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할매들
마흔 중반이 되니,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마음처럼 움직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친구들도 당뇨, 허리디스크, 저음성 난청 등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문제는 불면이었습니다. 불면의 밤이 쌓여가면서 낮에도 축 늘어진 상태로 지내기 일쑤였습니다. 피곤하다는 말만 달고 살았습니다. 안면홍조와 열감이 심해서 사람 만나는 일도 꺼려집니다. 노안이 시작되었는지 안경을 써도 또렷하게 글자가 보이지 않네요. 미용실에 머리 자르러 갔더니 "이제 염색하셔야겠어요." 뒤통수 쪽에 흰머리가 많다고 하네요. 늙어감을 막을 수는 없고, 어떻게 늙어가면 좋을까요?
도서관 가는 길에 본동 할매인 줄 알고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인사 전에 잠깐, 어? 본동 할매 맞나? 멈칫했다. 본동 할매는 완전 새하얀 흰머리다. 비유하자면 본동 할매는 흰 눈이 소복한 풍경이라면, 내가 방금 인사한 할매는 눈이 조금 녹아 흙이 조금 보이는 풍경에 가까웠다. 생각의 속도보다 인사가 빨랐다. 다가가보니, 본동 할매가 아니라 모르는 할매였다. 모르는 할매는 내 인사를 나보다 더 친근하게 받아주셨다. 인사만 나눈 짧은 시간 사이에 정감이 오고 갔다. 모르는 할매는 보행 보조기를 밀면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웃음을 주고받으니 더 나눌 이야기가 없어서 발길을 돌리는데 모르는 할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도 펄펄 걸었을 때가 있었을까."
체격도 좋으시고 밝고 건강해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보조기 없이 걷지 못하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천천히 하세요."
"네. 고마워요."
짧은 대화였지만, 숙연해졌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전과 다르게 묵직한 감정이 실렸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곱씹으며 걷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이번엔 모르는 것이 분명한 모르는 할매 투(two) 가 소리치듯 말을 걸어온다.
"아가, 오늘이 며칠이냐?"
"(휴대폰으로 재빠르게 검색 후,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30일이요."
"몇 월 달?"
"1월이요!"
"알았다. 고맙다. 어서 가그라."
"네... 고맙습니다."
모르는 할머니 투는 걸음걸이는 정정했지만, 시간을 잊어가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 동네는 할아버지들은 이미 돌아가시고 할머니들만 남아 혼자 살고 있는 집이 많다. 한동안은 자주 부고를 알리는 방송이 들렸다.
본동 할머니는 올해 84세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텃밭도 하고 시장도 본인이 봐서 끼니를 해 잡수신다. 혼자 집에 있기보다는 경로당에 나가서 요가나 다양한 수업에도 참여한다.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오시는데 항상 이야기가 풍부하다.
우리 집 앞집에는 큰 이모가 산다. 큰 이모는 손자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고관절과 무릎 수술을 받은 후 잘 걷다가 추석 이후로 통 걷기 힘들어하신다. 주로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종일 드라마 몰아보기, 당구나 배구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4년 전 이모부가 돌아가셨어도 언제나 씩씩하게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신다.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자연인들이 해 먹는 음식을 제일 먹고 싶어 한다.
"아따, 맛있게 보인다. 저거 한 입 먹어봤으면 좋겠다."
큰 이모는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이 여전히 많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넘친다.
엄마, 아빠만 봐도 한 해 한 해가 너무 다르게 노쇠해지신다. 두 분 다 4년 전만 해도 운동장 8바퀴는 돌던 체력이었는데 지금은 운동장이 아닌 주차장 6바퀴를 겨우 도신다. 뒷산에 봄이면 두릅, 가을이면 밤을 채취했었는데 지난해 가을부터는 뒷산에 아예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빠만 해도 올 겨울에 중이염이 생겨 텔레비전 소리를 듣지 못해 갑갑해하신다. 다행히 사람 목소리와 버스 안내 방송은 들으신다. 엄마는 희귀성 난치병 전신경화증을 앓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숨이 차서 가까운 데 걷기도 힘들어하신다.
늙음과 병이 이제는 나와 무관한 일처럼 여겨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나는 혼자 늙어갈 확률이 높다. 고립감이 맥을 못 추도록 친구와 우정을 나누기. 물건을 늘리지 않고 가볍게 살기. 욕심을 덜어내고 자연스레 늙어가기. 죽음 앞에서도 담담하기. 스스로를 잘 챙기면서 주변을 돌보기.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이 중요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 지금의 일상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잊지 않기.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비난하지 않기!
당신에게 잘 늙어가는 비결이 있는지 궁금해요! 배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