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보겠습니다"
"고생했어, 얼른 가서 쉬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출근은 느긋해도 퇴근은 빠릿빠릿하게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아침 햇살을 맞으며 병원 밖으로 나왔다. 나이트 근무는 몇 년을 해도 몸이 적응하질 못하고 있다. 너무 피곤해서 집에 가자마자 기절할 계획으로 퇴근길에 올랐다. 오늘은 특별한 약속도 없어 하루 종일 자볼까 한다.
-띠리리리
퇴근하고서 전화 오는 건 대부분 병원에서 일을 엉망으로 끝내고 나오는 경우인데, 뭘 안 했을까 전화를 받기 전부터 걱정이다. 그런데 찍혀있는 번호는 사촌동생이었다.
"웬일이야? 이 아침에 전화를?"
"형, 우리 할아버지가 경운기를 타시다가 교통사고가 나셔서 그... 외상센터인가 거기로 가고 있대"
"얼마나 다치셨는데?"
"자세한 건 아직 모르고 할아버지 친구분이 신고해서 119 타서 가고 있다고 전달받았어. 아빠랑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야"
"마침 나 방금 퇴근해서 병원 근처라 먼저 가있을게"
"고마워. 도착하면 다시 전화할게, 형"
퇴근한 지 20분 만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아침 콘퍼런스 시간이 가까운데도 몇몇 과장님들이 외상센터 응급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과장님, 119 콜 받고 모이신 거예요?"
"어, 경운기 TA(교통사고)라는데 BP(혈압) 떨어진다고 해서. 출근이야? 출근시간은 아닌 거 같은데"
"방금 퇴근했는데 할아버지가 여기로 온다고 연락받아서요"
짧은 대화가 마무리되고 다들 자기 자리에서 환자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