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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Feb 23. 2024

필명의 탄생과 요괴딸

요괴딸의 계략 

필명의 탄생과 요괴딸


  2021년 2월 17일, 똑순애와 급한덕의 생애 첫 시가 탄생했다. 첫 시를 축하하는 눈이 폴레폴레 내렸다. 엄마 조순애, 필명은 '똑순애' 아빠 방한덕, 필명은 '급한덕' 똑애와 급덕을 세트로 묶어 부르는 말은 '순한 커플' 


  둘은 칠십이 넘어서 원치 않는 필명과 커플명을 얻었다. 이게 다 요상하고 괴팍한 딸 때문이다. 요괴딸은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순한 커플을 꾀어 함께 지지고 볶을 수 있는 놀잇감으로 시를 선택했다. 요괴딸은 시가 돌아다니는 집 생활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요괴딸의 유일한 야심은 이 집에서 출발해 저 집으로 시가 돌고 돌게 하는 것이다. 요괴딸은 스스로 만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었다. 

  

요괴딸의 계략

  요괴딸은 요상하고 아름다운 시 쓰기 세계로 순한 커플을 어떻게 꾀어내야 할까 고민했다. 대상의 성격 파악이 중요하다. 둘은 책임감이 무척이나 강하고,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내려고 노력한다. 순한 커플의 책임감과 요괴딸 자신의 미래를 엮어서 교묘하게 버무리면 뭐가 나올 것도 같았다. 드디어 주문이 만들어졌다. 


"엄마, 아빠. 도움이 필요해. 나중에 어린이들과 시 쓰면서 살고 싶은데... 어린이 만나기 전에 엄마, 아빠랑 시 쓰면서 미리 연습하고 싶어. 꼭 도와줘."


  요괴딸은 간곡했다. 둘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얼떨결에 "알겠다."라고 했다. 옳다구나. 먹혔다. 시가 뭔지 물어볼 생각도 않고 요괴 딸의 계략에 말려든 것이다. 요괴딸은 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종이 두 장, 연필 두 자루, 지우개를 순한 커플 앞에 떡하니 놓았다. 


  "시란, 감정과 경험을 쓰는 것이며 답이 없습니다. 시는 길어도 짧아도 상관없고, 맞춤법이 틀려도 괜찮습니다. 오늘 때마침 눈이 오니 '눈'에 대한 시를 써봅시다."


  예고편 없는 본편이 바로 시작되었다. 순한 커플은 빈 종이 앞에서 순식간에 말을 바꿨다. 


  "안 할래. 못 배운 무식자가 어떻게 해. 화장실 갈 거야. 못 해."

  시작하자마자 못하겠다고 손 놓는 것은 예상 못한 반응이었지만, 일일이 대꾸 않고 시계를 보며 엄숙한 표정으로 "자, 지금부터 15분 동안 시를 쓰세요." 단호하게 질렀다. 


시시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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