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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한손 Jul 11. 2021

성실씨

성실이 밥 먹여주냐? 성실은 정말 딱, 밥만 먹여주더라.

 ‘내일 회사를 그만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내일이 뭐야?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지긋지긋한 회사 책상을 박차고 일어날 수 있으면 정말 여한이 없겠다!’

 직장인 성실씨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저 PC 채팅창을 열어 친구에게 ‘아, 일하기 너무 싫다’라는 한마디를 적었을 뿐이다. 친구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몇 마디 더 나눈 뒤, 작성 중이던 ppt 파일을 다시 열었다. 지금 시각 오후 4:13분, 오늘 이 보고서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6시 퇴근조차 불가할지 모른다. 귀에 꽂았던 에어 팟도 빼버리고, 본격적으로 보고서에 집중해본다.  


나는 회사랑 참 맞지 않는 사람 같아

 얼마 전 성실씨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던지고는 1초 만에 피식 웃어버렸다. 무려 12년이나 회사를 다닌 성실씨였다. 육아휴직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대학 졸업 전부터 회사를 다니기 시작해 총 3번의 이직 모두 1주일 이상 텀을 두지 않았다. 참 이름처럼 성실한 삶이었다.

그러고 보니 대학교도 고등학교 졸업 전에 수시로 합격했던 모범생 성실씨. 심지어 초등학교 때는 매년 ‘성실상’을 받기도 했다. 참나 그땐 상이라도 줬지, 성실한 회사생활 12년은 그녀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거북이처럼 느리게 오르는 연봉, 토끼처럼 빠르게 늘어나는 업무량… 토끼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월급과 거북이처럼 느리게 오르는 자산… 이 아이러니한 지난날을 생각하니 성실씨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런 회사생활의 실체(?)를 10년 넘게 다니고서야 깨달은 본인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한편, 그래도 본인에게 제일 잘 맞는 게 회사생활이라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아… 난 정말 잘하는 게 뭘까?

 10대 때의 고민을 30대 후반에 다시 하게 될 줄이야. 그때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현실이 성실씨는 참 슬펐다. '매일 이렇게 살기는 싫은데, 뭔가 변화가 필요한데…' 성실씨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아주 오래전 들어봤던 책 제목만 떠오를 뿐이었다. 공부한 범위 안에서 시험만 잘 봐도 모두 이룬 게 되었던 학창 시절이 진짜 편한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만 많아지는 밤, 성실씨는 그 와중에 내일을 위해 빨리 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실한 마인드가 그녀의 쉼 없는 회사생활을 이어준 것이겠지. 칭찬받아 마땅할 그녀의 삶이 어쩌다 그저 평범한 밥벌이로 전락해버리게 된 걸까. 심지어 더 나이가 들면 밥조차 못 먹고살게 될지도 모른다니… 성실한 직장인의 어두운 미래가 날로 가깝게 느껴져 고민인 성실 씨는 매일 잠들기 전 결심을 해본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 자기 계발 시간을 가져보겠노라고… 다짐하며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추지만, 단 한 번도 7시 전에 눈을 떠본 적은 없다.

 


 대한민국 평범한 직장인 성실씨, 그녀가 5시에 일어나 자기 계발을 하지 않고 회사만 성실하게 다녀도 아무 고민 없이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은 정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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