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나요

-벽면 요가

by 고라니

방에서는 주로 잠만 자고 책만 보았는데 요가가 끼어들었습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꼬박꼬박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방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나요? 무엇을 하면 편안해지나요? 제 방은 수납장이 없어 좀 어지럽지만 이불은 매일 개려고 노력 중입니다. 요가 매트를 깔기 위함이지만, 요가가 시작되면서 방의 기운이 좀 바뀌었달까요. 방에 들어가면 요가가 하고 싶어집니다.



벽면 요가


커튼을 치고, 빨래집게로 커튼을 여민 뒤 자주색 요가 매트를 바닥에 펼친다. 벽 앞에 몸을 바로 하고 바르게 선다. 산 자세. 뒷산의 큼직한 수리나무를 떠올린다. 잠시 잠깐 수리나무를 품는 산이 되었다 상상한다. 요가가 시작됨을 몸에게 알려주는 신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제법 산 같다. 몸이 웅장하게 여겨진다. 거울 속에는 타다 아사나를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내 방 한쪽 벽면에는 팬티 바람으로 요가를 하는 남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물론, 실제 사람은 아니고, 내가 그린 그림이다. '요가 디피카'라는 책에서 그나마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자세를 고른 뒤, 따라 그렸다. 한 장 한 장 그리다 보니 제법 다양한 자세를 한 많은 남자들이 생겨났다. 책에는 같은 남자가 다른 자세를 취하지만, 벽면 요가 남자들은 전부 다른 얼굴과 체격으로 조금은 엉성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누군가 본다면 모두 같은 인물임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나의 그림 실력이 모자란 탓이다. 오히려 그 덕분에 벽을 보는 재미가 있다.


방에서 혼자 요가를 하지만, 벽면 속 남자를 보면서 하기 때문에 심심치 않다. 그들은 나의 요가 선생님이면서 함께 요가를 수행하는 벗이다. 자세 그림 밑에는 자세 이름, 주의사항, 효과를 간단하게 적어 두었다. 벽면에 붙은 요가 자세들을 차례로 훑다 보면 어떤 리듬이 저절로 생겨난다. 주로 동일한 패턴으로 요가를 진행하지만, 어떤 날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여름 내내 방 안에서 벽면 요가를 하며 땀을 죽죽 흘렀다. 그런 뒤 찬물 샤워를 때리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몸과 마음이 상쾌해졌다. 나를 짓누르던 우울과 자괴감이 사라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감한 내가 있다. 용감해진 나를 만나는 게 좋아서 요가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 기대했던 살이 빠지지는 않았지만, 우울과 불안은 빠져나가는 듯했다. 힘과 에너지가 돌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서 벗어나게도 되었다. 살아있는 기분. 사는 느낌.


책으로 요가를 배우고, 그림을 그려 자세를 익히는 방식이 나와 잘 맞는다. 요가는 선생님과 함께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가 학원에 다녀봤지만 지금처럼 스스로 마음이 동해서 움직여지지는 않았다. 여름. 오전 열 시 삼십 분, 같은 시간에 요가를 3개월 꾸준히 했더니 얼굴이 맑아지고 몸이 미세하게 변하고 있다. 어느덧 가을이다. 이제 요가를 해도 땀이 별로 나지 않는다. 발이 시리기도 하다. 벽면 요가 남자들은 팬티 바람이라 더욱 안쓰럽다. 앞으로 그려질 요가 남들에게는 요가복을 입혀줘야겠다. 겨울에는 모자도 씌우고 목도리도 둘러줘야겠다. 바닥보다 벽이 더 찹다.



32E41506-476D-424D-B17F-64C25793D58F.jpeg
EF1805E0-1471-4B0D-B10B-F0659DD54AB4.jpeg


keyword
이전 04화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