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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렛 Oct 28. 2020

결혼 후 시댁과 잘 지낼 순 없는 걸까?

시댁과 너무 가까이 살면 벌어지는 현실

시댁은 멀수록 좋고
효자인 남편은 최악?


결혼 전 유부녀 언니들에게 ‘시댁은 멀수록 좋고, 없으면 베스트’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화목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시댁과 걸어서 3분 거리인 곳에서 호기롭게 신혼을 시작했다.

 효자인 남자는 남편감으로 최악이라는 말도 귓등으로 들었다. 그래서 효자는 물론이거니와 누나에게 그리고 조카들에게 끔찍이 잘하는 착한 아들이자 동생인 우리 남편을 결혼 전엔 참 좋게 봤었다.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따뜻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효녀이자 조카 바보니까. 나와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면 서로 이해하며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땐 참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다.


고요 속의 외침
“why?”

 문제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부터 시작되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컴컴한 밤이 되어서야 서울에 있는 신혼집에 도착했다. 10시간 넘는 비행과 2시간여 버스를 타고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침대에 내던진 순간, 남편은 시댁에 인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why?)

이유를 묻자 아버님이 오라고 하셨단다. 내가 이유를 묻는 것 자체가 이상한 눈치였다. 걸어서 3분 거리, 잠시 다녀오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고 어른들에게 인사를 할 필요는 있겠지만 피곤한 밤에 왜 굳이 집까지 가서 인사를 해야 하는 걸까? 전화만 하면 안 되나? 그렇다면 우리 친정 집에도 인사하러 가야 하는 거 아냐? 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갔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한 장면

아버님과 어머님께 어색한 절로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자 당황스러운 말씀을 하셨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이 밥을 먹으면 좋겠다”

(why??)

혼자 속으로 고요한 외침을 한 순간 두 분은 당황스러운 말씀을 이어가셨다.

“내일부터 00은 휴가라지? 점심 혼자 먹지 말고 여기 와서 먹어라”

(why???)

신혼여행을 마치고 남편은 바로 출근했지만 나에겐 일주일의 휴가가 더 있었다. 서른이 넘도록 혼자 살아본 적이 없던 나는 오롯이 혼자 독립적인 내 집에서 보내는 평일의 낮 시간이 두근두근 설렐 만큼 기대되었다. 그런데 시댁에서 남편도 없이 혼자 점심을 먹으라니? 상상만으로도 불편한 일이었다. 물론 나를 생각해서 하신 말씀이란 건 알았지만 그 마음을 헤아려 따르기엔 어렵게 얻은 내 자유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다른 볼일이 많기도 했고, 결국 일주일간 나는 시댁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아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그 후로 몇 달은 거의 매주, 시댁에서 밥을 먹었던 것 같다. 갈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고 쌀이며 김치며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늘 두 손 가득히 돌아왔지만, 나는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함께 하면 할수록 더 자주, 더 많이 무언갈 함께 하기 원하시는 마음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너무 따뜻하고 좋으신 시댁을 만난 것에 감사했지만 그분들이 다가오실수록 나는 오히려 멀어지고 싶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서로에게 쿨하고 독립적이며 표현에 인색한 우리 집과 달리 서로에게 뜨겁고 늘 함께하며 표현도 적극적인 시댁의 분위기가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 불편한 마음들에 대해 유부녀 언니들에게 하소연하거나, 시간을 두고 현명하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남편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내 말이라면 껌뻑 죽는 달콤한 내 남편으로만 생각을 했지, 그분들의 착하디 착한 아들이란 사실을 잊은 채 그만 너무 솔직하게 내 마음을 밝히고 만 것이다.

“어머님 아버님이 주말마다 밥 먹으러 오라고 하시는 거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운 것 같아. 우리가 일정이 되면 가고 아니면 못 갈 수도 있는 건데 매번 오길 기대하시고 또 그걸 말로 표현하시는 거 좀 불편해”

내가 생각한 반응은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럼 내가 잘 말씀드려볼게.’였으나 남편은 상상치 못한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이 너한테 뭐 얼마나 많은 부담을 줬다고 그래?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싫어?”

