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80과 100 사이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외형은 못생기고 색도 예쁘지 않지만 맛은 그다지 차이가 없는 소위 B급 과일로 분류되는 사과를 A급의 80% 가격으로 판매한 'B급이라고 말하지 마' 프로젝트(2014)의 결과는 아쉬움은 분명 남았지만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일부 매체에 소개된 기사에서
결국은 B급 과일을
비싸게 팔려는 수작 아니냐?
라고 이야기하는 댓글을 많이 만났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농부들의 농산물이 시장에서 얼마나 홀대받아왔는지 소비자들은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판매 가격 상승에 따른 증대된 수익은 결국 모두 농부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한 프로젝트의 부연 설명이 없었으니 소비자들의 그런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상식이지만 그들에겐 그게 아닐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설령 그런 부연 설명이 있었을지라도 동일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들은 있었을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싼 것은 결국 좋은 것이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른바 ‘B급’으로 분류되는 농산물은 어떤 것인가? 크기가 작거나, 모양이 예쁘지 않거나, 겉 표면에 흠집이 있거나 하는 농산물이다. 오이가 일자로 곧게 뻗지 않고 살짝 휘어도 B급이고, 호박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 농산물들을 다른 일반 농산물과 똑같이 팔면서 B급이라는 꼬리표를 걷어내주고 싶었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단양사과 협동조합의 한연수 농부의 무농약 양광 사과로 2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4년 첫 프로젝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궁극의 목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시도였다.
A급과 B급의 구분 없이, 크기에 따른 가격 차이도 없이 사과를 판매하는 모험을 한 것이다. 가격적인 부분도 80의 벽을 허물어 100으로 좀 더 가까이 가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외모와 크기는 더 이상 과일 선택에 있어서 논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희망했다.
한연수 농부의 양광 사과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있었다 사과 농사는 흔히 말하길 친환경 재배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농사이다. 친환경 사과 농사를 시작한 지 8년 차, 7년간의 실패 끝에 2015년 첫 수확을 한 한연수 농부의 양광 사과로 진행한 2차 프로젝트라 나와 농부님 모두에게 남다른 의미였다. 한연수 농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다.
내가 모르고 안해서 못할 뿐이다
2차 프로젝트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전량 완판!!! 무농약 사과라 전체적으로 외형적으로 거칠고, 색도 완벽히 빨갛지 않은 사과로 낸 성과라 더욱 뜻깊다 하겠다. 이유는 단 하나! 사과의 식감과 맛이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멋'이 '맛'을 이길 수는 없다
는 나의 확고한 신념을 확인한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과일의 '맛'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기획 기사로 다룰 예정입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시장에서 'B급'이라는 용어 자체를 사라지게 하는 일이다. 사과는 그냥 사과고 감귤은 그냥 감귤이다. 가격은 무게에 따라서 정해지면 되는 거고, 등급이 나누어지게 된다면 친환경 농산물과 관행 농산물의 차이에 따른 방법 그리고 맛의 차이에 의한 등급은 납득할 수 있지만 단지 외형적 판단에 의한 등급 기준은 하루빨리 사라지는 것이 맞다고 나는 믿는다.
영어의 알파벳 b는 숫자로 바꾸어 말하면 2등 혹은 그 이하를 의미한다. 따라서 b가 붙어있는 말들은 뭔가 부족하거나 정상이 아니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소비자 인식의 변화를 위해서는 'b급'이라는 이름 자체를 바꾸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b급'을 대신할 수 있는 단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과를 넘어 다른 과일에서도 이 판매 방식은 적용되기 시작했다.
‘크기’와 ‘모양’ 그리고 ‘색’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대한민국의 농산물 시장
경남 밀양 배병석 농부의 점박이 단감에는 '고난 극복 단감'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이름을 만든 것은 배병석 농부 본인이었다. 너무 예쁜 이름이라 지금까지도 B급을 대신하는 용어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고난 극복 단감은 아래의 원인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이런 이유로 인해 B급이라는 불명예를 쓰는 것이 합당하시고 보십니까?
• 껍질에 자국이 생기는 원인은 대부분 다른 가지 사이에 끼어서 자라서 생기거나
• 태풍으로 인한 강한 바람으로 상처를 입거나
• 혹은 습기가 많은 풀 속에 있어서 잠시 곰팡이가 생겼지만 햇빛을 보아 치유가 돼서 남는 상처 등입니다.
• 병해는 주로 잎에 입기 때문에 열매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 충해는 노린재 피해가 있는데요, 단감이 어릴 때 노린재가 단감에 침을 찍어서 빨면 그 주변이 스펀지처럼 퍼석퍼석하게 되는 증상이 있습니다. 노린재가 수분만 빨아먹기 때문에요. 그러나 부피로 보았을 때 아주 미세합니다. 살짝 도려내고 드시면 되는 정도지요.
2017년 전북 장수 신농 영농조합의 '시나노 골드'의 빨간 점 사과에는 '연지곤지'라는 이름을 선물하였다. 노란색 사과 시나노 골드에 생긴 빨간 점은 갑작스러운 늦은 장마로 인해 발생한 탄저병의 치유 흔적이었다. 탈씨 탓에 2017년 전국의 사과 농가에는 탄저병으로 많은 피해를 보았다. 판매를 시작하자 예상치 못한 반응이 이어졌다.
소비자들의 눈에는 노란 사과에 찍혀 있는 빨간 점이 너무 예뻤는지 '연지곤지'는 2017년의 히트상품이 될 정도로 없어서 못 파는 상품이 되었다. 물량이 부족해 연지곤지 상품을 주문한 손님들께 A급 사과를 보내드리면서 '죄송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네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발생했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고 7년이 지나온 동안에 B급 농산물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농산물 쇼핑몰도 많이 생겨났고, B급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고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도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 회사들이 B급 농산물을 보는 시각에 대해서 나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단지 사업적인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단순히 매출은 증대될 수 있으나 소비자들이 농산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유통을 하는 유통인들에게도 자각이 필요하고 사회적 책임감이 필요하다.
이런 나의 지속적인 활동을 평가해주고 인정해준 서울시와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에서 감사하게도 2017년 12월 나를 제1회 식문화 혁신가로 선정해주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2017 식문화 혁신 어워즈' - 주최 : 서울시 식생활종합지원센터 / 주관 : 슬로푸드문화원 / 후원 : 서울특별시)
B급 과일' 팔았더니 식문화 혁신가 된 사람
출처 : 한국영농신문
만나고 싶었어요 - 과일 쇼핑몰 '공씨아저씨네' 공석진 대표
출처 : 디지털 농업
1부 'A 그리고 b' 에서 2부 'A 그리고 B'로 바뀐 글의 제목에서 알파벳의 대소문자 구분을 한 이유를 이제 눈치를 채셨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저 알파벳의 소문자가 대문자로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과일장수 공씨아저씨는 오늘도 열심히 과일을 팔고 있다.
'A 그리고 b' 가 아닌 'A 그리고 B'로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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