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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렛 Sep 01. 2020

결혼 후 아이를 꼭 낳아야하는 걸까?

아이를 낳고 신세계가 펼쳐진 현실

아이가 없는 결혼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가진 건 아니었다. 남편과 둘이 보내는 신혼의 나날들도 좋았다. 하지만 적어도 서른 다섯을 넘기기 전엔 꼭 아이를 낳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왜그렇게 촌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사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거스를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감사하게도 원하던 시기에 아이가 생겼고, 기뻤다. 아이도 아이지만, 10년 넘게 쉬지 않고 일해온 나에게 육아 휴직을 쓸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쉼없이 일한 나에게 찾아온 선물같은 느낌! 심지어 직업을 바꿀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 기대까지 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나에게 펼쳐질 일들은 상상도 못 한 채!


임신의 고통이 100이라면
출산은 100X100
 

임신 과정이 수월한 편이었다. 입덧도 짧게 지나갔다. 물론 임신 후반기 소시지처럼 불어난 다리와 수박만 한 배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지만, 죽을 만큼 힘들진 않았다.


하지만 출산은 달랐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제왕절개를 했기에 아이를 만날 때까지는 큰 고통이 없었으나,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정말 생경한 고통이었다. 그날 밤 속으로 얼마나 욕을 해댔는지...

영화 <신세계> 속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 와, 누가 내 배 칼로 찌른 거 아니고? (영화 신세계 주인공 나야 나)
- 이렇게 아프다고 다들 왜 얘기 안 했어? (분명 누군가 말했겠지만, 상상했던 수준 아님)
- 이런 고통 왜 여자만 느껴야 해? (남편한테도 알게 해주고 싶다 부들부들)


출산의 고통이 10,000이라면
육아는 10000000000000000...


하지만 이토록 힘든 출산도 육아에 비하면 껌이라는 사실을 조리원 퇴소 후 알게 됐다. 물론 조리원도 마냥 편하진 않았지만, 왜 그곳을 천국이라 일컫는 건지 집에 가니 알겠더라.

조리원에서 보낸 2주의 시간을 제외하고 아기가 50일이 되기까지 약 한 달 남짓... 난 평생 살면서 겪어본 적 없는 극한의 고통(수면 부족이 주는 상상 이상의 고통)을 느꼈다. 2-3시간에 한 번씩 맘마를 먹는 고귀한 생명체를 케어하기 위해 나 역시 인생 처음 통잠을 자지 못하는 삶을 겪으며, 인간의 수면 욕구라는 것이 정말 세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육아의 필수품은 커피, 맥주
+ (한가한) 친정 엄마 + (말 잘 듣는) 남편


낮에는 커피 밤에는 맥주를 반복하는 삶이었다. 이런 게 육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이것도 단유 후에나 가능한 사치...) 그리고 시어머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육아엔 친정 엄마만 한 구원자가 없다. 좀비와 같은 내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부끄럽지 않은, 언제든 내가 부르면 달려올 수 있는, 내 딸보다 내 안위를 더 걱정해줄 유일한 사람은 '원 앤 온리' 나의 엄마뿐이라는 걸 엄마가 되어보니 더 잘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안위보다 내 딸의 안위가 우선일(말은 안 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 '남의 편'은 내 말을 듣지 않는 순간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


호르몬의 영향이었던 걸까? 연애부터 신혼 시절 내내 거의 싸운 적 없는 부부였건만, 아기가 태어난 후 1년 정도까지 정말 미친 듯이 서로 으르렁거렸다. 물론 중간중간 아이가 주는 놀랍고 경희로운 기쁨 속에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끈끈한 하나 됨을 느끼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싸움을 할 때면 매번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강도로 싸워댔다. 왜 그랬을까?

...

1번 : 둘 다 너무 피곤해서

2번 : 서로보다 소중한 존재가 생겨서

3번 : 아이가 자라듯 부모도 자라는 과정?

...

모두 다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 너무 피곤했고, 너무 서툴렀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진 책임감과 부담이 주는 무게를 서로를 할퀴며 털어냈던 걸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남편도 나도 모두 성장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렇게 싸우지 않는다. 부부싸움에도 패턴이 생기면서 조짐이 보이는 순간 서로 조심하게 되었고, 그때보다 나이를 먹은 우리는 싸울 체력도 없어졌다. 특히, 내가 복직을 하면서부터는 더더욱 싸울 체력도 시간도 사라져 버려 열 받으면 그냥 잔다. 아니 열 받을 사건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잠에 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1+1=3
가족은 결혼의 완성?


이제 제법 말을 잘하는 아이는 “엄마랑 아빠랑 나랑 셋이 00할래” 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리고 아이의 양손을 하나씩 잡고 셋이 나란히 걸을 때면 우리가 이룬 가정이라는 조직이 주는 끈끈한 무엇(?)때문에 마음이 뜨끈해지곤 한다.

하지만 매일매일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는 이렇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우보다 화가 치밀어오르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사실. 게다가 하루의 피로가 아이의 미소 한방이면 씻은 듯이 날라간다는 어디선가 들었던 말도 완전한 ‘뻥’이라는 사실을 매 순간 실감하고 산다. 물론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미치겠는 순간은 찾아오지만, 그렇다고 육체의 피로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얼마전에 산 ‘이경제 흑염소 진액’ 한 팩이면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간다면 아이를 또 낳을 것이라고 묻는다면? 아직은 ‘YES’, 다만 아이가 결혼의 필수냐고 묻는다면? 그건 ‘NO’! 아이가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아이가 주는 행복에 부과되는 책임과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면 굳이 낳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이 사실을 아이를 낳아야만 깨달을 수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엄마의 운명을 걸어가야겠지...

오늘도 나는 아이와 함께 뒹굴며 울고 웃는다. 언젠가는 웃는 날이 더 많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으며, 엄마의 삶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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