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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Nov 24. 2022

동고비가 인사한 날

2022.11.24

보름 만에 사무실 뒷산에 올랐습니다. 코로나로 온 가족이 한동안 집에 갇혀 있어야 했거든요.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긴 했는데 산책을 하기에도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 오늘에서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제 다 끝났구나 했을 시점에 집 나간 미각과 후각은 아직 돌아올 생각을 하질 않네요. 


나뭇잎들은 거의 떨어졌지만 아직은 가을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이상하게 새소리가 잘 들리더라고요. 마치 제게 말을 하는 것처럼요. 


최소한 한 번쯤은 쉽게 만났을 법도 했는데 이상하게 우리 탐조 부자와는 잘 마주치지 않았던 밀화부리를 어이없이 마주쳤습니다. 낙엽 위에 주저앉아서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바로 그 앞에서 딱새 수컷 한 마리가 1.8초 정도 정지비행을 하며 저를 위한 공연을 펼쳐주기도 했습니다. 


밀화부리를 30여분 구경하고 정상에 올라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탐조인이 좋아하는 상모솔새가 오셨을까 하고 소나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미친 헛소리라고 하겠지만 밀림의 동물들이 타잔 주위로 몰려들듯이 산새들이 제 주위를 둘러싸며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박새 십여 마리와 쇠박새를 비롯하여 솔새류와 쇠딱다구리가 마치 합주를 하듯 연주를 시작했고 애석하게도 잣을 사무실에 놓고 왔는데 곤줄박이가 찾아왔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손을 내밀어 보았는데도 한참을 제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잣이 있었으면 꿈에도 그리던 손바닥 위 버드 피딩의 꿈을 이루는 날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많은 새들이 같은 장소에서 한꺼번에 노는 것은 처음 목격하는 광경입니다. 마치 이제 저를 친구로 인정해주겠다는 환영식을 해주는 것처럼요. 그러나 현실은 먹이를 찾기 위해 저의 존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었겠죠... 


보통 올라가는 코스와 내려오는 코스가 다른데 오늘은 이상하게 올라갔던 길 그대로 내려오고 싶었습니다. 정상에서 턴을 하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바로 눈앞에서 동고비 한 마리가 시그니처 포즈를 취하며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저랑 눈이 마주쳤는데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동고비는 먼발치에서 스치듯 창경궁에서 딱 한번 봤는데 뒷산에서 이렇게 코앞에서 마주칠 줄이야...  위아래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이 흡사 쇠딱다구리와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청회색의 빛깔은 알흠다움 그 잡채였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어서 빨리 집에 가서 탐조인에게 오늘의 꿈같은 이야기를 해줘야겠습니다. 동고비랑 밀화부리를 같이 봤다고 하면 을메나 부러워할지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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