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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Apr 03. 2018

쓰레기를 부탁해

공씨아저씨네 X JUST PROJECT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쓰레기를 파는 과일 장수 



온라인으로 과일을 판매하면서 풀기 어려운 고민이 한 가지 생겼다. 그건 바로 쓰레기 문제였다. 택배 판매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박스를 비롯해 과일이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완충재를 사용한다. 안타깝게도 그 완충재는 모두 석유 화학 물질이다. 좋은 먹거리를 판매한다고 떠들면서 좋지 않은 포장재를 함께 판매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어느 날 부끄러워졌다. 친환경 농산물의 우수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포장은 전혀 친환경 적이지 않은 대한민국의 농산물 시장 상황도 함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파는 것은 과일인가?
아니면 쓰레기인가?



사실 가공품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쓰레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2016년 5월 단양사과 협동조합의 사과즙 판매를 앞두고 나는 페이스북에 반성문을 한 편 작성하게 된다. 농산물과 가공품으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에 관한 문제를 소비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판매한 사과즙의 포장 파우치를 다시 회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기로 했다. 버려지는 쓰레기를 업사이클링(up-cycling)해서 다양한 소품을 제작하는  디자인 회사 JUST PROJECT
가 컬래버레이션을 흔쾌히 수락했다.



'쓰레기를 부탁해' 반성문 원본

출처 : 공씨아저씨네 페이스북

페이스북에 처음 게시했던 글을 소개한다.


"사과즙 판매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포장 방식이었습니다. 기존 파우치 방식의 사과즙은 생산단가는 저렴하나 칼이나 가위로 입구를 잘라야 했고, 그곳에 우리는 습관처럼 빨대를 꽂았습니다. 이 과정 자체가 번거로운 행위가 되다 보니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 불편을 해소하고자 요즘은 스파우트 파우치 방식의 즙들이 많이 나오지만, 최소 제작 단위가 크고, 그 제작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서 대기업이 아닌 작은 농가에서 시도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가 판매할 사과즙은 일반 파우치 포장의 사과즙입니다. 사람들이 불편해해서 많이들 안 찾을 텐데… 하는 걱정이 우선 앞섰던 것 같고, 빨대를 서비스로 같이 넣어주면 좀 나으려나…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했었습니다. 작년에 이슈가 되었던 바다거북의 코에서 빨대를 꺼내는 영상은 저에게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바다의 오염에 대한 문제는 일찍이 제기되었던 문제지만, 막상 영상을 보니 무언가 제 머리를 강하게 쿵 내리치는 듯했습니다.


Sea Turtle with Straw up its Nostril - "NO" TO PLASTIC STRAWS


빨대를 없애는 것부터

빨대의 불편함을 개선하고자 나온 스파우트 파우치는 재활용 면에서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뚜껑 부분은 플라스틱이고 몸통은 비닐이라 두 개를 분리해서 배출하지 않으면 그냥 일반쓰레기로 전락하고 마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재활용 문제를 생각하면 기존의 파우치 방식이 오히려 낫더군요.



지금 당장 "빨대를 사용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씀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빨대를 대체할 수 있는 쉽고 편한 방법을 제시해 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저희가 일차적으로 하려고 하는 일은 쓰레기를 완벽히 회수하는 일입니다. 이 이야기는 쓰레기를 저희에게 보내주시면, 그 조건으로 여러분들께 무엇인가를 드리겠다고 하는 홍보 마케팅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여러분들 스스로가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지속 가능하게 동참해주셔야 할 문제입니다. 


다음 주부터 판매하게 될 단양사과 협동조합의 사과즙을 구매하실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빨대 사용을 조금씩 줄여주시고 사용하신 빨대와 사과즙 파우치 쓰레기 등을 저희에게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배송비용은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플라스틱과 비닐은 가정에서도 분리수거를 할 수 있는 품목이지만, 분리수거를 해서 재활용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에너지를 소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급적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업사이클링(up-cycling)하는 방법으로 쓰레기를 멋진 디자인 상품으로 재탄생시키려고 합니다. 그것이 지금 현재 시점에서 환경을 위해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습니다.



빨대와 파우치를 보내주신 분들 중 몇 분을 추첨하여 버려진 빨대와 폐비닐을 업사이클링해서 만든 JUST PROJECT의 디자인 상품을 선물로 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향후에는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폐비닐만을 이용하여, 새로운 소품을 만들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삼는 일은 석유화학 재질의 포장재가 아닌 자연친화적인 친환경 포장소재 개발입니다.지금의 이 작은 실천이 그 첫걸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쓰레기를 사랑하는 디자인 회사

[JUST PROJECT x 공씨아저씨네]


사과즙 파우치를 비롯해서 수거해서 디자인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비닐, 빨대류도 함께 수거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홍보를 시작했다. 총 20분께 저스트프로젝트의 디자인 상품을 선물로 드리기로 하고 말이다. 

저스트 프로젝트에서 제작한 카드뉴스


결과는 어땠을까? 아직 우리의 사과즙 파우치로만 제품을 생산할 정도의 쓰레기가 회수되지는 못했다. 가정에서 쓰레기를 모아서 보낸다는 것이 막상 해보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 쓰레기라는 것이 빨리 버리고 싶은 대상이지 고이고이 모셔놓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래서 솔직히 회수율에 있어서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다만 소비자들로 하여금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해마다 사과즙 파우치와 함께 가정해서 발생하는 비닐 쓰레기를 모아서 보내주시는 분들이 아직 계시다. 소비자와 생산자 그리고 농부가 함께 자각해야 할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단순히 '운동'으로 접근해서 소비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동시에 분리수거와 재활용에 대한 관련 법규도 정비되지 않는 이상 영원히 풀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사과즙 구매 손님들로부터 회수한 파우치


이벤트에 당첨되신 분들이 남겨주신 후기



그린피스의 플라스틱 제로 캠페인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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