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며칠 전 남자 대학 동기 몇 명과 오랜만에 만나 맥주 한잔을 나눴다. 앞으로 자주 좀 만남의 기회를 갖기로 했고, 내친김에 다음 달 모임 날짜까지 잡기로 하였다. 여기저기서 난 목요일은 안돼, 난 수요일은 안돼 각자 안 되는 '요일'이 튀어나왔다. 특정 날짜도 아니고 특정 요일이 안된다니 무슨 이유였을까?
그 요일이 바로 각자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쓰레기 분리수거 날이었던 것이다. 이제 쓰레기 분리수거는 남자들의 몫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집에서도 역시 쓰레기 분리수거는 내가 하지만 출근길에 다 끝내버리는 일이기에 녀석들이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그들의 일주일 분리수거 쓰레기 양과 나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 원인을 찾아보니 집에서 1차 농산물을 직접 손질하고 가공해서 요리를 해서 먹는 빈도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났던 것이다. 일주일에 집에서 밥을 한 끼도 해 먹지 않는 녀석도 적지 않았다. 모든 쇼핑을 온라인에 의존하고 가공식품 구매 비율이 현저하게 높았던 것이다. 그러니 쓰레기 발생량에 있어서도 나와는 많은 차이가 났던 것이다.
위 사진은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분리수거하는 날의 풍경이다. 온갖 종류의 박스가 다 모여있다. 일종의 직업병처럼 나는 유독 박스를 자주 살피는 편인데 어떤 과일 박스가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이다. 재활용 수거장에 나온 쓰레기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우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구매했고, 무엇을 먹고 사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앞서 1부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온라인으로 과일을 판매하기 때문에 택배라는 방식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박스를 비롯해 과일이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석유 화학물질의 완충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가끔은 내가 과일을 팔고 있는 것인지 쓰레기를 팔고 있는 것인지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
내가 파는 것은 과일인가?
아니면 쓰레기인가?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는 총 1,372세대 / 총 26개 동인데 1주일에 저 트럭으로 2~3대 분량의 스티로폼 쓰레기가 나온다. 종이박스, 비닐 쓰레기도 비슷한 수준의 분량으로 발생한다. 과일 중에서는 딸기, 방울토마토 등이 스티로품 박스를 많이 사용한다.
과일을 포장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완충재는 망 패드이다. 특히 배송 중 잘 터지는 과일인 경우에는 망 패드를 2중 3중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터져서 발생하는 컴플레인과 그에 따른 보상 절차로 발생하는 손실과 프로세스의 번거로움을 고려하면 애초부터 포장을 튼튼하게 해서 사고 발생률을 낮추는 것이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훨씬 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명절 때가 되면 포장재의 과잉 사용은 극에 달하게 되는데 선물로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우선 안전성 측면에서 더욱 신경을 써야 하고, 보기 좋은 떡을 만들어야 팔리는 것이 명절 시장이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완충재와 포장재들을 사용하여 비싼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 과일 유통업계의 현실이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경우 포장재 가격이 원물 가격보다 높은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문제의식은 충분히 있었고 공감을 하는 사람들도 늘었지만, 딱히 대안이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무엇이라도 해보자고 결심한 나는 '완충재 1개 덜 넣기'를 시도해보기로 하였다.
사과에 개별 캡을 씌우는 이유는 배송 중에 사과끼리 부딪혀서 멍이 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 그 첫 번째이고 두 번째 좀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함인데, 안정성 측면에서 다수의 실험을 해보니 사과 박스의 위아래 유격이 없도록 종이 골판지를 대면 굳이 개별 캡을 씌우지 않아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개별 캡을 씌우지 않고 사과를 포장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포장의 안정성 측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 망 패드까지는 제거하지 못했지만, 개별 캡을 하나 없앤 것만으로도 많은 쓰레기 양을 줄일 것으로 기대한다.
