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슬노트 Sep 04. 2024

호주에서 꾼 꿈

첫번째이별과만남

지구의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의 7,8월은 겨울이다.

내가 머물렀던 멜번은 호주에서도 추운 지역에 속하지만, 한국의 겨울만큼 춥지는 않다.

외출하고 돌아오다 기숙사 옆 방 친구를  만났다.


"It's freezing. isn'n it?"

"Yeah, it's too cold."


속으로 이 정도는 추운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친구의 추위에 나도 따라 춥다고 부르르 떨어본다.


호주에서의 생활은 새로움 그 자체였다.

해외에 나와 본 것도 처음, 기숙사에 살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과 수업을 듣고, 기숙사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파티도 매번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나이에 따라 언니, 누나, 형, 동생이 되지만 이름을 부르는 호주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특히 나는 부산에서 온 S와 일본에서 온 D와 가깝게 지냈다. S오래전에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나의 또 다른 동생이라는 착각이 들게 할 만큼 나와 너무도 잘 맞았다.  D는 체구가 참 작았는데,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의 표본다. 둘 다 휴학하고, 호주에 온 대학생이었다.


어학원에서의 두 세션이 끝나가고, 2주간의 방학이 찾아다. 2주를 어떻게 보낼지 저마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Y와 나는 가끔 전화 통화를 했고, 호주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Y의 존재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곧 2주 방학이 생겨.  올래? "

"갈게."

가볍게 던져 본 말이었고, 별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Y의 대답은 확실했다.


2주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나는 Y가 도착하기 하루 전날 미리 브리즈번으로 가서 하루를 보낸 뒤, 브리즈번 공항으로 향했다.

한산한 입국장에서 Y를 기다렸다. 그의 도착시간이 가까워지자,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이내, 익숙한 모습의 한 남자가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나를 향해 웃으며 다가온다. Y다.

오랜만에 본 Y는 그 새 더 어른스러워졌다.


호주에 온 지 5개월 정도가 지났는데, 나는 여전히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알아들을 수는 있어도 원래 말이 많지 않던 내가 원하는 말을 내뱉는 것은 어려웠다.

그에 반해 Y는 나보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데도, 입을 여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나 대신 길을 물어보고, 궁금한 게 있으면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았다.

그렇게 Y와 나는 백패커스 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브리즈번에서 골드코스트로, 그리고 시드니까지 배여행을 함께 했다.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골드코스트는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로 붐볐다. 같은 숙소에서 만난 국적이 다른 이들과 골드코스트의 쏟아지는 밤별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영어를 잘하지 않아도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음을 이미 깨달은 후였지만, 소통에 있어서 언어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어김없이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던 날이.

비틀거리는 나는 Y의 부축을 받으며 숙소에 누웠, 속이 울렁거린다. 일어나 앉을 새도 없이 내 안에 있는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말았다.

그 순간, Y는 손을 뻗어 내 얼굴 아래에 가져다 받치고 있었다.


여행얘기를 듣던 S가 놀라며 한다.


"우와! 그거 진짜 손으로 받아내기 힘들낀데,  언니야, 오빠가 언니를 진심으로 어엄청 사랑하는기다.."

"그럴까... 내가 뭐라고..  나이도 많고, 예쁘지도 않은데.."


여행에서 보았던 Y의 모습은 5살 어리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듬직한 한 남자였다. 


'내가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면 이런 사람이라면 좋겠어.'


Y는 멜번에서 며칠더 지냈다.

박비를 감당할 만큼 여유롭지 않았기에 Y는 기숙사 내 방에서 숨어 지냈다. S와 D의 도움을 받으며, 기숙사 식당에서 도둑식사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이 음식을 포장해다 주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Y는 그 특유의 넉살과 당당함으로 금세 호주 친구들의 호감을 샀다. 그 영향으로 나 역시 유치하게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Y와 나는 교와 멜번 시내를 함께 다니며, 여느 연인들처럼 시간을 보냈다.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간섭도 없었던 그 시간들 마치. 

꿈같은 시간이었다.


이전 02화 프라임 러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