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 무택씨에게 없는 건, 집 말고 또 무엇일까?
무주택자인 무택씨는 요즘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언젠가부터 ‘무주택자’는 하나의 신분을 뜻하는 단어가 된 느낌이다. ‘무주택자’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 소유의 주택이 없는 사람’. 말 그대로 주택 하나가 없을 뿐이건만.. 주택 이상의 꽤 많은 것들을 못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다.
2018년에 결혼할 때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당시 무택씨는 주택 자금으로 1억 8천만 원 정도를 마련했다. 그가 모은 7천만 원과 아내가 모은 5천만 원 중 혼수 금액을 제외한 3천만 원. 그리고 무택씨 부모님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8천만원을 더해 빌라 전세를 구했다. 무택씨와 아내의 회사가 있는 강남까지 30-40분이 걸리는 7호선 라인의 역세권 빌라였다. 신축은 아니어도 깔끔하게 수리된 그곳은 30대 초반 부부가 신혼생활을 시작하기 괜찮은 출발이라 생각했다. 아내 또한 그렇게 여겼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말이다.)
이후 1년여 달콤한 신혼을 보낸 무택씨 부부에게 아이가 찾아왔다. 2020년 봄 꼬물꼬물 귀여운 아들을 만났다. 코로나로 불안한 나날이었지만 아내와 아이가 무사히 과정을 지나온 것이 참 감사했다. 점점 무택씨의 인생도 무르익어가는 느낌이었다.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지만 아이가 백일쯤 되었을 무렵부터 아내가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택씨 빌라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게 아내의 첫 번째 고충이었다. 3층이라 계단 오르내리는 게 크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아이가 생기니 얘기가 달라졌다. 육아휴직으로 아이와 종일 집에 있는 아내가 외출이라도 한번 하려면 혼자 아이를 안고 유모차와 짐까지 들고 내려가야 했다. 유모차는 밑에 내려놓고 쓴다 해도 아직 몸이 성치 않은 아내가 짐과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둘이 살기에 충분했던 빌라가 아이가 생긴 후 좁게 느껴지는 것 또한 고민이었다. 이건 덩치가 큰 무택씨가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물품은 왜 그리 많고, 범퍼 침대는 또 왜 그리 큰 건지.. 무택씨 사이즈에 맞게 산 커다란 책상이 있는 서재방은 여기저기서 물려받고 선물 받은 아이 물품들로 창고가 되어버렸다. 급기야 아내는 책상을 없애거나 작은 것으로 바꾸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게임을 즐기는 게 무택씨의 유일한 취미인 무택씨는 허탈해졌다. 어차피 육아 때문에 게임을 못한다 해도 그 공간조차 잃고 싶진 않았다.
아내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회사 동료가 sns에 올리는 사진들도 아내가 아파트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대단지 신축 아파트에 사는 그녀의 아기는 항상 뷰가 좋은 넓은 거실에 누워있었다. 매일 조경이 잘된 산책로에서 푸른 나무를 보며 산책을 했고, 가끔 너른 욕조에서 목 튜브를 끼고 수영을 했다. 아내에게 그녀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아니더라도 sns에서 육아 관련 정보를 검색하면 그런 사진들은 넘쳐난다. 자꾸 비교되는 마음을 지워내기 힘든 건 무택씨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무택씨는 아내 입에서 ‘아파트’ 소리가 나오기 전부터 아파트 시세를 보고 있었다. 마침 2년 전세 만기가 돌아오고 있었기에 아파트로 이사가면 좋겠다고 무택씨 역시 생각했던 것. 하지만 2년 새에 아파트 값은 말도 안 되게 올라있었다. 결혼 당시 3억 후반이었던 무택씨 동네의 한 아파트는 어느새 6억이 넘어있었고 4억 초반이었던 아파트는 7억대였다. 결혼 후 2년간 맞벌이하며 모은 돈이 6천 남짓, 출산 준비등으로 1천을 쓰고 남은 5천도 꽤 잘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파트를 사기엔 어림없는 돈이었다. 대체 대출을 얼마나 받아야 하는 걸까. 3-4억의 대출이 엄두가 나지 않았던 무택씨는 2년만 더 살자고 아내를 설득해 전세를 2년 연장했다. 3천만 원이나 오른 가격으로 말이다.
아파트가 없다는 것은...
하지만 2021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 아파트 가격이 한차례 더 상승한 것을 본 후 무택씨는 아내에게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작년에라도 샀어야 했나? 애초에 자가로 신혼을 시작할 걸 그랬나? 몇 년 전부터 같이 청약에 도전하자고 지겹게 말하더니 2년 전 결국 청약에 당첨된 친구 말을 들었어야 했다. 서울이지만 외곽에 위치한 20평대 아파트를 4억 후반대에 계약한다는 친구에게 ‘너무 비싸지 않냐’고 떨어지면 어쩌냐고 말했던 무택씨였다. 하지만 그 아파트는 현재 입주도 전에 9억을 넘겼으며, 서울에서 마지막 5억 이하 청약 아파트가 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항상 반에서 5등 이내, 서울 상위권 대학,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까지… 늘 상위권에서 인정받으며 살아온 무택씨였다. 물론 어려서부터 경제적으로 큰 여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경제적 어려움까지는 겪지 않고 살아왔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가난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무택씨는 그저 혼란스러웠다. 그것도 아들이 생긴 가장이 되어 가난해졌다는 생각은 죄책감을 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였다.
집 하나가 없을 뿐인데, 많은 것을 잃은 박탈감에 빠져있는 무주택자 가장 무택씨, 그는 정말 집 외에 다른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인 걸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그것은, 반대로 아파트를 자기 집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 모두에겐 있는 그것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