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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렛 Sep 01. 2020

이상형인 남자와 결혼하면 행복할까?

내 남자의 외모가 내 딸의 외모가 될 수 있다는 현실

내 이상형은
떡잎부터 남달랐다.


나는 유독 키가  남자를 좋아했다. 덩치도 기왕이면  사람이 좋았고, 머리 크기 또한 작은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피부가 하얀 남자보다는 까만 남자에게 끌렸는데, 스타일로 따지자면 미대 오빠보다 체대 오빠에 가까운 이상형이었다.


드라마 <남자셋여자셋> 속 송승헌

이런 취향은 초등학생 때 시작됐다. 친구들이 서태지나 R.E.F, 태사자와 같은 아이돌형 가수에 열광할 때 난 이훈이라는 연예인을 좋아했다. (요즘 활동이 뜸한 이훈은 우람한 체격에 남자답게 잘생긴 원조 상남자다.)


친구들이 모두 H.O.T 열광하던 중학생 때는 시트콤 <남자  여자 > 출연했던, 당시 근육맨 이미지가 강했던 배우 송승헌을 좋아했다. 미소년같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보통이었던 사춘기 소녀 친구들은 송승헌 얘기만 꺼내도 징그럽다며 소리를 질렀다. 이에 내가 허니랑(송승헌의 팬클럽) 멤버라는 사실은 철저히 숨겨야 했다.


20대가 되면서 내 남자 취향은 좀 더 진화(?)했다. 2PM과 같은 짐승돌이 인기를 끌며 친구들이 남성미에 눈을 뜰 때쯤 나는 좀 더 거대한 덩치에 집착했다. 키 180cm 이하인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남자의 키와 덩치, 왜 그렇게 집착했을까?


사실 어려서부터 하체 비만에 얼굴이 심하게 동그랬던 나는, 상대적으로 내가 작고 야리야리하게 보일 수 있는 덩치 크고 머리 크고 튼튼한 남자에게 끌렸던 것 같다.


언니들의 영향도 있었다. 두 명의 언니 모두 키가 큰 훈남들과 결혼한 것. 큰 형부는 183, 작은 형부는 184, 그렇다면 난 무조건 185 이상과 결혼하리라, 결심했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키가 185.7cm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 이 남자랑 결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이 남자와 연애를 시작할지 조금은 고민할 때였던 것 같은데 그의 키가 내가 꿈꿔왔던 185cm라는 사실은 그에 대한 이성적 호감을 넘어 운명적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였다.


사실 남편이 내 이상형에 100% 들어맞진 않는다. 남편은 키만 큰 게 아니라 덩치도 엄청나게 크다. (몸무게가 1톤이 넘는다.) 정말 이렇게까지 큰 남자를 원한 건 아니었는데... 마치 중국집에서 자꾸 단무지를 더 달라고 하면 수북하게 담아서 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도 내가 큰 남자를 좋아하니 더 이상 한눈팔 일 없는 ‘대왕 단무지’를 내려주신 느낌이랄까?

어찌 됐든 남편의 외모에 대해 대체적으로 만족하며 지냈다. 그로부터 2년 후, 나의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사랑한 남자의 외모는

미래 내 딸의 외모다


뱃속 아기가 4개월이 됐을 무렵부터 의사 선생님은 태아의 머리가 크다고 하셨다. 심지어 배통도 크다고 하셨다. 아직 사람보다 애벌레의 형상에 가까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체형이라고 하셨다. 원래 딸을 갖고 싶었지만 이 스페셜한 이슈에 부디 건장한 아들이길 바랐다. 그런데 딸이었다. 선생님께 아들일 확률은 없냐고 재차 물었지만 단호하게 없다고 말씀하셨다.

 


초음파를 보러 갈 때마다 놀라운 사이즈를 갱신하며 건강하게 성장한 우리 딸은 결국 제왕절개로 만나게 되었다. 키와 덩치만큼 눈도 큰 남편의 눈만 닮아서 태어나길 열 달 내내 기도했지만... 눈만 빼고 모~~ 두, 싹~~~ 다 남편을 닮은 딸을 만나게 됐다.


생각해보니 우리 큰 언니도 아빠를 빼닮았고, 우리 큰 여자 조카도 큰 형부를 빼닮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첫째 딸은 아빠를 닮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어쩜, 그토록 키 크고 덩치 큰 남자를 좋아하면서 그게 나의 첫 딸에게 이어질 수 있는 유전 요소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걸까?


영유아 검진에서 머리, 키, 몸무게 모두 상위 99.99%를 기록했던 딸이 지금은 너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지만, 혹여 나중에 커서 '엄마 난 왜 이렇게 머리가 큰 거야?'라고 불만을 토로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딸아 미안하다, 엄마의 남자 취향이 너무 스페셜해서, 너도 스페셜하게 태어난 거야!”



연애 시절 상대의 장점은
결혼 후 단점으로 바뀐다


장점이 단점으로 바뀌는 게 결혼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물론 남편과 딸의 외모는 장점과 단점이라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사람의 모든 특성엔 양면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깔끔한 남자는 결혼 후 너무 깔끔 떨어서 문제, 옷을 잘 입는 남자는 결혼 후 쇼핑을 너무 좋아해서 문제, 친절한 남자는 결혼 후 그 친절함이 타인에게 발현될 때 문제일 수 있고, 효자인 남자는 결혼 후 그 지극한 효성이 부부싸움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연애 시절엔 사랑에 눈이 멀어 양면을 다 보지 못하고 좋은 단면만 보다가 결혼을 통해 콩깍지가 벗겨지고 나면 몰랐던, 아니 외면하고 있던 나머지 단면이 선명하게 보이게 되는 원리랄까??


 역시 내가 꽂혀있는  가지에 너무 집중하느라  반대면에 있는 부분을 보지 못했다. 나는  작고 마른 남자와 결혼하면 큰일이 나는  알았다. 하지만 이런  결혼에 있어 정말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반대로 말하면 결혼 전 단점으로 느껴졌던 어떤 특성은 결혼 후 장점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몰랐고, 대부분은 모른다.


지금도 주변엔 남자의 키에 집착하는 미혼 여성 지인들이 많다.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서까진 아니지만, 말리고 싶다. 대체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그런 특정한 하나의 잣대(조건) 판단하기에 사람은 그리고 결혼은 정말 입체적이고 복잡한 것이라고, 그녀들에게 그리고 내겐 너무 가벼운 우리 딸에게도  말해주고 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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