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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숫제 Mar 19. 2024

소크라테스_1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고요.


이제 우리는 철학사에 영원히 빛나는 이름을 새긴 한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이전에 만났던 소피스트 세 사람과 맞서는 입장을 지닌 철학자입니다. 이 철학자를 만난 후에 여러분은 세 사람의 소피스트와 이 철학자를 비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에게 더 와닿는 사람을 선택해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을 왜 선택했는지,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이 철학자와의 만남이 끝난 후에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이곳 제우스 신전에서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를 만났던 아크로폴리스 뒤편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고대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기도 하고 상품을 파는 노점들이 있던 곳이기도 했던 ‘아고라’입니다. 이 사람은 여기를 자주 다녔습니다. 여기서 약 1.5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데 천천히 걸어가 볼까요.     


(소피) 소피스트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군요. 철학사에 영원히 빛나는 이름이면 특별한 분인 것 같은데, 혹시 소크라테스인가요?     


네, 맞습니다. 모든 지적인 앎의 시작이자 집요하게 계속되는 질문의 창시자이며 거대한 탐구의 근원,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 그 자체입니다. 이 한 사람의 무게가 철학의 무게와 같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죠.     


(데오) 드디어 만나보네요. 소크라테스.     


그런데 어쩌면 여러분이 소크라테스를 만난 후에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꽤 추남이거든요. 코는 납작하고 눈과 입은 앞으로 튀어나온 데다 배도 불룩합니다. 낡은 망토와 맨발도 유명하죠. 못생겨서 눈에 띕니다.    

 

(필로) 선생님, 사람의 외모를 지적하면 안 되죠!     


아, 제가 실수를 했네요. 소크라테스는 듣지 못했겠지만 사과합니다.  

   

(소피) 저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저 사람이 소크라테스인가요?     


네, 맞습니다. 우리도 가서 잠시 대화를 들어봅시다.     


[소크라테스 등장]

(소크라테스) 어서 오세요.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요. 마침 이곳을 지나는 젊은 사람들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사랑을 주제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여러분은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Henryk Siemiradzki, Socrates Finds his Student Alcviad at Heterai, Oil on canvas, 112 × 185, 1875.


(소피) 갑자기요? 뭐 당혹스럽긴 하지만 제 생각을 이야기해보자면, 사랑은 기쁜 것이죠. 이것만큼은 제가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남편과 연애할 때 엄청 기뻤거든요. 몸과 영혼이 가득 차 있어서 더 필요한 게 없는 느낌이랄까. 만족, 만족이 좋겠네요.     


그리고 마음이 편안했어요. 물론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함께 있으면 안정적이고 편안해요. 저희 부부가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는지 주위에 저희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아요. 제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를 했나요?     

(소크라테스) 이상적이라고요? 아니요. 오히려 덜 이상적이었어요. 사랑이 기쁜 것이라고 했지요. 그럼 같이 슬퍼하는 건 어떤가요? 같이 슬퍼하면 사랑이 아닌가요? 슬플 때 같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잖아요? 상대의 슬픔을 느끼면서 공감하기도 하고 서로 비슷한 감정 상태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 어떤 만족감 같은 것도 있을 테고요. 그럴 때도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나요? 어때요. 너무 이상적인가요?     

(소피) 아니요. 이상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동의해요. 서로 슬퍼하는 것도 사랑이죠.   

  

(소크라테스) 편안한 것이 사랑이라고도 했지요.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사랑을 막 시작할 때 두근두근 설레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설렘은 마음이 편안한 것과는 거리가 있잖아요? 자신을 평소와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마냥 편하지는 않을 거예요. 설렘이 아주 가끔 부담과 혼란을 가져오는 일도 있지 않나요?     


(소피) 설렘도 사랑이죠. 제가 설렘을 부담이나 혼란으로 느껴본 적은 없지만요.     


(소크라테스) 그렇군요. 만족스러운 것이 사랑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사랑은 만족스럽지도 않을 거예요. 사랑하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데 사랑하면 내가 기대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게 되잖아요? 만족이 아니라 불만을 품게 되는 거죠.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이나 성격이 못마땅해서 불만을 느낄 때도 있을 테고요. 이런 불만의 상태도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요?      


(소피) 사랑을 정의(定意)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네요.   

  

소피를 ‘아포리아’(ἀπορία)에 빠트릴 작정이군요.     


(소피) 아포리아요?     