위 사진은 사과나 배 등을 포장할 때 제일 중요한 부자재인 난좌(卵座)이다. 난좌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한 포장과 동시에 무게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그냥 단순한 홈처럼 보이시겠지만 포장 무게의 중량을 고려해 딱 맞도록 맞춰진 포장 자재이다. 사과의 크기 선별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무게를 맞춰서 포장하기 위한 이유가 있다. 안 그러면 5킬로 사과 한 박스를 무게를 맞춰서 포장하기 위해서는 이 사과도 넣어보고 저 사과도 넣어보고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선별기를 통과한 사과는 해당 개수의 난좌에 담으면 오차범위 이내에서 5킬로에 딱 맞도록 설계되어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난좌의 재질은 '스티로폼'이다. 그 이유는? 가격이 제일 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튼튼한 난좌는 무엇일까? '플라스틱'이다. 그런데 단가는 제일 비싸다. 그래서 명절 때 고가의 선물세트에만 주로 사용하게 된다.
위 사진 속의 난좌는 생분해되는 친환경 종이 난좌다. 썩는 소재라는 이야기다. 아직 종이 난좌를 못 보신 분들이 더 많을 것이다. 가격이 스티로폼 난좌의 2배가량 나가기 때문에 아직 보급이 많이 되지 않아서이다. 2017년 장수 신농 영농조합의 사과를 판매하면서 나는 조합원들에게 난좌를 친환경 소재의 난좌로 교체할 것을 제안했고, 나의 판매 방식과 철학에 대해 인정을 해준 조합원들도 흔쾌히 수락을 해서 현재는 스티로폼 난좌 대신 종이 난좌를 사용하고 있다.
이 곳에서 유통하는 사과 중 아직까지는 우리 회사로 납품하는 사과만 종이 난좌를 사용한다. 물론 명절 선물용 포장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아직 3킬로용 종이 난좌는 시판된 게 없어서 아쉽게 5킬로 상품에 한해 사용하고 있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것 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나는 믿는다.
현재 판매하고 있는 20 과수 5킬로 사과는 이렇게 포장한다. 개별 캡도 없고, 스티로폼 난좌 대신 종이 난좌에 포장되어서 말이다. 아쉽게도 아직 망 패드 까지는 없애지 못했지만 궁극적으로 망패드도 썩는 생분해 소재의 포장재로 바꾸는 것이 내가 궁긍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최근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스티로품 쓰레기 분리수거 불가 품목에 대한 안내문이 붙어있다. 포장 부자재 등의 쓰레기가 재활용품 대상에서 제외되어 일반쓰레기로 분류하여 종량제 봉투에 배출하라는 안내였다. 현재 서울시 아파트의 경우 아파트에서 개별적으로 분리수거 업체와 계약해서 쓰레기를 처리하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압력을 행사할 수 없는 미묘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분리수거 품목의 변화로 주민들은 혼란에 빠졌고 관리업체와 아파트 입주자들과의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었다. 여기저기서 이러한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자 4월 2일 정부는 폐비닐, 플라스틱 수거 재개를 발표하였다.
재활용이 되지 않는 쓰레기는 '매립', '소각' 둘 중에 하나의 방식으로 처리된다. 소각으로 인해 발생하는 2차 환경오염으로 소각장 설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썩지 않는 저 쓰레기들이 이 땅 어디엔가 깊숙이 묻혀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 지방자치단체와 쓰레기 분리수거 업체 간의 핑퐁 싸움은 그만두고 세금을 투입해서라도 좀 더 철저한 재활용 수거가 이루어지도록 장기적인 정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 시급하고, 재활용 쓰레기를 활용한 Upcycling 부분의 사업 영역에 다양한 지원도 필요하다.
물론 그전에 우리가 분리수거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심각하게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이건 편리함과 불편함의 문제가 아닌 삶과 죽음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 심각한 이야기다. 우리에겐 이제 특명이 하나 주어졌다.
지구를 지켜라
<2018-03-30 동아닷컴>
<2018-04-02 뉴스1>
<2018-04-03 경향신문>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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