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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테라에게
13화
테라 이야기 11
2차 모금, 그날의 게시글
by
애로
Feb 21. 2022
*본 글은 2016년 8월 8일 - 2018년 7월 24일, 약 2년이란 시간을 함께 하고 고양이 별로 떠난
길
고양이 테라의 구조일지를 재편집하여 작성하였습니다.
2차 모금 글을 올린 후 이틀 동안 수많은 생각을 하다가 이제야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집 앞 골목에서 우연히 가여운 한 생명을 마주하고
통장에 있던 등록금 백만 원을 믿고
무작정 동네 24시 동물병원에 찾아갔던,
무더웠던 8월의 그날은 지나고
어느덧 찬 바람 부는 11월이 찾아왔습니다.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난생처음
길고양이 구조자라는 이름으로
왕복 세 시간 거리의 동물병원을 들락거리고,
통장에 모인 오백 만원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의 돈과 그 마음들을 헤아려야 했으며
꺼져가는 한 생명의 보호자로서, 그 생명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한
흔들리지 않는 판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 와중에
독립 후, 오랜 소망의 결실인 제 첫 반려묘 사
울이가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아르바이트를 가던 길 교통사고를 당해
한 달을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8월 악취 나던 쓰레기장에서 테라를 처음 만난 이후
제 머리는 온통 테라에 관한 것들, 아니 감당해야 하는 무게들로 가득 차있었기에
그리 슬퍼할 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근래 매일같이 알바를 하느라
신경을 소홀히 해 속수무책으로 사울이를 보냈다는 죄책감
전신마취와 수술의 고통
부러진 팔 수술로 18cm나 되는 긴 절개 흉터가 내 몸 어딘가에 영영 새겨졌다는 슬픔
옷을 입는 것, 머리를 묶는 것조차 스스로 할 수 없음에 대한 자괴감
신경손상으로 축 늘어진 손목과 손가락이 언제쯤 회복될지-혹은 영영 장애가 남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대학 등록금으로 쓰라고 보태준 돈에서 70여만 원을
길 가다 마주친 고양이 치료비로 덜컥 쓴 나의 행동이 아직은 못마땅한 부모님
어쩔 수 없이, 기약 없이 쉬게 된 아르바이트
그로 인해 펑크 난, 회복해야만 하는 생활력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갈길이 먼.
한 생명에 대한 나의 책임
그리고
그 모든 것 이전에 존재했던
나의 꿈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것들
하기 위해 돌고 돌아야만 했던 긴 시간들이
퇴원 후 우두커니 집에 앉아있자면
자꾸만 떠오릅니다.
이제야
생각할 겨를이 없던,
생각해야 될 그 모든 것들이 물밀려 오듯 떠밀려옵니다.
고등학생 시절 야자시간에 학교 담장 밑 고양이 가족에게
마트에서 엄마와 고른 이름 모를 사료를 주러 나가는 일이 그날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예뻐하고, 가여워하던
독립하면 언젠가 꼭 반려동물을 키우리라 소망했던
잘 알지도, 더 하지도 않은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테라를 만난 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나 부족하고 멋모르는 사람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 그대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자극적으로, 이목을 끌어 목표를 달성해낼 자신은 없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것을
가라앉은 진심만을 전하는 것이 제 희망입니다
테라(Terra)는
라틴어로 '땅, 흙'을 의미합니다.
생명력의 원천인 땅과 흙처럼
부디 살기를 바라며,
꺼져가는 생명이 다시 불붙기를 바라며 지어줬던 이름입니다.
테라에게,
그리고 저에게... 힘을 보태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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