아포리아는 ‘어려움’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소크라테스의 대화 방식을 뜻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논박을 통해 상대의 주장이 지닌 모순을 자꾸 드러냅니다. 이 과정을 계속하면 상대는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주제에 대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불확실성과 혼란에 빠지게 되죠. 불확실성과 혼란의 상태가 아포리아입니다. 아포리아 상태가 되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다시 생각을 하게 되면서 더 나은 생각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아포리아는 더 나은 생각을 하게끔 유도하는 소크라테스의 독특한 대화 방법입니다. 산파처럼 지식을 낳게 하는 소크라테스식 ‘지적 산파술’입니다.     


(필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거네요.     


그렇긴하죠.      


(데오) 하지만 대화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인 것 같기도 해요. 대화가 더 나은 생각을 낳게 할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자꾸 질문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거잖아요. 우리도 철학자들과 계속 대화하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철학적 대화를 창안한 소크라테스 덕분에 우리가 철학자들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학자들을 만나 대화를 하는 이유가 철학이 대화이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지요. 대화하는 철학을 만든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데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랑 말입니다.     


(데오) 사랑이요? 사람들마다 사랑에 대한 각자의 정의가 있는 게 아닐까요? 저의 정의를 물으신다면 저는 사랑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어요.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라는 말이 있잖아요.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그중에서 저는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함께한다는 건 하나의 공간, 하나의 시간을 같이 쓴다는 것이고 결국 하나로 묶인다는 뜻이잖아요.     


철학자를 만나서 그런지 ‘하나’라고 하니 ‘일자’가 떠올라요. 그런 것 같아요.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에요.     

(소크라테스) 당신은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어요. 그것은 당신만의 정의이고 다른 사람의 정의는 아니라고 이야기했지요. 하지만 그렇게 사랑을 정의한다면 당신은 결코 하나가 되는 것을 이룰 수 없어요. 왜냐하면 당신과 사랑을 나눌 사람은 사랑을 다르게 정의할 게 분명하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의 정의는 독백이 될 뿐이에요.    

 

(필로)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사랑을 꼭 정의해야 하나요? 저는 사랑이 없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거죠. 존재하지 않는 걸 정의할 수는 없잖아요. 사랑보다는 섹스가 정확하지 않나요? 호르몬 작용으로 다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ené Magritte, Les Amants(The Lovers), oil on canvas, 1928.


(소크라테스) 오, 필로,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데오도 마찬가지예요. 사랑에 대한 각자의 정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공통의 정의를 분명 가지고 있어요. 인간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권력을 사용하는 일이 정의가 아닌 걸 알고, 서로 미워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요.    

 

보세요. 저 아름다운 꽃을. 당신이 보는 꽃과 내가 보는 꽃이 다른 꽃이라고 해도, 우리는 저 구체적인 꽃들과 구별되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어요. 인간은 아름다운 꽃과 아름다움을 구별할 수 있고,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사랑과 사랑 그 자체를 구별할 수 있어요. 우리는 생김새가 다르지만 모두 인간이잖아요. 그러니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사랑을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사랑의 개념 그 자체를 찾아보자고요.     


소피스트들처럼 생각하지 말아요. 그들은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이에요. 참된 지식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도 정의(定義)할 수 없고, 지역마다 시대마다 정의(正義)가 달라진다고 말해요. 그들은 모든 사람의 주장이 옳다거나 모든 사람의 주장이 그르다고 말해요. 그들은 진지하게 인간의 삶을 검토하지 않아요. 상대방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참된 지식은 어떻게 되든지 신경 쓰지 않는 인간들이에요. 그들은 인간의 영혼을 돌보지 않아요. 캐묻거나 반성하지 않지요. 하지만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고요.    

  

인간은 옳은 주장과 그른 주장은 구별할 수 있어요.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요. 아름다움, 사랑, 정의(正義)의 정의(定義)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진리는 고정불변합니다. 아름다움이 없는데 어떻게 저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겠어요. 더 생각을 해보자고요. 잠깐이었지만 사랑에 대한 우리의 대화는 분명 진전이 있었어요. 그렇지요? 이렇게 우리가 계속 대화를 해나가면 언젠가 사랑에 대한 확고부동한 정의에 도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모르는 게 많은 사람입니다. 오래전 한 친구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가서 신탁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가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대답이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나는 그 이야기가 수수께끼 같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매사에 지혜롭지 못하거든요. 나는 내가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요. 그래서 현명하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어요. 정치인, 시인, 현인 들을 말이죠. 그렇지만 그들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었어요.     

 

재판을 받은 이야기도 해주시죠.      


(소크라테스)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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