는 아직도 2023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음력설이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작년에는 문상을 두 번 다녀왔어요. 봄에는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 통영에 가을에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울산에 다녀왔어요. 집 떠날 일이 별로 없었는데 검은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바다도 보고 1박 2일 머물다 왔습니다. 조문이기도 했고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외할머니 이야기를 꺼내 볼까 해요.
추석 전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날이 차가워지면서 엄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나와 아빠만 할머니를 뵈러 가기로 했다. 순천에서 울산까지. 차로 4시간 여가 걸리는 꽤 먼 길이었고 셋째 이모 차와 삼촌 차. 두 대로 나눠 출발했고 아빠와 나는 셋째 이모 차를 탔다. 차 안에서 먹을 과일과 사탕을 준비했다. 마음은 가라앉았지만 여행 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4년쯤, 퇴사를 앞두고 떠난 여행. 울산 요양원에 할머니가 계시다는 걸 떠올리고 잠시 울산에 들렀다. 요양원 근처 마트에서 먹거리와 겨울 장갑을 샀다. 새 하얀 머리와 피부. 분홍색 카디건과 목수건을 두른 할머니는 참 고왔다.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는데도 반가운 기색으로 맞아주었다. 누군가 자신을 보러 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듯했다.
내가 할머니 둘째 딸 순애. 순애 딸이라고 설명을 드렸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할머니는 혼자 왔냐고 신랑은 어디 있는지 물었다. 결혼을 안 했다고 하니,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깜짝 놀라며 내 팔을 힘껏 툭 쳤다. (어... 아프다.) 할머니 힘이 제법 셌다. 할머니가 가장 기운 넘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할머니에게 장갑을 건네니 소녀처럼 환히 웃으며 바로 장갑을 껴본다. 손이 시렸는데 따시다며 좋아한다. 그 모습을 찍어서 엄마에게 보여주면 좋겠다 싶어 할머니와 사진을 찍었다. 제법 가까워졌다 싶으면 할머니는 내가 누구인지 불쑥 물었다. 그러면 나는 순애 딸이라고, 결혼은 안 했고, 애도 없다고 말하면 큰 일이라며 내 팔을 툭 쳤다. 몇 번은 맞고 몇 번은 피했다. 대화가 결국은 이 범주에서 돌고 돌았다.
할머니는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내 귀에다 속삭였다.
"내가 구십 둘이야. 근데 왜 안 죽는지 모르겠어."
순식간에 신비로운 기운이 병실에 감돌았다. 그걸 느낄 뿐, 무어라 답하지 못했다. 할머니와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할머니는 불편한 몸으로도 나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해 주었다. 할머니의 말이 여행 내내 따라다녔다.
"내가 구십 둘이야. 근데 왜 안 죽는지 모르겠어."
이번엔 정말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장례지도사는 할머니의 얼굴과 몸을 만지면서 좋은 곳 가시라고 명복을 빌라 했다. 죽은 이의 얼굴을 만진다고... 겁났다. 내 차례가 왔고 마음속 분란함과 달리 나의 손길은 차분했다. 막상 만져보니 무섭지 않았다. 죽은 자, 산 자. 언어의 경계가 만들어내는 관념이 사라졌다. 살갗의 부드러움은 느껴졌으나 차가웠고 내 손의 온기가 할머니에게 스미길 바랐다. 조심조심 할머니의 이마와 볼 턱에 손을 대며 "따뜻한 곳으로 가셔서 편안히 쉬세요." 엄마 마음도 담아 전했다.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다만 손 끝에 찬 기운이 돌았다. 동시에 내 손의 온기를 느꼈다. 할머니가 나를 순애처럼 봐주었으면 했다.
그날 밤, 보름달이 환히 떴다. 몽돌해변을 산책하다 돌을 주웠다. 몽돌은 하얗고 고왔다. 할머니를 잘 보내드리고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몽돌을 보여 드렸다. 누워 있어도 잠이 쉬이 들지 않아, 몽돌을 쥐었다. 차가운 몽돌은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몽돌을 손으로 품듯 꼭 쥐었다. 나의 온기가 어느새 몽돌에 스민다. 몽돌이 따뜻해진다.
둥근달과 둥근돌
삶도 죽음도 따뜻해질 수 있음을 이제 안다. 할머니가 내게 준 둥글고 환한 선물이다.
할머니, 참 좋은 날 가셨어요.
하늘이 정말 맑고 높고 푸르렀어요.
편안히 훌훌 쉬세요.
구름이 지나가니
할머니도 지나가고 있다 생각해요.
은목서가 피기 시작했어요.
걷는데 자꾸 좋은 향기가 따라와요.
할머니도 보고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