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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렛 Nov 01. 2020

왜 이 남자와 결혼했을까?

신혼 일기를 되돌아보며 느낀 현실

신혼일 땐 신혼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얼마 전 신혼 시절에 쓴, 남편에 대한 찬양과 사랑이 가득한 오글거리는 일기를 보고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특히 기겁한 구절은 이 문장이었다.

아직 결혼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속단할 수 없지만, 난 내가 선택한 이 남자에 대해 단 0.1%도 후회하지 않는다.

하하하! 현실 웃음이 나왔다. 그때 나란 사람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속단했었구나... 하루에 한번 이상 남편에게 짜증을 내는 요즘의 마음도 나중에 돌아보면 속단한게 되는 걸까? 4년 동안 나와 남편 사이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

그 일기엔 내가 남편과 결혼까지 결심하게 된 이유가 소상히 쓰여있었다. 잊고 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엔 내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몇 시간이고 그냥 둔다. 혼자 티브이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며 알아서 아침도 챙겨 먹고 때로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하면서 나를 절대 깨우지 않는다. 물론 본인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경향도 있지만 나를 배려하려는 목적이 크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나를 배려하는 일이 몸에 밴 따스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따스함은 아침이나 밤이나 즐겁게 웃는 순간이나 심지어 소리치며 싸우는 순간에도 절대 자취를 감춘 적이 없다. 그래서 그와 함께 있을 때면 늘 마음이 평안하다. 그런 그의 사랑이 마치 내 부모님이 주었던 사랑 못지않게 묵직하게 느껴져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의 사랑에 버금가는 사랑이라니! 그런데 놀랍게도 그땐 그런 마음이었다. 우리 남편은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 맞다. 아니 사실은 지금도 배려심 넘치는 성격이 사라진 건 아닌데... 대체 무엇이 내 남편의 따스함을 앗아가 버린 걸까? 남편에게 물으면 왠지 ‘나 때문’이라고 말할 것 같았다.


편의점 맥주 4캔에 만원
싸움의 시작

하지만 내 입장은 다르다. 싸움의 원인은 항상 남편이었다.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을 차갑게 대하게 된 계기는 술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건 결혼 전에도 알았지만, 결혼하고 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영화 <가장 보통의 영화>속 한 장면, 출처 <네이버영화>

신혼 시절 퇴근 후 집에서 먹는 남편과의 치맥은 정말 꿀이었다. 술집이 아닌 집에서 편하게 데이트하는 기분을 느끼며 그날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 좋았다. 하지만 맥주 500mm 1-2캔을 먹으면 배가 불러 그만 먹는 나와 달리 기본 4캔에 추가 2캔까지 먹으려고 하는 남편 때문에 웃으며 시작한 술자리는 매번 싸움으로 끝나곤 했다.

처음엔 나보다 몸무게도 두배 이상이니, 술도 두배 이상 먹는 게 맞겠지 싶어 별 말을 안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술을 밥처럼 먹어?’ 짜증이 치밀어 오르며 편의점 수입 맥주 4캔에 만원 행사가 원망스러워졌다.

사실 처음엔 일방적으로 내가 짜증내고 남편은 그저 사과하는, 싸움이라고 할 수 없는 패턴이 이어졌다. 하지만 남편도 지친 걸까? 눈치도 보고 미안해하던 남편은 시간이 지날수록 짜증 내는 나를 향해 더 큰 짜증을 내곤 했다. 내 입장에선 ‘적반하장’이라는 생각이 커졌고, 남편 입장에서는 ‘적당히 해라’는 생각이 커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대립하게 되었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1순위였던 서로의 순위가 밀려나게 되자 더욱 팽팽히 맞서게 되었다.


틀림과 다름의 문제

한 번은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술과 관련된 심각성이 3이라면, 내가 남편에게 push 하는 강도가 10으로 느껴진다고. 내가 그랬던가? 더불어 본인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겠다는 마음인데 나는 자신(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 많다고. 조건 있는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고... 머리를 ‘띵’하고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연애부터 지금까지 남편이 나에게 특별히 요구했던 건 없었다. 반면 나는 남편이게 바라는 목록들이 꽤 많았다.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결혼 전부터 남편이 가지고 있던 오랜 습관인 술을 포함하여, 빨래를 뒤집어 개는 작은 습관까지... 남편의 어떤 점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티를 냈던 지난 내 모습이 떠올랐다. 다름을 계속 틀리다고 주장하고 그것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곧 결혼이나 만남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아닐까?


같이 사는 연습

 남편이 술을 많이 먹은 날 이전처럼 화를 내지 않아 보았다. 그리고 술이 깬 후 물어보았다. 무엇이 그렇게 힘든지. 무슨 스트레스가 쌓여 그렇게 술을 마시는지. 남편은 화내지 않는 내가 당황스러웠는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의 대답과 상관없이 나는 그간 남편을 옥죄였을지(?) 모를 나의 태도에 대해 사과했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00%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은 아니었으나 일단은 던져보았다.

 그리고 그다음부터 (내 느낌일지 모르겠으나) 남편은 조금 변했다. 완벽히 연애 때처럼 따스한 남자로 뿅 하고 돌아온 건 아니었으나 술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일도 아직까진 없다. 나의 작은 사과가 이렇게나 큰 영향이었나? 놀라운 동시에 언제 또 전쟁이 불붙을지 모르는 불안함을 느끼며 아직은 서로 조심하는 중이다. 아무리 가족이고 부부여도 긴장하며 조심하고 배려하는 모습이어야 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은 느낌이다.


내 웨딩촬영에 따라왔던 한 친구의 말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그때 네가 니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의 옷을 매만져주던 모습이 난 아직도 생생해. 진정 사랑이 가득한 눈빛이었어” 그래 그랬었지... 이젠 남편도 나도 서로를 뜨겁게 바라보는 사이는 아이지만, 우리 아이를 향해서만 각자 꿀 떨어지는 눈빛을 발사하게 되었지만... 유일무이한 육아의 동지이자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사이이기에... 두 번 화낼 일도 한 번으로 줄여보는 연습을 하기로 굳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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