 “뭔 소리야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

이후 무슨 소리를 해도 남편과 말이 통하지 않았고, 나는 그때부터 ‘시부모님을 싫어하는 며느리’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어쩌다 시댁 얘기만 나오면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되었다. 나의 가감 없는 한마디는 남편과 내가 시댁 때문에 겪게 된 모든 갈등의 서막이 되었다. 시부모님의 사랑이 과했던 것도, 남편이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도 어느 정도는 맞지만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먼저 건넌 죄(?)로 인해 나는 모든 화살을 그대로 맞아야 했다.


아이의 탄생
싸움의 재탄생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나의 그런 위험한 고백(?) 덕에 매주 시댁에 의무적으로 갈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나의 시큰둥한 반응 때문인지 어쩌면 시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모르겠으나, 나에 대한 시부모님의 관심 또한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가 되어 나는 오히려 그분들이 편해졌고 남편과 싸울 일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또다시 이슈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시댁에 이미 손주가 두 명이나 있지만 아들이 낳은 첫 친손주인 우리 아이는 두 분에게 귀하디 귀한 별과 같은 존재였기에, 나를 뒷걸음치게 했던 부담스러운 관심이 다시 전보다 강력하게 되살아난 것이다. 물론 그 관심은 내가 아닌 오롯이 내 아이를 향한 것이었지만, 아직 나와 한 몸인 아이였기에 그 사랑(?)에서 나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산부인과에 같이 가고 싶어 하시거나, 시댁에서 몸조리를 하라고 말씀하시거나... 좋은(?) 마음에서 내미는 손을 나는 결코 쉽게 잡지 않았고, 나의 명확한 거리두기(?)로 인해 시부모님은 조금 상처를 입으셨다. 남편과는 지긋지긋한 싸움을 반복해야 했다.


 가족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

결혼 5년 차,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와 남편 그리고 시부모님 모두 처음 겪는 가족 관계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겪은 시간인 것 같다. 30년 넘게 남으로 살던 사람들이 한 번의 결혼식만으로 한 가족이 될 순 없었겠지. 서로 오해하고 부딪치고 당황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 남편이나 시부모님은 서로가 서로에게 거리를 둘 준비가 안된 상태였던 것 같다. 매일 같이 밥 먹고 같이 살던 사람들이었으니, 멀리도 아닌 3분 거리에 살게 됐을 때도 거의 한집에 사는 느낌으로 서로를 대했던 거다. 고로 나와 남편은 결혼을 했으나 독립된 가정으로 절대 떨어져 나올 수 없었고, 원래부터 독립되어 있던 나 혼자만 괴롭고 불편할 뿐이었던 거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도 우리 남편과 시부모님은 서로에게 독립할 의사가 없을 수 있다. 아마도 사람들이 말하는 효자란 이런 남자가 아닐까? 결혼을 한 이후에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아내의 말보다 부모님 말을 더 잘 듣는 남자? 그리고 자기 의사보다 부모님 또는 아내의 말이 우선인 배려심 많고 착한(?) 남자?!!

 내 말을 엄청 잘 듣는 착한 남자 친구가 실상은 엄마 말을 끔찍이 잘 듣는 착한 아들이며, 사람들이 말하는 최악의 효자 남편이란 사실을 결혼 전에 나는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유부녀 언니들이 말해준 효자와 시댁에 대한 조언을 이제야 깨달았으며, 남편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는 지금이나, 생각보다 나는 괜찮은 것 같다. 가족이 되는 과정을 벌써 5년이나 지나왔고, 우리 남편이나 시댁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는 사실도 이제 알게 되었으니.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출처 미상의 조언을 매일 되새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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