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보는 시간
한동안 저는 돌에 빠져 지냈습니다. 특별한 모양의 돌이 아니라 길 가다 만나는 그냥 돌이었습니다. 왜, 나는 돌을 볼까. 주울까. 그릴까. 꽤 오랜 시간 동안 물음표를 놓지 않았더니, 어떤 암호가 점점 풀려나가는 느낌입니다. 당신도 그런 적이 있나요?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는 채로 반복하는 행동들이요. 저만 이상한 거 아니죠?
외출했다가 눈에 들어오는 돌을 주워서 집에 돌아왔다. 모으는 게 의미 없는 하잘 것 없는 작은 돌이었는데 자꾸 눈에 밟혀서 주머니에 넣었다. 돌을 좋아하나 보다 단순하게 생각했고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런데 좋아해서 반복한다고 하기에는 뭔가 쓸쓸했다. 왜 줍지? 이유가 알고 싶어서 주워온 돌을 그려보기도 했다. 막상 연필을 잡으면 그리느라 돌 줍는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영원한 수수께끼 같은 일로 남을 거라 생각했는데... 수수께끼가 조금 풀렸다.
내가 그 돌을 보면 거의 동시에 그 돌도 나를 보는 듯한 느낌에 빠졌었다. 모양과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찰나의 공유라고 해야 할까. 무언가도 나를 본다는 감각. 혼자일 때 돌을 주웠다. 옆에 누가 있으면 대화를 나누기 바빴지, 돌을 줍지 않았다. 혼자일 때도 혼자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혼자 돌을 보던 시간, 내가 참 많이 외로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일 수밖에 없는 시간 속으로 돌을 끌어왔다. 돌에 의지했다. 돌은 나에게 손쉽게 손 닿을 수 있는 자연이었으며 나와 침묵의 시간을 나누던 친구였다. 나뿐 아니라 돌은 누군가에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래 왔을 거 같다. 아마도 인류 탄생 이전에도 돌은 존재했을 테니까.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냇가에 자주 갔다. 엄마가 빨래하는 동안 기다리는 지루했고 돌을 갈면서 시간을 보냈다. 돌마다 갈았을 때 나오는 색깔을 매니큐어 마냥 손톱에 바르면서 놀았다. 그러다 돌을 하트 모양으로 갈기 시작했다. 둥글고 세모 난 돌을 고르고 정성 들여 하트를 만들었다. 같은 돌이 없었기 때문에 크기, 색, 질감 모두 다른 하트 돌이 만들어졌다. 하트 돌은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돌을 보느라 교실이 술렁였다.
몇몇 친구들은 직접 하트 돌을 만들어 보고 싶어 했고 나는 친구들을 하트 돌 만드는 작업실_시냇가_로 데리고 갔다. 어떤 돌이 잘 갈아지는지, 돌 고르는 법부터 하트 모양이 잘 나오게 가는 비법을 전수했다. 하트 위쪽 (갈매기 모양) 둥근 곡선이 하트 돌 만들기의 포인트다. (이 부분은 밝히지 않겠다.) 친구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해서 자신만의 하트 돌을 만들었다.
별과 달에 위로받아도 가질 수는 없다. 돌은 나에게 소유할 수 있는 위로였다. 타인의 마음은 알고 싶고 읽어내려고 애쓰면서 자신의 마음은 들여다볼 줄 몰랐다. 돌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있어주면서 내 마음을 돌보게 도와주었다. 돌 보며, 나를 돌봤다.
지난겨울, 제이와 돌을 보러 바닷가에 갔었다. 돌 보기는 뒷전이었고 제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오히려 제이가 돌 보기에 빠져서 멋진 돌을 내밀어 자꾸 보여주었다. "하트 돌이다!" 하트 모양 돌을 발견하며 소리치고 웃는 제이가 좋았다. 오십이 다 되어가는 제이가 어린이처럼 군다.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돌과 관련한 에피소드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언제 '돌 특집'을 마련해야겠다. 돌을 막 던져봐야겠다. 돌은 어디에나 있다. 나도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돌은 천천히 변한다. 나도 천천히 변해도 된다. 같은 돌이 없다. 남과 같지 않아도 된다.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